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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한국영화와 월드컵의 기억
주성철 2018-06-29

때는 바야흐로 1999년, 이장호 감독은 <천재선언>(1995) 이후 축구영화 3부작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주최하는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하여 2000년 개봉예정의 <히아신스>를 시작으로 <붉은 악마>와 <허그>를 연달아 제작할 계획이었다. <히아신스>는 한국이 처음으로 19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과정을 그릴 작품이었다. 한국전쟁 중에 월드컵 예선을 치러야 했던 실제 역사적 배경만으로도 꽤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당시 공개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2편 <붉은 악마>는 한국 축구 응원단인 붉은 악마와 일본측 응원단인 울트라 닛폰간의 응원전을 통해 양국 젊은이들의 투지와 우정을 다룰 예정이고, 3편 <허그>는 제목에서 보듯 당시로선 야심차게 축구 남북단일팀을 꾸리는 이야기였다. 당시 제작발표회를 겸한 기자간담회 자리도 있었는데, “월드컵에 대비해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를 준비 중인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행사 준비에만 급급하다”며 “월드컵과 문화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제작을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 이장호 감독의 얘기였다. 제작발표회는 물론 몇몇 신인배우들의 축구 훈련 장면까지 뉴스에 보도될 정도였기에 곧 크랭크인만 앞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영화화에 이르지 못했다.

이장호 감독을 비롯한 당시 제작 관계자들은 이제는 다 잊혀진 옛이야기를 왜 또 꺼내어 아픈 곳을 찌르냐고 질타하실 수도 있겠으나,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을 만들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이장호 감독의 스포츠영화, 그것도 한국영화계에 드문 축구영화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취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서다. 당시 이현세 만화가의 원작 제목은 <공포의 외인구단>이었으나 ‘공포라는 표현이 공포심을 조장한다’는 전두환 정권의 검열로 인해 그런 제목을 갖게 됐다(이와 유사한 경우의 개봉 제목으로는 <내추럴 본 킬러>가 아닌 <올리버 스톤의 킬러>도 있다). 사실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또한 주인공의 표정이 어둡고 우울해 보인다며 검열기관으로부터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었다. 앞서 얘기한 1954년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멕시코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던 1986년 즈음의 한국 대중문화 풍경이 그러했다. 그렇게 1986년 이후 한국 축구 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에 이르기까지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이르게 된다. 그처럼 1986년 이후 새롭게 시작된 32년의 본선 출전 기간 동안, 서기 2200년을 배경으로 H.O.T.가 지구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로 은하계의 축구 제전인 캘럭시컵에 출연한 3D 입체영화 <평화의 시대>(2000)를 비롯해 <교도소 월드컵>(2001), <보리울의 여름>(2002), <꿈은 이루어진다>(2010), <맨발의 꿈>(2010) 같은 축구영화가 만들어졌다.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독일전 승리의 기쁨에 취해 축구 얘기만 늘어놓다 보니 특집 얘기를 잊을 뻔했다. 오래전 한 감독이 월드컵과 촬영기간이 겹치면서, 경기를 보지 못하는 스탭들의 집중력과 사기 저하를 걱정하여 과감하게 예정된 밤샘 촬영을 접고 새벽 단체 관람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시간은 과연 ‘근로시간’으로 인정이 될까. 이화정, 김성훈 기자가 총력 취재한 특집 ‘주 52시간 근무제와 한국영화계’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둔 각계 영화인들의 목소리와 근로시간 관련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꼼꼼히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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