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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기대작②] 미공개컷으로 만나는 김주혁
김현수 2018-02-12

메모리얼 오브 김주혁

“최근 맡은 적 없는 인물을 연기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영화 <독전> 촬영현장에서 고 김주혁은 우리가 그에 관해 잘 알고 있던 이미지, 예를 들면 영화 속 ‘광식이 형’이나 예능 프로그램 속 ‘구탱이 형’의 모습과는 다른 캐릭터의 결을 보여주는 재미에 대해 언급했었다. 홍상수 감독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부터 ‘악역’ 연기에 처음 도전했던 <공조>(2017)나 <석조저택 살인사건>(2017) 그리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독전> 등의 영화를 선택했던 이유는 그가 앞서 언급했던 ‘재미’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으리라. 우리가 알고 있던 고전 <흥부전>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줄 <흥부> 역시 지금껏 봐왔던 김주혁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줄 영화임에 분명하다. 그를 직접 만나 새 영화의 캐릭터에 대해, 현장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지만 그럴 수 없음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2월 14일 개봉하는 <흥부> 외에 <석조저택 살인사건>과 <공조> 등 가장 최근에 작업했던 영화 현장에서 직접 그의 연기를 보고 듣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스틸 작가들에게 몇장의 미공개 사진을 요청했다. 어쩌면 배우 김주혁이 남긴 모습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다.

<흥부>(사진 정경화, 박소희 스틸 작가)

조근현 감독의 <흥부>에서 김주혁이 연기한 ‘조혁’은 세도정치로 혼란스러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오갈 데 없이 버려진 사람들을 챙기고, 또 농민 봉기의 중심에 서서 민란을 이끄는 이들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재야인사다. 조근현 감독이 그에게 시선 처리를 지시하고 있는 사진 속 공간의 배경은 영화에 등장하게 될 민란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 <좋아해줘>(2015) 이후 그와 두 번째로 작업한 정경화 스틸 작가는 “데면데면하면서 소심한 면도 좀 보이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게 다 깊은 배려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고 그를 기억한다. 더위가 절정이었던 지난해 7, 8월 문경과 양수리 세트장을 오가며 촬영했던 현장에서 그는 모기에게조차 짜증을 내지 않는 배우였다고. “분위기를 방방 띄워주지는 않지만 돌이켜보면 늘 어딘가에서 묵묵하게 사람들을 챙겼다.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면 됐다고 거절하면 했지 바로 앉는 모습을 못 봤다.” 현장에서 항상 모니터링을 꼼꼼히 하는 편이었던 그는 본인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장면도 늘 꼼꼼하게 살폈다고.

<흥부>(사진 정경화, 박소희 스틸 작가)

조혁이 빈민촌의 지붕을 수리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보게 될 조혁이란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이 될 텐데, 정경화 작가는 특히 이 장면을 촬영하던 때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저 지붕이 생각보다 높은 위치여서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촬영팀이나 연출팀도 저기 올라가서 뭘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김주혁 본인이 직접 나서서 튀어나온 못도 박아주고 조심하라고 챙겨주기도 하는 모습이 조혁 같았다. 조혁은 극중 소설가 흥부(정우)가 소설을 쓸 때 ‘흥부’의 모델로 삼는 인물이기도 한데 실제로 김주혁이라는 배우가 살아온 방식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인물인 것 같았다.” 조혁은 극중 소설을 쓰는 흥부에게 “세상을 매섭게 풍자하는 글을 쓰라”고 말하면서 꿈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영화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대사지만 “꿈을 꾸게나. 그 꿈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꿈을 꾸는 자들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는가”라는 대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도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기 때문이다. 조혁을 통해 김주혁의 마지막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사진 최창훈 스틸 작가)

<석조저택 살인사건> 현장에서 그의 곁을 지키던 최창훈 스틸 작가는 극중 남도진(김주혁)이 성 마담(지아)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 장면을 찍을 때 처음으로 “악역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다들 김주혁이라고 하면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의 ‘구탱이 형’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 장면을 찍을 때 나도 모르게 진짜 못된 사람인가, 싶더라. 후반작업하면서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깜짝 놀랐다. 식상한 표현 같지만 카메라에 담긴 그의 얼굴을 보니 확실히 배우는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기억하는 김주혁은 현장에서 유독 말이 없는 배우 중 한명이었다. “이 장면처럼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감정 신의 경우에는 더욱 말이 없다. 게다가 오랫동안 촬영이 이어지는 중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사람들을 대해 촬영에 임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사진 최창훈 스틸 작가)

<석조저택 살인사건>(사진 최창훈 스틸 작가)

