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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촬영감독의 <호텔 아르테미스> 포토 코멘터리
김성훈 2018-07-26

“2028년의 실제 호텔에 있을 법한 빛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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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정정훈 촬영감독과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 그는 자신이 촬영하고 있는 영화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 몇 가지를 던져주었다. 조디 포스터가 주인공이고, 근미래의 LA가 배경이며, 호텔 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스릴러 장르라는 게 그것이다. 영화 <호텔 아르테미스>(감독 드루 피어스)는 깨끗한 물을 요구하는 폭동이 일어나는 2028년 LA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여러 범죄자들이 아르테미스 호텔에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스릴러다. 이곳은 호텔이 아니다. 주인공인 간호사(조디 포스터)가 마피아 보스 울프킹의 지원을 받아 22년 동안 운영하며 범죄자를 치료해온 비밀 병원이다. 정정훈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관객이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지루해하지 않게 안내하고, 그가 설계한 빛은 어두운 공간을 섬세하게 드러내 보인다. 일본 도쿄에서 신작 <디 어스퀘이크 버드>(The Earthquake Bird, 감독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출연 알리시아 비칸데르·라일리 코프) 촬영을 끝내고 LA로 돌아가기 전에 서울에 잠깐 들른 그를 오랜만에 만났다.

-지난해 여름, 전화 통화로 미국 LA에서 <호텔 아르테미스> 막바지 촬영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01

=딱 이때쯤이었다. 완성된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컬러 색보정할 때 음악이 빠진 채 대사만 나온 버전만 봤을 뿐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제안 받았나.

=<호텔 아르테미스>쪽에서 에이전트를 통해 내 일정을 확인하면서, 드루 피어스 감독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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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는 어땠나. 02

=감독을 만나자마자 “이건 조디 포스터의 <메리 포핀스>”라고 말했었다. 그 말을 들은 프로듀서가 “내일부터 시간이 어때?”라고 말하며 내게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할리우드영화를 촬영하면서 느끼는 건데 서사를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액션들을 하나의 드라마로 얼마나 잘 이어갈 수 있는가가 촬영감독으로서 관건인 것 같다. 조디 포스터가 병원을 나와 폭도들 사이로 걸어나가는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가 꼭 메리 포핀스 같았다.

-드루 피어스 감독은 왜 당신과 작업하고 싶어 하던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같은 동네 사는 고등학교 동창 같았다. 많은 레퍼런스 사진들이 그의 사무실 벽에 붙어 있었는데 그 사진들을 쭉 훑어보니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 등 내가 찍은 영화 스틸들이 많더라.

-감독이 당신을 만나기 전에 이미 당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게 아닌가.

=아니, 나 이전에 만난 한 촬영감독이 드루 피어스가 붙여놓은 레퍼런스 사진을 보면서 “걔(정정훈)를 직접 만나지 왜 다른 사람을 만나냐”고 말했다더라. 이처럼 할리우드에선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를 레퍼런스로 삼는 영화들이 많다. 어쨌거나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 영화에 참여하기로 결정됐다.

-여러 범죄자들이 아르테미스라는 호텔에 모여들면서 사건이 벌어지는 설정이 재미있던데.

=처음에는 만만하게 생각했다. 호텔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세팅을 한번만 잘하면 쭉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건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공간이 한 군데니 같은 공간을 드라마에 맞게 조금씩 다르게 보여줘야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피어스 감독이 <퍼시픽 림>(2013), <아이언맨3>(2013), <고질라>(2014),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 등의 각본을 쓴 작가 출신이라 이 영화가 그의 실질적인 연출 데뷔작이다. 그래서 감독이나 배우들이 자유롭게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촬영 전에 풀 세팅을 해야 했다.

-2028년 LA가 배경인 이야기라 모든 장면을 LA에서 찍었다고 들었다.

=충무로에서 촬영하는 한국영화가 없듯이 할리우드에서 촬영하는 할리우드영화는 거의 없다. 세금 환급 등 여러 이유로 다른 장소에 가서 촬영하는 게 보통이니까. TV시리즈만 할리우드에서 찍는다. <드라이브>(2011) 프로듀서였던 애덤 시겔과 감독이 이 영화를 최대한 LA에서 찍고 싶다고 했다. 할리우드에선 앞으로 할리우드 대신 넷플릭스라는 말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농담도 나온다.

