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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소녀> 1997년으로 타임슬립한 애틋한 사랑 이야기
이주현 2018-05-03

나를 과거로 데려가줘. 널 사랑할 수 있게

대만에서 또 한편의 첫사랑 영화가 당도했다. 사준의 감독의 <안녕, 나의 소녀>는 어쩌다 1997년의 열여덟 학창 시절로 돌아간 정샹(류이호)이 가수로 데뷔하는 게 꿈인 첫사랑 은페이(송운화)를 다시 만나 그녀의 운명을 바꾸려 애쓰는 이야기다. 타임슬립, 첫사랑, 대만의 요절한 뮤지션 장위성 등 <안녕, 나의 소녀>를 구성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영화의 재미를 살펴봤다. <나의 소녀시대>(2015)에서 린전신이라는 평범한 여고생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그려낸 배우 송운화와 대만을 넘어 아시아의 꽃미남으로 떠오른 배우 류이호의 빛나는 케미스트리도 빼놓을 수 없다. 5월 17일 개봉하는 <안녕, 나의 소녀>는 첫사랑의 기억도 아련하고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한 당신의(실은 나의)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그나저나 시간을 돌리는 묘약은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안녕, 나의 소녀>는 어떤 영화?

3년 전. 일본에 출장을 간 정샹은 고등학생 때 함께 문밴드 활동을 했던 은페이를 만난다. 춤과 노래, 다방면으로 재능이 출중했던 은페이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오디션에 합격해 제2의 아무로 나미에로 일본에서 데뷔한다. 정샹은 일본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있을 은페이를 생각하며 그녀의 기획사를 찾아가지만 정샹의 눈앞에는 환경미화원이 된 은페이가 서 있다. 일본에서의 은페이의 삶이 외롭고 고달파 보이자 정샹은 자신을 책망한다. 은페이의 꿈을 지지하고 일본 데뷔 오디션을 부추긴 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정샹은 성인이 돼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문밴드의 멤버들, 아성(이전), 샤오펀(요애녕), 다바오(석지전), 샤오바(엄정람)와 함께 모였다. 은페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다툼이 일어나고, 정샹은 홀로 비틀거리며 밤거리를 걷다 수상쩍어 보이는 노파에게 목련꽃 세 송이를 건네받는다. 그러곤 목련꽃 향기를 맡고 쓰러진다. 눈떠보니 1997년의 대만 시먼딩 거리. 고등학교 졸업식 3일 전으로 돌아간 정샹은 현재의 기억을 간직한 채 과거를 살게 된다. 이제는 첫사랑 은페이에게 제대로 마음을 고백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은페이가 불행한 삶을 살지 않도록 미래를 바꿀 기회가 생겼다. 은페이가 일본 데뷔 오디션을 보지 못한다면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것이다. 하지만 은페이의 꿈은 강고하다. 그러는 동안 하룻밤에 한 송이씩, 목련꽃 세 송이가 시든다.

1997년, 타임슬립 로맨스

<안녕, 나의 소녀>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즉, 타임슬립을 활용한 로맨스 영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어바웃 타임>(2013) 등 시간을 거슬러 운명을 바꾸는 타임슬립 로맨스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사랑받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간은 인간이 풀지 못한 비밀 중 하나라 시간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짜릿한 일탈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사랑은 후회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후회를 만회할 두 번째 기회를 고대한다. <안녕, 나의 소녀> 역시 타임슬립으로 두 번째 기회를 얻은 남자가 첫사랑의 운명을 바꾸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안녕, 나의 소녀>에서 시간을 되돌리는 장치는 우연히 얻은 목련 꽃송이. 영원히 피어 있는 꽃은 없듯 과거로 돌아간 정샹에게도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다. 정샹이 시간을 거슬러 당도한 때는 1997년. 한국에선 젝스키스가 데뷔해 HOT와 인기를 양분하기 시작했고,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가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던 시기다. 세계적으로는 다이애나비의 교통사고 사망, 홍콩의 중국 반환이라는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소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출간과 동시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스무살의 아무로 나미에는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1997년에 돌연 결혼을 발표했다. 1997년의 대만에선 구제역이 발발했고, 최악의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바이샤오옌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가수 장위성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영화가 1997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이유도 이중에 있다. <안녕, 나의 소녀>의 시나리오작가 풍발체는 장위성의 팬이었다. 장위성의 콘서트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장위성의 곡 <대아거월구>(영화의 원제이며, 풀이하면 ‘달에게 데려다줘’라는 뜻이다)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꾸고 싶다’, ‘과거 장위성의 콘서트로 돌아가고 싶다’는 순수한 생각들을 한데 모아 <안녕, 나의 소녀>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법을, 꿈을 좇는 청춘의 이야기와 복잡한 방정식과도 같은 첫사랑 이야기에 접목한 작품이 <안녕, 나의 소녀>다. 혹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가 대만 첫사랑 영화와 만났다고나 할까.