김주혁은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남도진을 <공조>에서 연기한 차기성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악역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차기성은 자신의 신념을 믿고 행동하지만 남도진은 태생부터 나쁜 놈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그 나름의 해석을 바탕으로 한 고민이었다. 그래서인지 <석조저택 살인사건> 촬영현장에서 최창훈 작가는 유독 바빴다. “김주혁 선배의 단독 컷을 다양한 앵글에서 촬영했다. 매 순간 무섭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또 본인이 직접 찍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영화에 쓰이지는 않는 컷을 직접 연출해서 찍기도 했다. 신분을 숨기고 운전사로 위장해 도진에게 접근한 석진(고수)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도진의 모습을 담은 옆모습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앵글을 연출해서 찍은 컷이다. 이 컷은 최창훈 작가가 생각하기에 “남도진이란 인물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장면 같았다. 차를 타고 가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컷인데 지독하게 악한 면모를 숨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극중 도진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피칠갑 파자마 장면과 위조지폐 인쇄업자를 찾아가 돈다발을 확인하는 장면 역시 모두 남도진의 악한 면모에 힘을 실어주는 장면이다. 최창훈 작가는 그를 촬영한 사진을 다시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촬영한 컷을 보면 그의 동공 색이 남들하고 약간 다르다는 게 보였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도 다시 발견하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왜 여태 그걸 몰랐을까.”

<공조>(사진 김진영 스틸 작가)

홍상수 감독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처음 만나 <공조>의 촬영현장까지 김주혁과 함께했던 김진영 스틸 작가는 당시 그가 갖고 있던 연기에 대한 고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지켜봤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촬영현장에서 술 마시면서 털어놨던 형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 역시 <공조>의 선택이 의아하면서도 궁금했다. 본인이 그동안 경험해보지 않았던 시스템과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는 선택이었을 텐데 정말 잘하고 싶다고 하더라.”

캐스팅 당시 JK필름에서도 차기성 역은 한번도 악역을 연기해보지 않은 배우가 맡아주길 바랐고, 김주혁 역시 이제껏 자신이 해보지 않은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어 했기에 김주혁의 차기성은 모두가 만족할 만한 캐스팅이었다. 그러면서도 김주혁은 평면적인 악역이 아니라 “특별히 선하고 나쁜 역할이란 구분을 넘어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을 향해 돌진하는 인물”이라는 캐릭터의 섬세한 결도 놓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17년 최고의 유행어였던 영화 속 함경도 사투리는 <범죄도시>보다 <공조>의 차기성이 먼저였다. 인민보안부 특수수색대 소속으로 조국을 저버리고 위조지폐 동판을 갖고 서울로 넘어온 차기성을 연기한 김주혁은 “어째 말을 아이 듣니? 다른 동무들도 말 듣지비?” 같은 사투리 대사를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촬영현장에서는 모든 스탭들이 차기성이 콜라를 원샷한 다음 내뱉는 “찡하오”라는 대사를 유행어처럼 따라 했다.

<공조>(사진 김진영 스틸 작가)

“터널에서 벌어지는 총격 장면을 찍을 때는 시나리오상에서 차 밖으로 어깨까지만 드러내놓고 총을 쏘면 되는 장면이었는데 선배도 찍다가 욕심이 생겼는지 상반신을 다 드러내놓더라. 그러면서 감독님에게는 모니터를 보면서 ‘배우를 죽일 셈이냐’고 핀잔을 주고.” 김성훈 감독과 김주혁은 현장에서 장난치듯 열정을 주고받으면서 차기성의 ‘입덕’ 포인트인 카체이스 총격 장면을 완성해냈다. 그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본 김진영 작가는 스쳐가듯 잠깐 등장하는 샤워 장면이나 거친 액션을 요구하는 카체이스 장면을 촬영할 때 “적지 않은 나이에 이런 걸 시킨다며 감독에게 툴툴거리다”가도 한달 전부터 식이요법을 해가며 틈틈이 몸을 만들던 그의 모습을 보며 모자라지도 더하지도 않는 “노력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본인을 낮추거나 희화화하는 걸 즐기는데 자신을 편하게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김주혁은 스탭들에게 언제나 “배우 같지 않고 형 같은 사람”이었다. <공조>는 또 김주혁에게 “정말 연기가 좋아진 지 얼마 안 됐다”라고 말할 정도로 일하는 재미를 마음껏 느끼게 해준 촬영현장이었다. “현장에서 많은 배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일을 떠나서 좋은 사람, 선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가 떠난 지금, 개인적으로는 삶의 태도도 완전히 달라졌다. 눈앞에 고마운 게 있으면 바로 표현하고, 또 용기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니, 라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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