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Review] 울랄라 시스터즈
2002-04-23

시사실/울랄라시스터즈

■ Story

서울의 한 위성도시에 ‘라라클럽’과 ‘네모클럽’이 마주보고 들어서서 3대째 경쟁을 벌인다. 2대가 운영하던 70년대 초에 네모클럽이 망했다. 라라클럽 2대 사장 조만기는 네모클럽 2대 사장 김일동(박인환)을 꿇어 앉혀놓고 네모클럽 제반 권리의 양도를 약속하는 각서를 받았다. 그러나 네모클럽 자체를 뺏거나 없애지는 않았다.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다. 어느 날 조만기가 급사하고 부인이 입원해 딸 조은자(이미숙)가 운영을 넘겨받은 뒤로 전세가 역전됐다. 네모클럽 3대 경영자 김거만(김보성)은 아예 라라클럽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백화점을 짓기 위해 온갖 술수를 동원한다. 궁지에 몰린 조은자는 주먹 센 미옥(김원희), 가수지망생 혜영(김민), 제일 어린 경애(김현수) 등 여종업원 셋과 함께 직접 노래하고 춤도 추는 ‘울랄라 시스터즈’를 만들어 라라클럽 무대에 선다.

■ Review 조은자 사장을 비롯한 라라클럽의 네 여자가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에 놓이자, 미옥이 <쇼걸> 같은 댄스영화 비디오를 잔뜩 빌려온다. 공교롭게 이 비디오들은 모두 야하기도 하다. 미옥의 의도를 잘못 읽은 나머지 셋이서 오버하기 시작한다. 제일 어린 20대 초반의 경애가 놀란 토끼 눈으로 묻는다. “나더러 벗으라고요?” 그보다 조금 나이 많은 혜영 왈, “얘는 안 돼, 차라리 내가 벗을게”. 40살 전후의 조은자가 울먹이며 말한다. “이 나이에, 그래도 내가 벗지. 그런데 우리 꼭 이래야 해?” 셋이 부둥켜안고 운다.

<울랄라 씨스터즈>에서 관객의 웃음이 가장 크게 터지는 곳 중 하나인 이 장면은 얼핏 <풀 몬티> 같다. 이 넷이 실제로 벗지는 않지만 40의 몸에 춤을 추자니, 음치가 노래를 부르자니 각오해야 할 수치가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춤과 노래는 꼭 세련돼야만 맛이 나는 게 아니다. ‘가요톱텐’에 나와 훈련된 춤을 질서정연하게 추는 그룹보다 ‘KBS 노래자랑’에서 나름대로 변형한 춤을 겁없이 선보이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더 흥겨울 때가 있다. 춤과 노래는 공간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룰 때 빛을 발한다. 아무리 잘 춰도 관객이 호응하지 않으면 <생활의 발견>의 명숙처럼 푼수가 된다. 라라클럽은 서울 외곽도시에 자리한 극장식 주점이다. 그곳의 쇼가 꼭 반듯하게 정돈돼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음치를 립싱크로 감추고 무대에 올라선 ‘울랄라 시스터즈’는 금세 수치심을 극복하더니, 남자 양복에 지팡이를 짚고 춤추는 반세기 전 뮤지컬부터 라틴댄스까지 다채로운 쇼를 펼쳐보인다. 손님이 몰려 클럽이 일어서려는 차에 클럽 안에서 미성년자가 적발된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다시 고생하던 와중에 은자의 아버지 조만기가 김거만의 아버지 일동에게서 받아놓은 각서가 발견되고,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러니까 세대를 넘어선 여자들의 자매애가 곤경 끝에 구원받는 드라마에 쇼와, 손발을 절레절레 흔들며 대문을 열어놓고 다니는 김거만의 바보스런 코믹연기를 곁들여 엔터테인먼트의 종합선물세트를 의도한 영화다.

<울랄라…>는 특별히 눈에 거슬리는 대목없이 무난하게 흘러가지만 악센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선물들이 비슷한 비중으로 다가오면서 그중 하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찾아지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라라클럽에는 손님이 실종돼 있다. 처음에 술취해 깽판치는 이가 한명 있을 뿐, 이곳의 손님들은 대사 한마디 내뱉지 않는다. 그저 홀에 운집해 이 클럽의 흥망성쇠에 맞춰 환호성을 지르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갈 뿐이다. 변두리 극장식 주점이라는 하위문화에서 대중이 사라졌으니 쇼는 혼자 떨어져 액자틀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건 이 영화가 원하는 쇼와도 모순된다. 울랄라 시스터즈의 쇼는 금방 예뻐지고 세련되는 듯하더니, 영업정지라는 외적인 이유를 끌어들여 막을 내린다. 이 쇼가 대변하는 정서가, 문화가 뭔지 애매한 만큼 쇼가 더 발전해나갈 방향도 막연하지 않았을까.

울랄라 시스터즈가 춤을 잘 추냐 못 추냐, 또는 라라클럽의 쇼가 화려하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관객의 취향과 기대치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쇼 자체는 눈요깃거리가 될 만하다. 문제는 쇼는 쇼대로, 드라마는 드마라대로 평행선을 달린다는 데 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쇼의 동력을 전달받지 못한 채 달려가는 드라마의 마력(馬力)이 높기를 바라기는 아무래도 힘든 듯하다. 임범 isman@hani.co.kr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