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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창간 23주년, 죽어야 사는 남자 정우성 별책에 부쳐
주성철 2018-04-13

정우성은 영화 속에서 거의 언제나 죽었다. <비트>에서도 죽고 <본 투 킬>에서도 죽고 <유령>에서도 죽고 <무사>에서도 죽고 <중천>에서도 죽고 <새드무비>에서도 죽고 <마담뺑덕>에서도 죽고 <아수라>에서도 죽고 <강철비>에서도 죽었다. 창간 23주년 기념 2호인 1151호를 제작하며 한국영화계 영원한 청춘의 초상 정우성을 특별 인터뷰하면서, 그와 인연이 깊은 영화인들 김성수·임필성·양우석 감독, 한재덕 대표를 대담자로 모셨는데(42쪽 기획 기사 참조) 공교롭게도 모두 정우성을 죽인 감독들이다. 물론 언제나 그를 죽였던 김성수 감독이 <태양은 없다>에서만큼은 유일하게 그를 살려주었지만, 영화 속 링 위에서 복싱선수인 그를 거의 죽기 직전까지 얻어터지게 만들었다. 그처럼 죽음으로써 자신의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드러냈던 ‘죽어야 사는 남자’는 세계영화계를 봐도 극히 드물다.

역시나 <천장지구>에서도 죽고 <지존무상>에서도 죽고 <복수의 만가>에서도 죽고 <천여지>에서도 죽고 <결전>에서도 죽고 <삼국지: 용의 부활>에서도 죽고 <무간도> 마지막 편에서도 죽었던 홍콩영화계의 유덕화 정도가 그와 비슷할 것이다. 게다가 장면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 <중천>의 소화(김태희)는 “네 모습 영원히 기억할게”라며 눈감는 그를 가만히 지켜봤고, <새드무비>에서는 소방관으로 출연한 그가 불길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었으며, <유령>에서는 이미 죽어버려 바다 속에 잠긴 그가 “나는 지금 하늘이 보고 싶다”라는 내레이션을 하게 만들었다. <씨네21> 창간 이전인 1994년 <구미호>로 데뷔한 그의 지난 25년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바로 정우성은 영화 속에서 언제나 우리 대신 죽은 안티히어로였다. 그렇게 정우성은 죽음으로써 한국영화와 함께해왔다.

그런 점에서 <비트>의 김성수 감독이 정우성과 다시 만난, ‘<비트>로부터 20년 뒤’ <아수라>(2016)는 무척 상징적이다. <비트>에서 “나에겐 꿈이 없었다”고 말했던 그가 <아수라>에서는 오프닝 장면부터 “저는 인간이 싫어요”라고 절망적으로 얘기한다. 비록 꿈이 없어도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20년 전의 그가 이제 더 깊은 환멸에 빠져든 것이다. 대한민국 청춘들의 초상이 바로 거기 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한 배우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치밀하게 계산되어 결국 몸에 배어버린 궁극의 메소드 연기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배우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그 자신만의 고유성이 담기기 마련이다. 배우 정우성의 현재 능력과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이전에 바로 그 고유성을 초월하여 뭐랄까,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최근작들을 보면 우리가 알던 정우성이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JTBC <뉴스룸>과 KBS <뉴스집중>에 나가 소신 발언을 하고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 내레이션을 맡은 모습 또한 그렇다. 어쩌면 인간 정우성이 지닌 인성과 품격, 그리고 배우 정우성의 부단한 노력과 오랜 경험이 결합하여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놀랍다. 이제 그는 그냥 다른 사람이 되었다. 바로 지금의 정우성을 주목하고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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