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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8-06-13

“성평등 교육과 여성의 노동권 보장이 중요하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6월 4일 열린 여성영화제의 쟁점 토크 ‘여성가족부XSIWFF 토크콘서트: #WITHYOU’에 참석했다. 영화 <아니타 힐>(2013)을 보고 우리 사회의 미투(#MeToo), 위드유(#WithYou) 운동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다. <아니타 힐>은 1991년 미국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클래런스 토머스의 성희롱을 세상에 고발한 아니타 힐의 이야기로, 아니타 힐은 미국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및 양성평등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흑인 여성이다. 정현백 장관을 직접 만나 27년 전의 아니타 힐 사건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지,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어떤 정책과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지 물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된 정현백 장관은 시민사회운동을 하던 학자 출신으로, 올해 7월이면 임기 1년을 맞는다.

-한명의 여성으로 그리고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아니타 힐>을 본 소감이 궁금하다.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아니타 힐의 용기에 감동받았다. 백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상원의원들 앞에서 당당하고 차분하게 자신이 겪은 성희롱 사건을 증언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니타 힐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클래런스 토머스는 종신직인 대법관으로 임명됐지만 그녀의 용기 있는 증언이 실패라고 생각지 않았다. 아니타 힐은 고향으로 돌아가 사람들의 환대를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의 편지를 받는다. 그녀의 증언이 실패가 아닌 변화를 위한 희망의 시작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더불어 아니타 힐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용기 있게 ‘미투’를 외쳤던 여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투 운동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시작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준 영화였다.

-1991년에 불거진 미국의 아니타 힐 사건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성폭력 문제에 둔감한 미국 엘리트 사회의 모습과 그로 인한 2차 피해의 심각성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의사 결정권을 가진 고위직 남성들의 모습은 어떤지, 2차 피해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문제의식은 어떤지 생각하게 만든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된 적폐인 성별 권력구조와 성차별 문제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마침내 터져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미투 운동을 넘어 사회구조적 변화, 예를들면 성평등 의식과 성평등 문화의 확산, 평등한 노동권의 실현 등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 그러기 위해선 성평등 교육과 여성의 노동권 보장이 중요하다. 민간기업보다 공공부문에서 성희롱·성폭력 신고율이 높은 이유는 공공부문의 경우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타 힐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성별에 따라 성희롱 및 성폭행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다. 성별 인식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선 어떤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까.

=남녀의 성 의식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회구조 속에서 연령, 성별에 따라 차지하는 각자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20대 여성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언제든지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자각했고, 이들의 자발적인 운동이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반면 20대 남성들은 잠재성장률이 감소하고 가부장제가 해체되는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과거 남성에 비해 지위가 약해진 상태로 보다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이게 됐다. 실제로 <한겨레21>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온라인 심층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여성친화적인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항목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다른 집단과 비교해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항목에 반대한 사람 중 20대 남성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려면 청년층이 겪고 있는 취업난, 주거난 등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더불어 성평등 가치에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청년세대의 주거, 고용 등의 문제를 성평등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정책 당사자인 청년여성과 남성을 아우르는 ‘청년 참여 성평등 정책 추진단’ 및 ‘성평등 보이스’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선 얼마나 인지하고 있으며, 미투 운동 이후 여성가족부에선 어떤 정책과 대안을 고민하고 있나.

=지난 3월 8일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범정부 협의체를 출범했다. 그전까지는 여성가족부가 공공부문,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계, 교육부는 교육계, 고용노동부는 민간부문을 나누어 담당했다.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현재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협업해 특별조사단을 꾸렸다. 문화예술계 역시 남성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한 것 중 하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성희롱 및 성폭력 전과가 있는 개인과 단체는 배제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지원프로젝트의 심사위원 남녀 비율도 점검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또한 여성가족부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범정부 대책 수립 시 사건 조사나 처리 과정에서 철저히 피해자 관점이 반영되도록 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가명조서가 적극 활용되도록 하고, 악성 댓글에 대한 사이버수사도 엄정하게 진행하도록 힘쓰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무고죄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경우도 문제인데.

=그에 대해서도 법무부와 검찰과 의견을 나눴다.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사실 공개로 인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나 무고죄는 수사과정에서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극 적용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가해자가 무고죄나 명예훼손죄로 소송을 걸더라도 성희롱·성폭력 사건 수사가 종결되기 전까지는 수사를 개시하지 않기로 했다. 가해자의 협박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2차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라 생각한다. 여성가족부는 범정부 협의체의 컨트롤타워로서, 협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부서는 많이 괴롭히고 있다. (웃음)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문희 배우가 주연한 <아이 캔 스피크>(2017)나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화를 다룬 <허스토리>(개봉예정) 같은 작품에도 관심이 있는지.

=지난해 9월 26일 주한 외교관, 유학생 등 100여명의 관객과 <아이 캔 스피크>를 봤다. 어둡고 아픈 역사를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무겁거나 슬프기만 하지 않고 메시지를 명확하고 호소력 있게 전달해서 좋았다. 참고로 <아이 캔 스피크>는 지난 2014년 여성가족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사업” 결과 선정된 시나리오 중 한편이었다. 역사인식이나 여성인권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 문화라는 매체가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스토리> 역시 개봉하면 볼 예정이다.

-비영화인에게 드리는 일종의 공식 질문이다. 혹시 내 인생의 영화가 있나.

=<완득이>(2011)와 <아이 캔 스피크> 두편을 얘기하고 싶다. 독일의 노동자 문화를 연구하면서 보니,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을 의식화하려고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의 영화를 보게 했는데 오히려 노동자들은 낭만주의 작가들의 연애 이야기를 더 좋아했다. 일상도 고통스러운데 극장에서까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완득이>와 <아이 캔 스피크>가 좋았던 이유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이야기가 충분히 재밌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완득이>에선 선생님과 완득이가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엔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따뜻하게 느껴졌고, <아이 캔 스피크> 역시 재미와 메시지가 명확해서 좋았다. 어떻게 보면 여전히 영화를 계몽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한데, 기본적으로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 보면서 치유받을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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