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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조규장 감독 -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가정법이 공포가 되다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8-08-16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 하지만 <목격자>는 범인의 행적을 추적하는 스릴러영화가 아니다. 범인은 시작부터 노출되며, 범인과 추적자의 대결구도는 희박하다. 오히려 영화는 그 시각, 범인의 얼굴을 본, 그로 인해 범인에게 신분이 노출된 목격자의 공포에 찬 심리를 좇아가는 특이한 스릴러다. ‘신고하면 보호해줄 수 있어?’라고 반문하는 영화 속 평범한 소시민 상훈(이성민)의 외침처럼, 사회의 안전망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의 도덕적 선택만을 강요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그 질문이 우리에게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긴장과 쾌감보다는 씁쓸한 충격이 더 크게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날의 분위기>(2015) 이후 두 번째 작품으로 돌아온 조규장 감독을 만났다.

-살인을 목격하는 상훈을 비롯해 아파트 주민들의 대처까지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이 리얼하다. 실제 유사한 사례가 있었나.

=시작은 내 꿈 이야기였다. 혼자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꿈에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거다. 무서워서 현관문부터 잠갔는데 정작 신고를 못했다. 신기하게 꿈속인데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더라. 단순히 살인사건의 목격자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면서 이 사회에 대해 가지는 도덕적 딜레마가 압축된 것 같았다. 정의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싶더라.

-그 시선이 이 영화를 단순히 사건을 증폭시키는 스릴러 장르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방관자 효과를 관찰하는 테스트의 장으로 역할하게 해준다.

=이 아이템을 과연 대중영화로 확장할 수 있을까 의심은 됐었다. 그런데 자료조사를 하다가 ‘키티 제노비스 사건’(1964년 뉴욕 퀸스 지역 주택가에서 귀가 중이던 여성 제노비스가 강도의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 목격자가 있음에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험에 처한 타인을 보고도 책임을 주변으로 전가하는 방관자 효과의 예시 같은 사건)을 접하면서 구체화됐다. 영화에서 살인사건의 범인 태호(곽시양)가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피해자는 숨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신고했어도 피해자는 죽지 않았을 거다. 영화로 만들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상훈이 막 입주한 아파트는 뒷산이 있는 서울 근교 아파트로 설정된다. 아파트 가격이 하락할까 하는 걱정에 경찰에 수사 협조를 하지 않는 주민들의 태도를 통해 집단 이기주의를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스릴러 장르에 잘 접목시켰다.

=아파트가 우리 영화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서울 인근 아파트로 설정했다. 프리미엄급 럭셔리 아파트도 아니고, 또 흔히 스릴러 장르에서 보는 암울하고 그로테스크한 아파트도 아닌 가장 평범한 아파트가 필요했다. 헌팅을 하러 서울과 경기 전 지역을 다 다녔다. 평소 그냥 지나쳤던 것과 달리 유심히 보니 어딜 가도 4면 중 3면은 아파트더라.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1995)이 영화만을 위한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영화도 이야기에 맞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려 노력했다. 메인 공간인 아파트와 아파트가 아닌 공간이 묘사될 때도 아파트에 둘러싸인 주택가를 보여주는 등 아파트와 관계된 도심을 그리려 했다.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두려움에, 집값 하락에,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나서지 않는 주민들을 관찰한다. ‘경찰에 협조하지 말자’는 영화 속 주민이 만든 전단지는 혹시 실제 있었던 건가.

=실제로 보거나 들은 전단지는 아니다. 아파트에 살면 엘리베이터에 이런저런 전단이 많이 붙어 있다. 찬성과 반대를 사인하라는 요구도 많은데, 주민 정보를 위한 것도 있지만 주로 공동의 이해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서명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난처해지기도 한다. 어떨 땐 나도 주민이지만 너무 심하게 이해관계를 따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다 아파트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웃음) 실제 촬영 때도 촬영허가가 날까 걱정했는데 연신 비명이 들리는 현장인데도 주민들이 협조를 해주셔서 감사했다.