-LA에서 촬영해서 좋은 점은 뭐였나.

=손쉽게 능력 있는 스탭들을 구할 수 있었다. 유니버설 백로트와 샌타 모니카 부두에서 찍은 장면을 제외하면 모든 장면이 LA 도심에서 촬영됐다.

-집에서 출퇴근했겠다.

=촬영장이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차 막히면 한 30분 걸렸고. (웃음)

-아르테미스 호텔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 같더라.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 2028년 근미래이지만 특이한 빛을 사용하기보다 실제 호텔에 있을 법한 빛을 구현하려고 했다. 1980년대에 지어진 호텔이 지금과 완전히 다르지 않은 것처럼 2028년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램지도 1906년 LA에서 문을 연 알렉산드리아 호텔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 속 아르테미스 호텔을 설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촬영과 조명은 어떤 컨셉이었나.

=좁은 공간에서 화려한 카메라워킹을 시도할 수 있겠나. 새로운 시도보다는 공간이 진짜 호텔인 것처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범죄자들이 호텔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아주 튀는 라이트보다는 로키 조명을 주로 활용했다. <아이언맨> 시리즈, 미국 드라마 <센스8> 등 규모가 큰 영화를 많이 경험한 개퍼(Gaffer, 촬영감독의 주문에 따라 조명을 세팅하는 역할)가 합류한 덕분에 원하는 조명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었다.

-주로 사용한 렌즈인 파나비전 T시리즈의 어떤 면이 이 영화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어두운 공간에서도 화면을 뭉개지 않고 샤프하게 잘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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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 주요 공간이라 벽이 유독 많던데. 03

=촬영하기 전에 미술팀이 계획했던 세트를 보니 천장들도 다 막혀 있고, 어두운 등을 많이 써 조명을 숨길 공간이 없어 무척 당황했다. 그래서 천장을 붙였다 뗐다 할 수 있게 해서 앰비언스 조명을 천장 위에 세팅했다.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LED 조명이 90% 이상이었다. 조명 조절만 하는 프로그래머를 고용해 현장에서 컴퓨터 모니터링을 하면서 밝기를 %단위로 조절했다. 일반 관객은 잘 못 느끼겠지만 스틸들을 보면 똑같은 밝기로 찍힌 장면이 하나도 없다.

-할리우드에는 조명 조절만 하는 프로그래머가 있나.

=항상 현장에 상주해 세트 천장에 조명을 풀세팅해놓으면 앵글에 따라서 밝기를 조절하는 역할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찍는 영화인 까닭에 이 방식이 효율적이었다. 로케이션 촬영 분량이 많은 영화였다면 이 시스템을 안 썼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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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복도 벽에 등이 많이 달렸던데. 04

=이 등들은 인물(의 감정)에 영향을 끼칠 만한 조명이 아니다. 굉장히 얇은 LED 조명 상자들은 프레임 위에 위치한 천장 위에 달았고, 화분, 캐비닛 뒤에 숨겨놨다. 벽을 비추는 조명들도 다 숨어 있다. 호텔 복도가 자연스럽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것도 숨은 조명들 덕분이다.

-따로 조명을 세팅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게 목표였다. 조명이 인물에 닿을 정도로 세팅하면 노출이 맞을 수 없다. 촬영할 때는 실제 사람 눈으로 보는 노출보다 밝은 경우가 많다. 조리개를 조이니까. 이 영화는 어둡지만 보여야 하는 건 다 보이도록 표현했다. 디테일이 있는 콘트라스트는 박찬욱 감독님 영화를 찍으면서 충분히 단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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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재질이나 색감, 캐릭터 의상 등을 촬영 컨셉에 맞추기 위해 램지 프로덕션 디자이너, 리사 로바스 의상감독과 논의를 많이 했을 것 같다. 05

=LA에 있는 오래된 호텔 중에는 색감이나 디자인이 뛰어난 곳이 많다. 원래 이 영화는 오래된 호텔이지만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 건물에서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실제 공간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꾸기에 제약이 많았다. 밤 장면이 많은데 창들이 커서 빛을 컨트롤하기 쉽지 않고,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실제 공간을 리모델링하다보니 제작비가 두배나 들었다. 나중에 촬영 장소를 세트장으로 바꾼 것도 그래서다. 로스앤젤레스센터 스튜디오였는데 TV시리즈로 바쁜 시즌이었던 까닭에 원하는 규모의 세트장을 제대로 잡지 못해 호텔 세트를 좁은 세트장에 구겨넣어야 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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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비중이 그리 크진 않지만 호텔 밖 공간은 SF영화 속 한 장면 같던데. 06

