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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난민 영화 특집에 부쳐
주성철 2018-08-03

주윤발유덕화를 영화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난민이었다. <호월적고사>(1981)에 베트남 화교 난민으로 출연한 주윤발은 일본인으로 위장해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다 실패하고, 결국 필리핀 차이나타운 암흑가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영어 제명부터가 <보트피플>인 <투분노해>(1982)에서 유덕화는 한 일본인 사진작가의 도움으로 어린 남동생과 함께 베트남을 탈출하려다가 안타깝게도 죽고 만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두편의 영화에서 고향 잃은 베트남 난민들이었다. 허안화 감독이 연출한 두 영화 모두 주윤발과 유덕화가 자신의 ‘인생 캐릭터’를 묻는 질문에 반드시 언급하곤 했던 영화인데, 그즈음 내가 좋아했던 수많은 홍콩영화들이 사실은 난민을 그린 영화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1997년 홍콩의 본토 반환을 과거 베트남의 현실과 치환하는, 홍콩 사람들이 실제 난민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홍콩영화를 (얼마간 ‘과잉’으로) 해석하던 시기였다.

더 얘기하자면, 주윤발은 <호월적고사>를 비롯해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침공을 앞두고 홍콩을 떠나려고 했던 <등대여명>(1984), 베트남전 시기 베트남에 있는 삼촌을 홍콩으로 데려가려고 했던 <영웅본색3>(1989)를 두고 ‘난민의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참 세월이 흘러 <공자: 춘추전국시대>(2010)에서 주윤발이 연기했던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마치 난민처럼 중국 대륙을 떠돈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난민처럼 떠도는 공자에게 노나라의 의미는, 내게 홍콩과도 같은 의미”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덕화도 <열혈남아>(1987)에서 난민이나 다름없었다. 홍콩 구룡반도 동쪽 끝 티우겡렝 지역에서 온 ‘촌놈’이라는 설정인데, 티우겡렝은 국공내전 당시 미처 바다 건너 대만으로 가지 못하고 홍콩에 눌러앉아 살게 된 국민당 난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홍콩영화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난민 수용 역사를 비추어 읽어낼 수 있다. 그 역사는 보통 <투분노해>와 <영웅본색3>처럼 1975년 4월 베트남 공산화 이후 자국을 탈출하여 부산항에 들어온 소수의 베트남 난민(보트피플)을 수용한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77년 부산에 베트남난민보호소가 문을 열어 무려 1993년까지 운영됐는데, 한국에 별다른 연고가 없거나 끝내 베트남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1993년 최후까지 남아 있던 이들은 결국 뉴질랜드로 이주하였다. 한편, 본격적으로 연구되지는 않았으나 <열혈남아>의 경우처럼 국공내전을 피해, 중국 국민당 일부도 어떤 난민 수용사의 원조처럼 당시 한국으로 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말하자면 최근의 예멘 난민은 우리가 역사상 최초로 난데없이 맞닥뜨린 난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1992년 12월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아시아 나라 가운데 처음으로 2013년 7월부터 난민법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로부터 난민 인정률이 극히 낮고 그 심사 또한 매우 까다롭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이번호 특집은 영화를 통해 들여다보는 난민 이슈다. 당시 지나쳐 보았던 여러 영화들을 다시 읽게 되는 시간이 됐고,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당신도 그 영화들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다시, 진지하게 봐주었으면 한다. 이미 우리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질문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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