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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그레타 거윅 감독, "시얼샤 로넌 연기를 보고야 레이디 버드를 알게 된 듯"

이토록 멋진 감독 데뷔작②

-각본을 쓰면서, 직접 출연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절대 아니다. 작품을 처음 시작했을 땐,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조차 몰랐다. 힘들게 완성한 뒤에도, 연출자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아니, 이 작품엔 내가 출연하지 않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사실 한 작품에서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편이다. 내가 쓴 대사가 배우의 입을 통해 내 눈앞에서 살아 숨쉬게 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를 알게 됐다. 내가 연기를 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라 생각한다.

-당신은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났고, 가톨릭 학교를 다녔다. 영화는 당신의 알려진 어린 시절과 무척 닮았다. 당신이 바로 레이디 버드였나.

=아니다. 사실 나는 레이디 버드와는 정반대의 학생이었다. 상황은 비슷하지만, 나는 정말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아이였다. 물론 스스로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본 적도 없고, 머리를 빨갛게 염색도 하지 않았다. (웃음) 어떤 면에서, ‘레이디 버드’라는 캐릭터는 부족함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용감한, 그러니까 결코 10대의 나는 될 수 없었던 어떤 존재를 창조해낸 셈이다. 레이디 버드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썼기에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시얼샤 로넌이 연기로 보여주고 나서야 그녀를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10대 소녀의 사춘기를 생각하면 또래 소년과의 로맨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레이디 버드의 사춘기는 엄마와의 관계에 좀더 방점이 찍힌 듯 보인다.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담은 영화가 거의 없어서 꼭 한번 그려보고 싶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엄마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에 이르면 여자들은 본인이 엄마가 되기도 한다. 엄마와 딸의, 아름다우면서도 복잡하고 어딘지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는 이 관계야말로 내가 가장 깊게 이해하는 관계이자 재미있는 소재가 될 것이라 믿었다.

-레이디 버드가 지원한 대학에 줄줄이 떨어지는 장면도 꽤 사실적이었다. 이 역시 당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가.

=생각해보면 나도 정말 많은 거절들을 겪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 여러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것은 사실 일상이기도 하고. 고등학생 때 드라마 스쿨에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아마 당시 입학사정관들은 나를 기억도 하지 못할 것이다. (웃음) 만약 당신이 실패를 경험했다고 그 분야를 바로 포기해버린다면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세상에는 아직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정말 많은 실패와 거절들이 존재하니 겁먹지 말라고, 그저 우리는 다음을 묵묵히 준비하면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시얼샤 로넌은, 당신이 처음부터 레이디 버드로 생각했던 배우인가.

=아니다. 시얼샤 로넌은 2015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의 호텔 방에서 우리 영화의 각본을 소리내어 같이 읽었는데, 그 순간 그녀가 바로 우리의 레이디 버드라는 걸 알게 됐다!

-레이디 버드를 위해 시얼샤 로넌에게 읽을 거리와 볼거리를 포함한 다양한 자료를 건넸다고.

=그렇다. 프랭크 오하라의 시집 <Lunch Poems>와 E. B. 화이트의 도시 기행문 <여기, 뉴욕>을 전달했다. 이들 작품들에서 오래전 뉴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신화적인 뉴욕 말이다! 이제는 다소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존 휴스의 영화들도 보라고 권했다. 그 밖에 레이디 버드가 들을 것 같은 혹은 그의 정서에 맞는, ‘비키니 킬’ 같은 그룹의 노래들을 담은 플레이리스트도 전달했다. 물론 감독으로서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배우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 배우들이 내가 내준 숙제를 해오는 것 혹은 반대의 상황에 대해서는 더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후반부, 레이디 버드가 뉴욕의 대학교에 입학한 첫날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시카고, 런던과 같이 큰 도시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것은 내가 어릴때부터 가졌던 로망이었다. 특정한 어떤 도시가 아니라 그저 큰 도시에 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흥분이랄까.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서, 기숙사 방 내 침대에 누었을 때 들었던 기묘한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 현실이 되었는데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느껴졌던 그때 그 마음을, 우리 영화에 반드시 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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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