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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인형의 사정
김혜리 2018-06-13

※<버닝>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전>

<유전>은 깊숙이 할퀴는 호러다. <악마의 씨>(1968)나 <엑소시스트>(1973)처럼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 뒤를 밟아 꿈속까지 따라온다. 신인감독 아리 애스터는 촬영, 음악, 미술 등 모든 영화적 장치를 동원해 이 가족 비극의 공포를 완성했는데 특히 집의 중요성은 치명적이다. 주인공 애니 그레이엄(토니 콜레트)과 남편이 두 남매와 사는 주택의 실내는 눈에 띄게 층고가 높다. 머리 위로도 공간이 한참 남아 인물들이 작고 무력해 보인다. 감독은 2:1의 화면 비율을 택하고 한쪽 벽을 뗄 수 있는 세트를 지어 가능한 한 높고 넓은 실내숏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가족의 집은 미니어처 아티스트인 애니가 매일 만드는 ‘인형의 집’의 확대판처럼, 인물은 외부의 불가항력에 휘둘리는 인형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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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해미(전종서)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할 것만 같다. 귤, 고양이, 우물, 말없이 끊기는 수상한 전화. <버닝>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에서 빌려온 기호들을, 주로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부재하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공동’(空洞)으로 사용한다. 성형수술로 얼굴이 달라졌고, 종수(유아인)의 기억에 없는 일화를 들려주다가 “그야말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해미도 어찌 보면 목록에 추가할 수 있다. 해미의 캐릭터는 <버닝>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헛간을 태우다>에서 가장 충실히 물려받은 부분이다. 소설 <헛간을 태우다>에서 ‘그녀’라고 불리는 이 여성은, 1인칭 남성 화자 ‘나’의 11살 연하 말벗이며, 만나는 남자들의 호의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다음과 같이 여자의 매력을 설명한다. “(그녀의) 개방적이고 이론적이지 않은 단순함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그 단순함을 마주하면 자신들이 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을 문득 거기에 끼워넣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와 나오코가 대표하는 무라카미식 여성 인물의 일원이다. 그녀들은 만나는 남자들이 당면한 문제를 잊게 해주거나 혹은 각성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문제는 (작가를 비롯해)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고, 그냥 사라지는 식으로 이야기에서 퇴장한다.

<버닝>의 해미는 예쁘고 엉뚱하고 몽상적이다. 해미는 메타포라는 단어는 모르지만 칼라하리 사막의 거대한 허기(hunger) 이야기와 팬터마임을 통해 종수에게 메타포를 준다. 아무 전망이 없던 작가 지망생에게 어쨌든 세계를 읽는 관점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리고 아프리카로 날아가더니 종수에게 구체적 목적이 될 인물 벤(스티븐 연)을 종수에게 데려온다. 두 남자와 대마초를 피운 저녁 해미가 석양 앞에서 추는 간절한 춤은 종수와 벤이 서로에게 비밀을 털어놓기 적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대화가 진행되는 사이 해미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다. 종수는 해미를 사랑한다고 벤한테만 고백하고, 해미는 종수와 현실적 고민을 나누는 법이 없다. “오늘이 최고의 하루야!”라고 선언하자마자 해미는 이야기에서 말끔히 실종된다. 종수가 소설을 쓸 수 있는 월세방을 덩그러니 남긴 채. 이제 그녀의 부재가 종수를 움직이는 명분이 된다. 실제로 종수가 벤을 추적하는 이유는 해미를 위해서가 아니지만 마지막 순간이 오기까지 종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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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풍 여성 캐릭터라고 했지만, 해미는 영미권에서 ‘매닉 픽시 드림 걸’(Manic pixie dream girl)이라고 불리는 영화 속 여성 인물 유형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변덕스런 요정 캐릭터” 정도로 의역 가능한 ‘매닉 픽시 드림 걸’은 2005년 평론가 네이선 라빈이 <엘리자베스타운>의 커스틴 던스트의 배역을 가리켜 쓴 표현이라고 하는데, 이후 유사한 여성 캐릭터 전형을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했다. 내가 굳이 ‘요정’이란 단어를 끼워넣은 것은 <피터팬>에서 네버랜드로 피터를 데려가지만 스스로는 나이들지 않는 팅커벨의 연상 탓이다. 라빈에 의하면 이 여성 캐릭터들은 “젊은 남성들이 삶을 그 미스터리와 모험을 포함해 끌어안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어 하는 감수성 풍부한 작가-감독의 열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며 본인의 행복 추구보다 남성 인물을 돕는 데에 존재 목적이 있고 (남자에게) 언제나 접근 가능한 완벽한 매력덩어리다. 많은 경우 이 여성들은 논리를 넘어 충동적이고 세속에 연연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영화 속 여성의 오랜 상투형인 성녀와 창녀를 비껴간다는 것이다. 극중에서 그들은 섹스와 행동에서 주체적인 자유인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단, 삶의 무게가 결여돼 있고 대신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대로 “복잡한 문제를 끼워 넣고 싶은 단순함”으로 남자주인공의 짐을 받아주며 그 결과로 본인이 겪을 현실적 여파는 영화에서 생략된다.

