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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추천작④] <호랑이는 겁이 없지> <부동산> 外
김소미 2018-07-11

<씨네21> 기자들이 가려 뽑은 추천작 20편

<호랑이는 겁이 없지> Tigers are Not Afriad

이사 로페즈 / 멕시코 / 2017년 / 83분 / 부천 초이스: 장편

호러 장르와 동화적인 상상력이 결합된 독특한 연출력이 인상적인 작품. 2006년부터 시작된 마약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행방불명된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삼았다. 이 유령도시에서 소녀 에스텔라는 엄마를 잃은 뒤 진짜 유령들을 보기 시작한다. 학교 창문에 총탄이 들이치고, 하굣길에서 아직 피가 흐르는 시체를 목격하는 생활 속, 에스텔라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현실보다 더 음습한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스스로를 동화 속 호랑이라 믿는 에스텔라와 거리의 아이들은 총을 들고 직접 생존과 복수를 위한 여정에 나선다. 순수한 마음에 스며든 잔혹성을 포착하는 영화는 에스텔라의 기민한 오감이 일상의 사물에서 괴이한 이미지와 생명체를 불러내는 매혹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1973)이 스페인 내전의 그늘 아래 스크린 속 프랑켄슈타인을 불러온 것과 달리 <호랑이는 겁이 없지>에서 에스텔라가 겪은 직접적인 비극은 낭만을 허용치 않는다. 에스텔라를 둘러싼 죽은 자들의 악령은 명백히 악몽에 가깝다. 작은 호랑이들은 그들의 안전 지대를 찾을 수 있을까.<호랑이는 겁이 없지>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다 커버린 아이들의 다크 판타지다.

<부동산> The Real Estate

악셀 페테르센, 몬스 몬손 / 스웨덴 / 2018년 / 88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201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험악한” 영화라 불렸던, 취향이 갈릴 수도 있는 작품임을 미리 말해두어야겠다. 그러나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작으로는 호불호를 유발했을지 몰라도 어쩌면 부천엔 딱 맞는 영화다. 68살 노젯은 아버지로부터 스톡홀름 시내의 고층아파트를 유산으로 상속받는다. 변호사와 상의한 그녀는 아파트를 빨리 처분하길 원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간 아파트를 엉망으로 관리한 노젯의 의붓형제와 미키와 그의 아들 크리스는 갑자기 의욕을 보이기 시작하고, 이민자 혹은 저소득층이 대다수인 세입자들은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고대하던 유산이 마음처럼 쉽게 현금화되지 않자 ‘열 받은’ 노젯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 거칠고 추잡하게 그들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휴머니즘에 대한 지독한 염세가 느껴지는, 윤리와 도덕의 잣대로 평가하기엔 부적절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음침하고 부조리한 코미디인 <부동산>에 관한 논쟁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타워, 눈부신 날> Tower, A Bright Day

야고다 셸츠 / 폴란드 / 2017년 / 106분 / 부천 초이스: 장편

<타워, 눈부신 날>은 신예감독들이 꾸준히 발굴되고 있는 최근 폴란드영화계의 밝은 미래를 확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뮬라는 남편과 딸, 몸이 아픈 엄마와 함께 시골 마을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이른 5월의 눈부신 들판, 중산층의 흠 없는 생활이 신비롭고 몽환적인 화면에 담긴다. 영화는 딸 니나가 첫 영성체를 마친 직후 뮬라의 동생이자 니나의 생물학적 엄마인 카야가 6년 만에 등장하면서 급격히 호러적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가톨릭 집안에 침투한 이교도적 요소들, 카야의 존재를 의심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하는 뮬라의 히스테리 등이 뒤섞여 강도 높은 긴장감을 형성한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서 공개된 후 <악마의 씨>(1968), <영향 아래 있는 여자>(1974), <멜랑콜리아>(2011) 등의 뛰어난 이름들을 거론하게 했다. 신경을 긁는 연출과 생생한 캐릭터, 점프컷이 섞인 날 선 편집이 미묘한 리듬감을 만들고, 다소 충격적인 결말까지 조용하지만 쉼 없이 나아간다.

<마고가 마고를 만났을 때> When Margaux Meets Margaux

소피 필리에 / 프랑스 / 2018년 / 97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제목부터 경쾌한 정서가 감지되는 부드럽고 귀여운 프랑스식 코미디. 25살의 마고와 45살의 마고가 만나면서 웃지 못할 자아성찰의 기간을 갖게 되는 이야기다. 그들은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작은 특징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까지 공유하며 완벽히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에서 두 베로니카의 은밀한 교류가 한쪽의 생명을 연장시켰듯, <마고가 마고를 만났을 때>의 어린 마고 역시 나이 든 마고를 통해서 그동안 낭비한 생의 귀중함을 어렴풋이 감지한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채 두 마고가 신경전을 벌이면서 운명의 쌍둥이라는 판타스틱한 설정은 로맨틱 코미디의 가볍고 편안한 웃음으로 전환된다. 한 사람이 통과하는 인생의 다른 두 단계를 나란히 놓아두면 스크린 속에서 어떤 작용이 발생할까. <신경 쇠약 직전의 신부>(2005)부터 여성의 삶과 심리를 꾸준히 탐구해온 소피 필리에 감독의 신작이다.

<바이러스 트로피칼> Virus Tropical

산티아고 카이세도 / 콜롬비아 / 2017년 / 96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콜롬비아에서 도착한 애니메이션 성장담으로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파워 파올라의 자전적 그래픽노블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가족제도 내에서 고통받는 10대의 초상이 등장하는 영화를 즐긴다면 <바이러스 트로피칼> 역시 기대만큼의 위로를 준다. 가족을 위해 교회를 떠난 전직 목사 아버지와 불임 수술 후에도 임신을 해 악령 빙의라는 소문을 산 어머니 밑에서 파올라 역시 다사다난한 10대를 보낸다. 한없이 사랑을 나누다가 또 한없이 괴롭히기 바쁜 두 자매는 덤이다. 영화는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작은 스케치들을 그려나가는 동시에 최신 유행에도, 고전적인 모델에도 부합되지 않고 자기 개성을 지키려는 여성의 고민을 밝은 터치로 그린다. 온갖 고정관념과 불합리 속에서 자주 울고 좌절하는 파올라의 모습은 굵고 뚜렷한 흑백의 작화처럼 관객 각자의 10대를 향한 선명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전학 첫날, 첫 데이트처럼 젊은 날에 아로새겨진 그림들 위로 들리는 다정한 팬플루트 소리가 반가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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