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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최성열 2018-05-22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 허유영 옮김 / 비채 펴냄

핑크빛 표지에 ‘첫사랑’ , ‘낙원’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장식되어 있지만 이 소설은 강간 피해자의 마음속 지옥도를 그려낸 세밀화다. 쓰치와 이팅은 문학을 사랑하는 13살 소녀들이다. 감수성 풍부한 문학소녀들의 세계는 안온하게 흘러갔다. 50살의 인기 강사 리궈화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소녀들은 이웃집 이원 언니의 집에 들락거리면서 문학 전공자인 언니와 토론하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들의 세계에 문학 강사 리궈화가 침입한다. 입시 인기 강사의 자리를 이용해 소녀들을 유린해온 리궈화는 쓰치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주겠다’며 유인하고, 강간 후에는 ‘이건 선생님이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위장한다. 폭력으로 지배한 후에는 교묘한 말로 정신을 지배한다. 우리의 관계는 장아이링의 연인 후란청(작가이자 유부남이었지만 14살 연하의 장아이링과 비밀결혼했다), 루쉰과 쉬광핑(루쉰의 제자였으며 17살 연상인 루쉰과 동거했다)의 관계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쓰치가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이원 언니는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하고, 이웃들은 피해자 얼굴 위의 멍자국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눈돌린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쓴 린이한은 책이 출간된 후 자살했다. 작가 나이 26살이었다. 작가의 가족들은 이 소설이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인정하고 가해자를 고발했다. 그러나 “팡쓰치가 본인이냐”는 질문에 생전의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팡쓰치인지 아닌지는 이 책의 가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질문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해야 한다. 포식자에 의해 찢어지고 뭉개진 소녀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독자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그리하여 눈돌리고 싶을 때마다 팡쓰치는 세상에 이러한 고통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름다워서 더 고통스러운 문장 사이사이에 슬픔이 차오르는 소설이다.

피해자의 기록

이원이 쪼그려 앉아 두 소녀에게 말했다. “내 머릿속에 더 많은 책이 들어 있어.” 시어머니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머릿속에 책을 넣지 말고 배 속에 애를 넣어야지.” 텔레비전 소리가 그렇게 큰데 며느리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신기했다. 이팅은 이원 언니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았다.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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