이쯤 되면 튀는 염색이나 헤어스타일, 우쿨렐레 등으로 기억되는 영화 속 여자친구 몇을 누구나 떠올릴 것이다. <파이트 클럽>(1999)의 헬레나 본햄 카터, <버팔로66>(1998)의 크리스티나 리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2010)의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멀리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의 오드리 헵번과 <중경삼림>(1994)의 왕정문, <500일의 썸머>(2009)의 주이 디샤넬, <루비 스팍스>(2012)의 조이 카잔, <이터널 선샤인>(2004)의 케이트 윈슬럿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녀>(2013)의 스칼렛 요한슨과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의 홀로그램 조이도 호명할 수 있다. 물론 ‘매닉 픽시 드림 걸’은 한층 규정하기 까다로운 전형이다. <500일의 썸머>의 마크 웹 감독, <루비 스팍스>의 작가이자 주연인 조이 카잔 등 관련 영화인들은 ‘매닉 픽시 드림 걸’이라는 딱지 자체가 캐릭터의 이면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성 차별적이라는 다분히 정당한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루비 스팍스>의 루비는 상대에게 이상형을 덧씌우는 남성의 욕망을 반박하는 캐릭터라고 카잔은 설명했고, <이터널 선샤인>의 작가 찰리 카우프먼은 아예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럿)의 대사로 선제방어도 한다. “많은 남자들이 나를 하나의 컨셉으로 여겨. 자기를 완성하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해. 하지만 나는 그저 내 마음의 평화를 찾는 엉망진창인 여자일 뿐이야. 난 너의 매닉 픽시 드림 걸이 아니야.”

<버닝>의 해미도 주관이 강하고 남자의 폭력에 희생되는 일은 없다. 심지어 행방불명되는 결말조차 본인의 소원 성취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버닝>의 앞부분에서 해미는 죽지 않고 노을처럼 소멸하고 싶다고 말한다). 전형을 벗어난 복합적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 <밀양>(2007)과 <>(2010)의 이창동 감독은, <밀양> 촬영 당시 인터뷰에서 신애(전도연)와 종찬(송강호)의 자리를 바꾸면 안 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연히 여자가 그 자리에 있어야죠. 남자가 삶에 절망했다고 하면 믿겨져요? 남자가 삶의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 가슴에 와닿나?”요컨대 당시 이창동 감독은 여성을 삶의 진짜 고통을 남성보다 잘 이해하고 구원에 닿을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이 패턴은 <초록물고기>(1997),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에서도 성립한다. <버닝>에서도 시점을 바꾸면 삶의 본질을 꿰뚫은 쪽은 해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결말에서 여성인물이 증발함으로써 <버닝>은 내게 <밀양>과 <>를 뒤집어보게도 했다. 동일한 이야기를 극중 남성인물 중심으로 재편한다면, 신애와 미자(윤정희)도 남성의 죄를 짊어지거나 대속하는 자리에 있고 거기 이르는 도정에는 자기 파괴적 섹스의 시도나 성적인 희생이 있다. 이 관찰이 <밀양>과 <>가 성취한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꿔놓지는 않는다. 한 작가의 세계를 바라보는 앵글 하나를 보탤 뿐이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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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직접 연출한 <쥬라기 공원>(1993)과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1997)에 대한 귀속감을 강조한다. 누블라 섬으로 간 클레어(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와 오웬(크리스 프랫) 일행은 원조 쥬라기 공원의 현판과 티렉스에게 밟혀 구겨진 트럭과 마주친다. 주요 액션 시퀀스에는 1편의 투명 자이로스코프 관람차가 등장한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무엇보다 스필버그가 특수효과 이전에 공룡과 인물의 배치와 동선만으로 만들어낸 시각적 서스펜스와 위트를 추구한다. 한편 1편의 명장면을 인용해 애초 이 시리즈를 성공시킨 공룡이라는 존재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환기시키고자 애쓴다.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모두가 우러러보는 장면, 다양한 종의 공룡이 질주하는 신이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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