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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가이드⑤] 특별전 '3X3 아이즈: 호러 거장, 3인의 시선' 섹션

웨스 크레이븐·조지 A. 로메로·토브 후퍼, 영화에 마술은 있다

<나이트메어>

올해 부천영화제의 특별전 중 ‘3X3 아이즈: 호러 거장, 3인의 시선’ 섹션은 근래 세상을 떠난 세명의 호러영화 작가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1939년생이며 2015년에 유명을 달리한 웨스 크레이븐, 각각 1940년, 1943년에 태어나 지난해에 나란히 세상을 떠난 조지 A. 로메로, 토브 후퍼. 작품의 스타일이나 다루는 주제 면에서 확연히 달랐으나, 그들은 태어나고 죽은 시기 외에 삶의 궤적에서 몇몇 공통점을 지닌 감독이었다.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그들에게는 유명 스튜디오나 감독 아래에서 현장 경험을 쌓는 등의 경력이 부재했다. 심리학, 교육학, 철학을 전공한 크레이븐은 강단에 섰던 인물이고, 로메로는 단편영화와 CF를 찍다 친구들과 독립 프로덕션을 차린 경우이며, 미디어와 영화를 배운 후퍼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살았다. 1960년대에 공히 주류 영화계의 바깥에 머물렀던 그들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차례로 데뷔작을 내놓았다.

<시체들의 새벽>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데뷔작은 중요성과 가치 측면에서 호러영화를 넘어 영화의 역사에서 한장을 차지한다. 일례로 <가디언>은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을 ‘영화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영화 중 한편’으로 뽑았다. 세 감독이 데뷔했던 시기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태동해 세상을 뒤흔들 때였다. 데니스 호퍼, 밥 라펠슨, 할 애시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들이 젊은 시선으로 새로운 미국영화를 만들던 시간에, 세 감독은 미국인과 미국 사회의 어두운 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로메로의 데뷔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은 발표 이후 다양하고 흥미로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전에도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가 없지는 않았으나, 로메로의 영화는 좀비의 이미지와 의미를 새롭게 창조해 좀비라는 거대한 장르의 선구자로 자리 잡았다.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은 미국영화의 핵심인 가족과 서부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오즈의 마법사>(1939)에 나오는 전원의 풍경과 ‘노란 벽돌 길’은 피의 진창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감독의 경력을 쌓기 전 포르노그래피 작업에도 참여했던 크레이븐은 우연한 기회에 <왼편 마지막 집>(1972)을 찍으면서 자신의 분노와 어두운 욕망을 쏟아부었다. 가족조차 모르게 소규모로 개봉하고 사라질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영화는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를 호러영화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렇게 세 감독의 데뷔작은 모두 ‘컬트 클래식’의 지위에 오르며 ‘모던 호러’를 정의했다고 평가받았다. 그들 이후 호러영화는 더이상 과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이 호러 작가로 불리게 된 것은, 엄청난 데뷔작을 배신하지 않고 호러 작업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크레이븐은 호러 감독으로서 제일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평범한 백인 중산층의 불안을 다룬 여러 편의 영화를 내놓았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나이트메어>와 <스크림> 시리즈를 제작, 연출해 호러영화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로메로와 후퍼의 이후 작업은 크레이븐의 영화가 누린 폭넓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러한 아웃사이더로서의 특성이 어쩌면 호러라는 장르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로메로는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2009)까지 좀비시리즈를 이어가는 한편, <분노의 대결투>(1973), <크립쇼>(1982) 등의 호러 작업을 병행했으며, 제작과 게임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셋 중 가장 거칠고 야만적인 호러를 만든 후퍼는 영화 인생도 순탄하지 못했다. 비운의 대표작인 <폴터가이스트>(1982)를 찍다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빚은 불화 등이 그를 변경으로 몰았지만 호러영화에 대한 열정은 죽지 않아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제작한) 유작 <진>(2013)까지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이튼 얼라이브>

이번 ‘3X3 EYES: 호러 거장, 3인의 시선’ 섹션의 상영작은 세 거장의 대표작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초기작을 섞어서 구성되었다.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으니 덜 알려진 작품을 중심으로 추천해보기로 한다. 먼저 웨스 크레이븐. 초기 조니 뎁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나이트메어>(1984), 잉마르 베리만의 <처녀의 샘>(1960)을 난폭하게 변형한 <왼편 마지막 집> 사이로 <공포의 휴가길>(1977)이 있다. 캘리포니아로 떠나던 일가족이 사막 한가운데서 사고를 당한다. 미국영화에서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나서는 아버지가 제일 먼저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 건장한 사내들은 무력한 상황에 빠진다. 도울 수 있는 건 하늘이 아니라 자기 자신뿐이다. 공포의 주체를 숨겨두는 게 크레이븐의 특기인데, 두 번째 영화에서 무서운 존재들이 전면에 드러나는 데는 30분 정도가 걸린다. 기실 그들은 무서운 존재라기보다 평범한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이어서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로메로의 영화로는 ‘시체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자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시체들의 새벽>(1978), 인간의 지능을 지니게 된 원숭이가 역으로 인간들을 덜덜 떨게 만드는 이야기인 <어둠의 사투>(1988)가 상영된다. 추천작은 자신을 흡혈귀로 알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인 <마틴>(1978)이다. 그가 정말 흡혈귀 가문에서 태어난 84살 먹은 소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정체에 의문을 품고 사는 흡혈귀가 라디오 DJ와 인터뷰를 나눈다거나 결국 친족에 의해 파괴된다는 설정 등이 흥미롭다. ‘현실에 마술은 없다’고 되뇌던 소년이 맞이한 사회적 비극으로도 읽히는 작품으로, 로메로를 좀비영화의 작가로만 안다면 유럽 예술영화의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이 작품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후퍼의 영화로는 여배우의 치명적 매력 때문인지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 컬트적 존재로 추앙받는 <뱀파이어>(1985), 윌리엄 카메론 멘지스의 1953년 작품을 시대의 변화에 맞춰 리메이크한 <화성에서 온 침입자>(1986)가 상영되며, 추천작은 악취미에 가까운 <이튼 얼라이브>(1976)다. 정말로 못 만든 영화이며 감독 자신이 제작 말미에 현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도입부의 설정은 히치콕의 걸작 <싸이코>를 카피했는데, <이튼 얼라이브>는 <싸이코> 자체가 맥거핀인 영화다. 허술한 모텔 주인이 무슨 힘으로 연쇄 살인을 벌이는지 모르겠고, 무엇보다 공포의 중심에 서야 할 앨리게이터의 허술한 모형이 헛웃음을 자아낸다. 그러한 호러영화의 맛에 길들여진 관객만 볼 일이니, 이 말인즉 설령 본 뒤에 나를 욕하더라도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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