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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보다 내용이…
2002-04-23

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m

모 기자가 며칠 전 기사에서 모 극장 이야기를 하면서 ‘창 밖 풍경이 보이는 상영관의 운치’ 운운하는 걸 읽었다. 그때 든 생각 하나, 그 좋은 풍경만큼 우리나라 극장 시스템이 좋은가 하는 의문.

쥐가 관객과 동석하고,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암표상이 버젓이 활개를 치던 구태의 극장 풍경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너도나도 멀티플렉스로 변신하면서 화려한 외관과 멋진 내부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볼거리, 쉴거리, 먹을거리가 운집되어 있어 그야말로 단순 영화 관람을 넘어서, ‘멀티’한 오락을 제공하는 극장으로 속속 바뀌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상영하기 위한 최적의 상영 시스템 구축에 있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슈퍼 35mm 촬영기법으로 시네마스코프(가로, 세로 비율이 2.35:1) 사이즈 화면을 구현한 모 영화를 제작했을 때의 일이다. 이 화면의 영화는 카메라를 슈퍼 35mm 포맷으로 전환해서 촬영한 뒤 이 네거필름을 압축과정을 거치고, 상영 시스템에서도 아나모픽 렌즈를 끼우고 영사해야 하는 복잡한 공정이 뒤따르는 시스템이다.

일본 현상소에서 압축작업을 해와 프린트를 뜬 이 영화의 기술시사가 있던 날, 영화는 웬일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포커스가 제대로 맞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긴장되는 첫 기술시사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일본에서의 압축과정 중에 문제가 있었는지 등, 작업 공정의 앞뒤를 다시 복기해가며 긴박한 논의가 이어졌다. 당장 공개 언론시사회 스케줄이 잡혀 있었고, 개봉도 코앞으로 다가온 터라 모두의 마음이 탔다.

일단 일본으로 뛰어가기 위해, 당장 그 다음날 비행기표를 대기 예약하고, 몇 사람의 비자발급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방법들을 떠올렸다. 그때 어떤 이가 다른 상영 시스템에서 한번 시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음날 아침, 최근에 개관한 모 극장에서 시사를 하니 어라! 포커스가 제대로 맞는 것이었다.

압축과정 등 후반작업 공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앞서 기술시사를 연 영사실의 아나모픽 렌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영사실의 책임자 왈, 어떤 이상도 없으니, 일본에 가서 정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 영화로 데뷔하는 촬영기사는 걱정으로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했는데…. 어쨌든 스탭들은 일본으로 튀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개봉일을 늦추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일순 모두 허탈해졌다. 엉터리 영사 시스템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이후에도 개봉 전 홍보를 위해 마련한 시사회 때마다 노이로제 상태로, 매번 상영상태를 체크해야 했다.

어떨 땐 포커스가 제대로 맞지 않고, 어떤 극장에선 입과 소리가 조금씩 어긋나고…. 공들여 후반작업한 것이 극장 시스템에서 엉망으로 구현되는 상황을 보면서 맥이 빠졌다.

한국영화의 후반작업에 들이는 공력과 수준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후반작업에 참여하는 테크니션들의 가장 큰 고민은 노력해서 만든 ‘소프트웨어’가 수준이 들쭉날쭉인 ‘하드웨어’의 벽에 부딪혀 노력한 것보다 못한 수준으로 관객과 만날 때 쓰디쓴 절망을 맛본다.

외형에 신경 쓰는 것만큼, 최적의 사운드, 최고의 화면을 위해 고민하는 이 땅의 극장문화를 기대한다. 고대한다.

P.S: M극장의 영사실장님은 몇년 전에도 그러하셨듯이, 최근에도 시사시에 극장 좌우를 돌아다니시며 사운드 상태를 체크해주셨고, 볼륨을 조절해주셨으며 화면점검을 해주셨다. 그런 분들, 그런 분을 고용하시는 극장주들 더 많아졌음 한다. 월급 많이 주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