-상훈 역시 살인사건을 목격했지만 살인범의 위협에 나서지 못하는 입주민 중 한명이다. 이기적이라는 시선에 대해, “가진 거라고는 아내와 딸, 대출금으로 산 아파트가 전부”라고 항변한다. 주인공을 우리 사회의 평범한 가장으로 설정했다.

=상훈을 영웅으로 그려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공권력이 무관심했을 때 앞으로 나서는 영화적 주인공. 그런데 그렇게 가면 장르적인 확장은 가능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려 했던 애초 의도에서는 벗어나겠더라. 살인자를 끝까지 감춰 비밀을 풀어가는 일반적인 스릴러 장르와 달리 영화에서는 살인자가 처음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범죄영화가 아닌 만큼 그 선택이 상훈이 사건을 목격하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딜레마를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겠더라. 영화 속 사건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 이야기라는 게 핵심이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누구든 사건의 목격자가 될 수 있지만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중산층 소시민이 이 사건에 맞닥뜨렸을 때 겪는 딜레마를 보여준다면 좀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상훈과 범인의 대결구도를 증폭시키지 않음으로써 일반적인 스릴러영화에서 긴장을 끌어내는 효과가 반감될 우려가 있고, 연출적으로는 그걸 풀고 나가야 할 딜레마도 따라올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공포 스릴러가 주는 장르적 쾌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선택이다.

=관객에게는 범인의 살인동기나 이런 이유들을 제시하지 않으니 좀 죄송한 면도 있다. 하지만 그 부분에 집중하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겠더라. 이 영화는 딜레마와 그걸 대하는 반응에 대한 이야기고, 그 지향점에 더 집중해서 가자는 걸 확실히 했다. 일반적인 스릴러 문법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그와 달리 후반부 액션 신에서는 장르에 좀더 충실한 지점도 빼놓지 않았다.

-후반부 산사태 장면은 실제 몇년 전 일어난 우면산 산사태를 연상하게 한다.

=이미지적으로 당시 재난을 참고했다. 도심에서 그런 자연재해들이 뜬금없어 보일 수 있지만 자연재해보다는 ‘인재’라는 측면을 부각해 보여주고 싶었다. 살인사건에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를 전체적으로 후반부의 그 거대한 재해 장면을 통해 상징하려고 했다. 후반부에는 액션 신을 통해서 장르에 충실한 장면들을 배치했다.

-상훈을 연기한 이성민을 비롯해 형사의 정도를 지키는 형사 재엽 역의 김상호 등의 심리전이 극을 탄탄하게 이끌어간다.

=장르적 컨벤션에 많이 의지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필요했다. 톰 행크스의 경우 ‘악당 역을 맡겨도 관객이 그 사람 편이 된다’는 평가가 있는데, 그건 연기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배우만의 매력이다. 나는 이성민 선배가 그런 배우라고 봤다. 사건을 목격하고도 나서지 않는 비겁한 목격자가 가진 딜레마가 이성민이라는 배우의 특성과 만나면서 밉지 많은 않은 인물로 만들어질 수 있겠다 싶었다. 술 한잔 못하는데, 술 취한 연기는 너무 잘하시고. (웃음) 기존 영화처럼 논리적 사고를 가진 형사가 아닌, 따뜻한 성정을 가진 형사로 영화의 특유의 톤을 잡아준 상호 선배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대사 없이 표정과 호흡만으로 살인자 역할을 해낸 곽시양도 어려운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그날의 분위기>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이 멜로였으니 다소 급격한 선회다. 차기작도 구상 중인가.

=<그날의 분위기>를 준비하면서 캐스팅 난항을 겪을 때 <목격자>를 구상했다. 만들기까지 2년 반이나 걸렸다. 지금은 한 템포 숨 좀 골라야 하지 않을까. 어떤 장르건 해야 될 이유가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나를 위해서도 작품을 위해서도 그 목적이 뚜렷해야 결국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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