대만 첫사랑 영화

타임슬립과 복고 코드 그리고 교복 입은 10대들의 첫사랑이라는 소재는 일련의 대만 청춘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2000년대 이후 대만영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대표작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나의 소녀시대>는 <안녕, 나의 소녀>가 레퍼런스 삼은 영화처럼 보인다. 거칠게 요약하면 <안녕, 나의 소녀>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은페이와 지금의 나는 미래에서 온 존재라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정샹이 특별했던 ‘나의 소녀/소년 시대’를 함께하는 이야기다. 우선 타임슬립이란 소재는 주걸륜계륜미 주연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즉각 환기시킨다. 고교 시절 바보 같은 장난질을 함께 일삼았던 친구들과의 한때를 그리워하고, 고백의 타이밍 따위 알 리 없어 첫사랑에게 좋아한다 말도 못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란 점에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떠오른다. <나의 소녀시대>와 <안녕, 나의 소녀>는 모두 배우 송운화가 주인공인 영화이며, 각각 1994년과 1997년을 배경으로 복고의 정서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안녕, 나의 소녀>를 포함한 네 영화는 회상이나 시간이동이란 장치를 활용해 10대 시절의 첫사랑을 얘기한다. 거기엔 그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가 배어 있다. 최근의 대만 청춘영화들은 자주 과거를 회상하고 소환한다. 이들 청춘영화엔 미래를 행복하게 전망하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의 시선과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향수에 젖는다는 건 곧 현재가 시시하다는 뜻이다. 꿈을 좇아 살아왔지만 어른이 되어 맞닥뜨리는 세계는 원했던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기 직전, 대학 진학을 앞둔 열여덟의 여름은 열정적으로 꿈꾸고 바보같이 누군가를 좋아했던 시절이다. <안녕, 나의 소녀>의 10대 정샹은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닳도록 읽고 셰프가 되겠다는 꿈을 꾸던 소년이었지만, 어른이 된 정샹은 세프가 꿈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간다. 정샹에게 첫사랑 은페이는 잃어버린 꿈을 환기시키는 존재이며, 꿈을 꾼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일깨워주는 존재다. 과거로 돌아가 첫사랑을 만난다는 건 잃어버린 나의 꿈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장위성의 노래, 7080세대를 소환하다

<나의 소녀시대>에 유덕화가 있다면 <안녕, 나의 소녀>에는 장위성이 있다. <안녕, 나의 소녀>는 장위성 사망 20주기였던 2017년에 대만에서 개봉했다. 그런 만큼 영화에는 장위성에 대한 헌사와도 같은 장치가 빼곡하게 담겨 있다. 1966년에 태어나 1997년에 눈을 감기까지, 장위성은 고음역대의 노래를 소화하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가수로, 무수한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로, 장혜매 등 후배 가수들을 키운 유능한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교통사고로 31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1988년 창작가요제 우승을 시작으로 10년간 그가 남긴 곡들은 여전히 리메이크 되고 있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연스레 영화에는 장위성의 음악이 중요하게 사용된다. 영화의 제목이자 문밴드가 영화에서 처음 선보이는 <대아거월구>를 비롯해, <기대합니다> <내 미래는 꿈이 아니야> <널 잃고 싶지 않아> 등이 삽입되어 있다.

대만영화가 음악을 활용하는 주된 방식 중 하나는 영화의 내용과 일치하는 노래를 삽입해 주인공의 심리를 대신 전하는 건데, 장위성의 노래 가사는 은페이와 정샹의 속마음을 대신 전하는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장위성의 팬에게 더욱 반가운 소식은 실제 무대에서 노래하는 장위성의 생전 모습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장위성의 노래를 들으며 꿈을 키운 대만의 7080세대에겐 이 영화가 특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송운화와 류이호, 그 여자 그 남자의 사정

<나의 소녀시대>의 송운화와 <안녕, 나의 소녀>의 송운화는 과연 동일 인물이 맞나 싶다. 자꾸만 콧잔등으로 미끄러져내리는 안경, 빗질하지 않은 덥수룩한 단발머리, 덤벙거리다 이내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하고 마는 만화 같은 행동들. <나의 소녀시대>의 여고생 린전신이 보여준 친근함과 귀여움은 왕대륙의 강렬한 매력과 조화를 이루며 특별한 시너지를 발생시켰다. 영화를 든든하게 떠받친 송운화의 연기는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2014)로 데뷔한 신인배우의 연기라고 하기엔 믿기 힘들 만큼 안정적이고 다채로웠다. 그런 그녀가 <안녕, 나의 소녀>에선 린전신의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다양한 끼로 무장한 교내 스타 은페이가 된다. 송운화는 아무로 나미에의 헤어와 패션을 소화하며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까무잡잡한 피부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덕에 꽤 아무로 나미에의 느낌이 난다). <나의 소녀시대>로 금마장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당시 시상식에서 직접 영화 주제가 <소행운>을 부르며 숨겨진 노래 실력을 뽐냈던 송운화는 이번 영화에서도 깨끗한 목소리로 장위성의 원곡에 새로운 느낌을 더한다.

웃는 모습이 특히나 상큼한 대만의 미남배우 류이호는 문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첫사랑 은페이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정샹을 연기한다. 류이호는 모델선발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발을 들였고, <연애의 조건>(2011), <몰유명자적첨점점>(2013), <세컨드 찬스>(2014), <타간타적제2안>(2015)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그는 대만의 인디밴드 ‘칭첸덴’의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인 뮤지션이기도 하다. “넌 기타 칠 때가 제일 멋있다”는 영화 속 은페이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스쿨밴드 멤버로서 기타 연주를 할 때의 모습도 멋있지만 첫사랑 은페이는 물론 철부지 친구들을 챙기는 다감한 모습 또한 사랑스럽다. <나의 소녀시대>의 왕대륙이 거칠고 장난기 다분한 소년의 숨겨진 순정을 어필했다면, <안녕, 나의 소녀>의 류이호는 심한 장난을 쳐도 다 받아줄 것 같은 편안함으로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송운화의 야무지고 다부진 모습과 류이호의 스펀지 같은 매력이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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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드(A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