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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만난 감독들①] <겨울밤에> 장우진 감독,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는 여행”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8-05-23

장우진 감독의 <겨울밤에>는 올해의 전주에서 만날 수 있었던 가장 인상적인 영화 중 한편이었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인 이 영화는 연인 시절 처음으로 관계를 맺었던 장소인 춘천 청평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중년 부부를 조명한다. <겨울밤에>는 무엇보다 시공간의 상대성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의 영화다. 하나의 프레임 속에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이 녹아들고, 등장인물들은 같은 시공간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위인으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꼽는 장우진 감독은 현재 한국 독립영화 신에서 시간의 상대성을 테마로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내고 있는 연출자다. 그런 그에게 <새 출발>(2014), <춘천, 춘천>(2016)에 이은 세 번째 장편영화 <겨울밤에>는 사실주의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스타일을 실험한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겨울밤에>의 시작이 궁금하다.

=춘천의 사계절을 영화에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전작 <춘천, 춘천>이 춘천의 가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다음 영화는 춘천의 겨울을 배경으로 찍고 싶었다. 어디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던 도중 춘천의 청평사가 떠올랐다. 청평사는 386세대의 연인들이 당일치기로 가기 딱 좋은 곳이었다고 하더라. 서울에서 경춘선을 타고 아침 일찍 떠나 하룻동안 놀다 올 수 있는. 하지만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기에 교통편이 끊긴다면 의도치 않게- 누군가는 의도했겠지만-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장소다. 과거 이곳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중년 부부가 30년 만에 다시 청평사를 찾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그게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중년 부부가 주인공인 한국영화는 드물다. 특히 이 세대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나.

=<춘천, 춘천>에서 중년 불륜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그 세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나 역시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시간이니 미리 고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중년 배우들과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요즘 들어 내가 잘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영화를 찍으면서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전작을 작업하며 청춘은 내가 거쳐온 시간들이라 잘 안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막상 영화를 만들다보니 경험해봤다고 다 아는 게 아니더라. 어차피 잘 모른다는 건 똑같다.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거고, 인생을 다루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은주(서영화)와 흥주(양흥주) 부부가 다시 청평사를 찾게 된 계기는, 은주가 부근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핸드폰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가 찾는 건 핸드폰만이 아닌 듯하다.

=영화의 중요한 레퍼런스가 된 작품이 <심우도>다. 잃어버린 소를 찾는 동자의 여정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표현한 선화(禪畵)인데, 이처럼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는 여행을 다뤄보고 싶었다. 은주가 잃어버린 물건을 핸드폰으로 설정한 이유는, 동자에게 소가 그렇듯 은주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없어서는 안 될 존재를 고민한 결과다. 은주를 연기한 서영화 선배와의 대화에서 많은 걸 느꼈다. 지금의 한국 결혼제도에서 여성들이 자신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극중에서도 은주가 “생각해보니 내 건 이것(핸드폰)밖에 없다”고 얘기하잖나. 그게 이 여정의 핵심적인 대사다. 그녀가 핸드폰을 찾는 과정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30대 남성감독으로서 중년의 커플을 다룬 영화를 만들며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여성에 대한 이해인 것 같다.

-<겨울밤에>는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영화다. 프레임 안팎의 경계가 모호하고 다른 시간대가 뒤섞이며 현실과 환상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한다. 이런 연출 방식을 택한 이유는.

=그동안 인터뷰에서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연출자로서의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다. 우주의 시간이 연속적인 것 같지만 상대적이라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나 자신만 해도 머릿속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하고 있다. <겨울밤에>의 주인공인 중년의 부부 역시 30년의 간극을 두고 다시 찾은 청평사에서 많은 감정과 기억이 휘몰아치는 걸 경험했을 거다. 이것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할까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인물의 동선과 카메라의 움직임, 프레이밍에 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을 했다. 한편으로는 한국 독립영화 하면 자연스럽게 리얼리즘, 사실주의, 잿빛 현실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러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다른 걸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실주의보다는 구조주의적인 접근 방식을 택한 작품이 바로 <겨울밤에>다.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현장에서의 즉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 스타일은 이번 영화에서도 그대로인가.

=그렇다. 시나리오는 나의 상상이자 한계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내 작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고, 반대로 나에게 새로운 고민을 던져주기도 했다. 이번 작품을 함께한 서영화, 김선영, 양흥주, 우지현, 이상희 배우에게 놀랍고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가 미처 해보지 못했던 경험과 생각을 네 배우가 나에게 내어준 것 같고, 이런 경험을 통해 앞으로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차기작은 어떤 영화인가.

=한국을 벗어나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베를린에 간 여성 유학생이 어느 날 밤 신비로운 공간에서 북한 커플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혈연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친구로 만나는 북한 사람은 어떨까. 남북간에 이뤄지는 다른 형태의 관계 맺음에 대해 젊은 세대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밤에>는 어떤 영화?

중년의 부부, 흥주(양흥주)와 은주(서영화)가 춘천 청평사를 찾는다. 다시 돌아가려던 이들은 은주가 핸드폰을 잃어버리며 청평사 근처의 식당에서 묵게 된다. 알고 보니 이곳은 두 사람이 30년 전 처음으로 하룻밤을 보낸 장소다. 한편 부부와 같은 공간을 떠도는 20대 군인과 여자가 있다. 두 커플의 행보는 다르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1988년과 2018년의 시간은 의미심장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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