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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 인정하고 공식 사과
김성훈 2018-04-06

“참회의 뜻을 담아 사과합니다”

“영화인과 국민 여러분께 깊은 참회의 뜻을 담아 정중하게 사과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것을 인정하고 국민과 영화인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4월 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영진위 대국민 사과와 혁신 다짐 기자회견’에서 오석근 영진위원장은 “영진위는 지난 두 정부에서 관계 당국의 지시를 받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차별과 배제를 직접 실행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 참혹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반성하고 사과하는 일도 너무 많이 늦었다”면서 “아직 진상이 명백하게 규명되지 않은 일도 적지 않고 밝혀진 과오를 바로잡고 재발을 방지하는 후속조치도 턱 없이 미흡하다. 부단히 되돌아보고, 통렬하게 반성하고, 준엄하게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 8일 취임한 오 위원장은 내부 조사를 통해 블랙리스트 실행과 관련된 내용들을 파악해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힌 영진위의 블랙리스트 실행은 2009년부터 시작됐다. 영진위는 당시 각종 지원사업 심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청와대와 국정원 등 정부의 지침에 따라 지원작(자)을 결정하는 편법 심사를 자행했다. 이것은 2008년 8월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이 작성한 내부 문건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에 따라 실행된 조치인 듯하다. 2012년 당시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이 입수해 폭로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진보 성향 문화예술 말살정책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에서 시작되고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영진위는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위탁사업의 공모제 전환과 사업자 선정 과정 부당 개입,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글로벌국제영화제 육성지원사업, 독립영화 제작지원사업, 다양성영화배급지원사업,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등 지원 대상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심사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한 동성아트홀, <다이빙벨>을 상영한 여러 예술영화전용관과 독립영화전용관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또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절반으로 삭감했다. 오 위원장은 “당시 청와대와 관계 당국은 특정 영화인 배제 지침을 영진위에 하달하고, 영진위는 각종 지원 신청작(자)에서 이 지침과 가이드라인에 해당하는 작품과 영화인을 선별해 보고했으며, 관계 당국은 특정 작품의 지원 배제 여부를 영진위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밝혀진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가 56건에 이르고, 곧 조사를 종료하고 발표할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위의 조사결과에 따라 피해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영진위는 블랙리스트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내부 ‘영진위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렸고, 이 특별위원회는 곧 활동을 시작한다. 조종국 영진위 사무국장은 “영화계로부터 광범위하게 신고를 받을 계획이다. 특정 정부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에 해당되는 내용이라도 신고를 받아 조사할 예정”이라며 “1년 활동을 잡고 있다. 단순하게 한두달로 끝내지 않고, 밝혀야 할 문제가 있으면 면밀하게 조사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진상을 밝히겠다. 책임을 묻고 조치를 내리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영진위는 사무국 조직 개편 결과, 미래 설계 TF 운영 결과와 함께 역점 추진 과제를 공개했다. 아시아영화진흥기구를 설립하고, 영화 프로젝트 파이낸싱 보증을 위한 한국영화 제작보증기금을 조성하며, 초·중·고 공교육 영화과목 정규화를 추진하고, 공정환경조성센터를 고도화하고, 온라인 통합전산망을 구축하고,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한다는 게 그 내용이다. 9년 만에 이루어진 영진위의 대국민 사과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동력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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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진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