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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 코랄리 파르자 감독 - 자기 운명을 리드하는 여성의 강렬한 복수극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8-08-09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간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던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리벤지>는 국제경쟁부문 최고상인 부천초이스 작품상을 수상하며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임을 증명했다. 강렬한 여성 복수극 <리벤지>는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최고의 장르영화 축제 중 하나인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 지난해 신인감독으로서 오피셜 판타스틱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것도 화제였다. <리벤지>에서 복수를 감행하는 주인공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 젠(마틴다 안나 잉그리드 루츠)이다. 유부남 리처드(케빈 얀센)와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 젠은 리처드의 친구에게 강간당하고, 침묵할 것을 강요받다 결국 절벽에서 떠밀린다. 죽음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가 불사조처럼 부활해 제 손으로 세명의 남성을 처단하는 젠의 복수극은 아름다운 미장센과 숨막히는 추격전을 통해 아찔하게 완성된다.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권력관계를 전복시키는 과정이 통쾌하다. 프랑스에서 부천으로 날아온 코랄리 파르자 감독을 만나 <리벤지>가 보여준 통쾌한 전복에 대한 얘길 나눴다.

-지난 7월 22일 폐막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국제경쟁부문인 부천초이스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토론토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시체스국제영화제, 선댄스영화제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아시아에서 이렇게 큰 상을 받는 건 처음인 데다,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상을 받아 더욱 뜻깊다. 얘기한 대로 토론토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여러 영화제를 돌아다녔다. 시체스나 선댄스 등 성격이 사뭇 다른 영화제에 두루 초청받아서 좋은 얘기를 들은 것도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좋아하는 한국영화는 뭔가.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추격자> <곡성> 등을 재밌게 봤다. 한국의 장르영화에는 독창적인 분위기와 광기가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한참이 흐른 뒤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한국의 장르영화들엔 그런 강렬함이 있다.

-장편 데뷔작으로 여성이 주인공인 복수극을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도 이같은 장르영화는 대중적으로 친숙하지 않다. 그래서 제작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주제가 필요했고, 한 여성이 모진 사건을 겪으면서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주제와 설정이 강렬해서 영화사에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제작 과정에선 제작사와 싸우기도 많이 했다. (웃음)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이유가 분명했고 의지가 강력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들어야만 하는 분명한 동기와 의지가 감독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기본 설정이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1978)와 비슷한 면이 있고, 여자 주인공의 이름도 제니퍼(젠)로 같다.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당연히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도 아니다. 주인공 이름이 같다는 것도 사실 몰랐다.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해줘서 알게 됐는데, 알고 나니 더 그 영화를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여성 복수극을 만들고 싶었다.

-여성 복수극이라 하더라도 캐릭터의 성별만 여성일 뿐 영화가 보여주는 폭력의 방식이나 시선에 동의하기 힘든 영화들도 있다. 반면 <리벤지>는 주도적 여성 캐릭터가 화끈하게 복수하며, 여성의 시선과 심리도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다른 여성 복수극과 어떻게 차별화하고 싶었나.

=주인공이 타인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길 바랐다. 그게 다른 여성 복수극과의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또 소리를 지르거나 인내하는 여성의 모습은 그리고 싶지 않았다. 주인공이 강하고, 단단하고, 스스로 통제권을 쥐고 리드하길 바랐다. 이런 요소들을 생각하면서 각본을 썼다.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선 가학적이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유혈이 낭자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사막이라는 배경을 강조한 것도 일상의 현실과는 거리를 둔 영화적 표현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주인공 젠과 대결하는 세명의 남자를 부유한 유부남으로 설정했다.

=남자 캐릭터를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한 건 우리가 평소에 길을 가다 마주칠 것 같은 사람으로 그리는 거였다. 겉보기에 멀쩡하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가정도 꾸리고 있는 남자들. 하지만 폭력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도 강간을 하고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런 현실을 우리는 이 사회에서 목격하고 있다. 영화 속 남자들은 악행을 저지르거나, 협박하거나, 묵인한다. 돈과 권력으로 침묵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젠과 리처드가 집 안에서 일대일 추격적을 벌이는 장면은 현기증이 날 만큼 아찔했는데, 남자주인공 리처드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추격전을 벌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알몸으로 등장하는 남성의 이미지를 강력한 영화적 장치로 쓰고 싶었고, 무엇보다 이 마지막 싸움이 여러 의미로 인상적이길 바랐다. 권력을 가진 리처드는 젠과의 대결에서 자신이 이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리처드가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 육체적으로도 완전히 노출된 상황에 처한다. 모든 것이 발가벗겨진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영화에서 노출은 여자의 몫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식상한 클리셰를 뒤집고 싶었다. 세 번째는 영화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사실상 이 장면에는 별다른 요소가 사용되지 않는다. 등장하는 인물도 단지 두명이고, 그들의 동선도 한정적이다. 그런데 남자의 노출이란 게 익숙한 요소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강렬한 장치가 될 거라 생각했다. 모든 분노를 쏟아내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싸우는 마지막 액션 신이 참신하고 강렬하길 바랐다.

-SF, 액션, 호러 등 장르영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10대 땐 어떤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나.

=맞다. 장르영화에 관심이 많다. 어릴 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플라이>(1986), 폴 버호벤의 <로보캅>(1987)과 <스타쉽 트루퍼스>(1997),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 벨벳>(1986) 그리고 <스타워즈> 시리즈 등을 즐겨 봤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나 <람보> 시리즈도 좋아했고. 액션, 호러, 판타지 등 넓은 의미의 장르영화를 많이 봤고 또 좋아했다.

-<리벤지>로 이후 할리우드에서 러브콜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리벤지>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확실히 할리우드가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긴 하다. (웃음)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인데, 아직 차기작으로 정한 건 없다. 액션도 좋아하고 호러도 좋아하고 판타지도 좋아하는데, 무엇이 될진 모르겠지만 두 번째 영화도 장르영화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이 됐든 <리벤지>만큼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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