=실제 LA다운타운에서 이틀 동안 밤 장면만 찍었다. 낮 장면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조디 포스터가 거리로 나오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LA시의 협조를 받아 LA 관측센터에서 엑스트라들을 고용해 촬영했다. 오랜만의 야외 로케이션 촬영이라 스탭들이 흥분된 상태로 찍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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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간호사 역을 맡은 조디 포스터와의 작업은 어땠나. 07

=처음 배우들과 인사하는 날, 프로덕션 사무실 주차장에서 처음 만났다. 청바지 차림을 한 그가 다가오길래 도망갔다. (웃음) 어릴 때 선망했던 배우를 직접 보니 쑥스러웠다. 감독이기도 한 조디 포스터는 현장에서 항상 진지하게 사람들을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루는 조디 포스터가 내 아내를 왜 소개해주지 않았냐며 데리고 오라고 했다. 아내가 조디 포스터를 위해 꿀떡을 싸가지고 왔는데 음식에 되게 까다로운 사람인데도 꿀떡을 쉴 새 없이 먹더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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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K. 브라운, 소피아 부텔라, 재커리 퀸토, 데이브 바티스타 등 등장인물들이 많은 이야기인데. 08

=감독이 작가 출신이니 여러 인물들을 하나의 드라마로 잘 엮으리라고 기대했다. 재커리 퀸토는 현장에서 작품에 임하는 태도가 너무 좋았고, 인터뷰하면 나를 꼭 언급해주더라. (웃음)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에베레스트 역의 데이브 바티스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어벤져스: 인티니티 워>(2018) 등에 출연한 배우인데, 큰 덩치와 대비되는 순한 면이 인상적이었다. 소피아 부텔라는 털털하고 진지하며 한국 음식을 좋아하더라. 댄서 출신이라 그런지 스턴트맨보다 액션 동작이 멋졌다.

-특히 소피아 부텔라가 마피아 보스 울프킹의 조직과 맞붙는 호텔 복도 액션신은 <올드보이>를 연상시키던데.

=오마주 성격이 강한 장면이다. 드루 피어스 감독이 “<올드보이>와 비슷하지만 <올드보이> 같지 않게 찍어달라”고 주문해왔다. (웃음) 농담 삼아 “(<올드보이>와) 똑같이 찍어볼까?”라고 대답했다. 이 영화 속 좁은 호텔 복도는 조디 포스터가 밖으로 나가기 위한 통로라는 점에서 <올드보이>의 복도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디 어스퀘이크 버드> 촬영을 마쳤는데.

=수잔나 존스 작가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작가들이 일본에서 살면서 겪은 일을 재구성한 소설이다. 모든 장면을 도쿄, 나고야, 니가타 등 일본에서 로케이션 촬영했다. 도쿄에선 매일 아침 도호 스튜디오에서 고질라를 봤고.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살이 많이 쪘다. 당이 부족해서…. (웃음)

-알리시아 비칸데르도 촬영하는 동안 도쿄에 계속 머물렀나.

=그렇다. 알리시아 비칸데르, 그의 남편인 마이클 파스빈더와 자주 만나 커피를 마셨다. 이 영화 촬영은 어땠냐고? 촬영은 특별한 게 없고 늘 그랬듯이 눈치 봐가면서 감독, 배우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스토커>(2013) 이후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작업하는 걸 보니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아직 멀었다. 일단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영화는 내가 찍었지만 잘했어’라고 얘기할 만한 영화 리스트를 늘려나가는 게 목표다.

-더욱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다.

=열심히 하는 것만큼이나 운이 많이 따라줘야 된다. 에이전트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작품 제안이 들어오기보다 직접 연락이 오고 있는 걸 보면 지금까지 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다. 할리우드의 몇몇 영화사들은 내게 감독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다.

촬영정보

사용 카메라_ 아리 알렉사 XT 플러스(ARRI ALEXA XT PLUS) / 사용 렌즈_ 파나비전 프리모 V와 T시리즈(Panavision Primo V an d T-Series Lenses) / 화면비율_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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