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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이 보여주는 ‘가상현실’의 미래는

2045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VR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본 소감을 비유하자면 탄광촌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빌리 엘리어트>를 봤을 때의 기분과 흡사할 것 같다. 내 자식들이 바로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고민을 하며 살게 될 텐데, 라고 느끼는 기분이랄까. 많은 기대를 안고 본 영화는 원작 소설이 이미 그러했듯이 예상했던 대로 1980년대 게임 문화를 즐겨왔던 세대들에 바치는 헌정 영화 같았다. 시각적으로도 19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는데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영화로서 시각특수효과(VFX)의 기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과거를 회상할 수 있게끔 디자인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 같다. 단적인 예로 주인공 웨이드를 비롯한 친구들이 오아시스라는 영화 속 가상현실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안에서 사용하는 아바타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보통 CG 기반의 캐릭터가 얼마나 실사처럼 보이는지, 즉 인간과 얼마나 흡사한 존재처럼 그려지는지를 통해 기술을 강조하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웨이드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아바타는 인간의 피부와 전혀 다르게 보이도록 패브릭한 느낌이 드러나는 피부로 그려내고 헤어스타일을 다룰 때도 일부러 부자연스러워 보이게 디자인됐다. 과거 <파이널 환타지>나 혹은 <폴라 익스프레스> 같은 영화들이 넘지 못했던 ‘언캐니 밸리’를 넘어서기 위한 방식으로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또 모든 가상현실 속 아바타 캐릭터를 한 가지 톤 앤드 매너로 통일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 게임 캐릭터의 스타일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VFX 슈퍼바이저가 가상세계를 만들 때 기본적인 뼈대는 원작 소설보다도 앞서 만들어졌던 <매트릭스> 시리즈나 혹은 <주먹왕 랄프> 같은 영화가 보여줬던 방식을 많이 참고한 것 같다. <주먹왕 랄프>에서 한 단계 더 실사쪽으로 나아간 느낌이랄까? 3D 효과는 뛰어난 편은 아니다. 영화가 소위 말하는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힘쓴 것 같다거나 VR의 속성을 비주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느껴지는 장면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3D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일반 영화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VR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2045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 미래의 가상현실 세계를 어떻게 보여줄지도 궁금했다. 미래의 사람들이 VR을 접하는 방식이나 도구들이 2018년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게 묘사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에 등장하는 HMD(Head Mounted Display) 기반의 장비들은 엄청나게 혁신적인 장비라기보다 지금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장비로 보인다. 가상세계를 표현하는 UI(사용자 인터페이스)나 행동들에서도 영화적인 혁신성을 찾기 어려웠다. 영화로는 <코드명 J>에서 처음 보였던 HMD기반의 VR 이용방식이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고 해서 뭔가 다른 개념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가상현실에서의 물리적 접촉을 느끼게 해주는 햅틱슈트를 입는 등의 기술은 지금의 현실과 똑같다. 상상해보자면 미래에는 복잡한 장비를 쓰지 않고도 뇌의 신경 부분 스위치만 건드리면 간단하게 뇌만 제어해서 신경 기반으로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에 앉아서 이어폰을 귀에 꽂는 방식으로도 가상세계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달팽이관에 흡착해서 모든 신경계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컨트롤한다면 더 많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겠지만 어쨌든 실현은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의 뇌를 건드리는 위험하고 쾌락적인 세계의 구현은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보여주는 가상현실 VR은 언제쯤 상용화가 가능할까? 10년 안에는 가능할 것 같다. 자본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순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지금의 현실과 2045년의 미래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 그때도 지금과 유사한 방식으로 HMD 장비를 착용해서 VR을 즐기게 될 것이고 가상현실에서도 영화가 묘사하듯 빈부 격차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이 영화가 내게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켰다기보다 오히려 고민이 더 많아졌다. 우리가 예측하는 멋진 세계라는 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인간의 욕망을 기본 뼈대로 하는 한 이 세계는 혁명적으로 바뀌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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