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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바캉스⑨] 유럽과 대만 미스터리 - <헬리콥터 하이스트> <사흘 그리고 한 인생> <사장을 죽이고 싶나>
이다혜 2018-08-22

<헬리콥터 하이스트>

요나스 본니에르 지음 / 생각의날개 펴냄

2009년 9월 23일 새벽 5시,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건물 옥상에 헬리콥터 한대가 나타났다. 보안업체 G4S의 현금보관소 건물의 옥상 유리를 깨고 네명의 도둑이 침입, 폭발물을 이용해 출입문을 열었다. 범인들은 현금을 챙겨 몇분 만에 다시 헬기를 타고 사라졌다. 경찰은 바로 출동했지만 눈앞에서 범인들을 놓쳤고, 헬리콥터는 곧 발견되었지만 범인들은 도주에 성공했다. 결국 범인들은 검거되었지만, 관련된 숱한 인터뷰 요청은 전부 거절했다. 이 실화가 소설로 탄생했다.

스웨덴의 저널리스트 출신 소설가가 쓴 첫 번째 스릴러 소설. <헬리콥터 하이스트>는 이런 말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했다. 진실과 문서, 증언들을 이 책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백을 채우고 더욱 확장해나갔다. (중략) 실제와 유사한 점이 있다면 이는 우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외의 유사성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꾸려지는 초반부터 반전의 마지막까지, 소설은 실제 사건이 일어난 시간 구성을 충실히 따른다. 이 도둑들의 개인사와 그들의 인격적 특징이며, 인물들에 대한 평가(성미가 급하다거나 어리석다거나)를 내리고 ‘알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돈이 사라진다. 실제 사건 당시의 CCTV 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 열린책들 펴냄

1999년. 프랑스 시골 마을 보발에 사는 12살 소년 앙투안은 내향적인 “우울한 아이”다. 어머니와 둘이 사는 앙투안은 이웃집 개 윌리스를 형제처럼 아낀다. 어느 날 윌리스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윌리스의 주인인 데스메트씨는 심하게 다쳐 고통스러워하는 개를 총으로 쏴죽인다. 앙투안은 숲 속 비밀장소에서 윌리스를 위해 슬픔에 잠기는데, 데스메트씨의 아들 레미가 찾아온다. 앙투안은 슬픔과 분노를 담아 들고 있던 작대기를 휘두르고, 레미는 그대로 쓰러졌다. 레미는 죽었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은 철저히 ‘가해자’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심리 미스터리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어린 소년들이다. 가해자는 죽일 생각이 없었고, 마침 자신의 행동을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 운이 좋은가? 피에르 르메트르는, 법에 의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해피엔딩인가를 묻는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앙투안을 위해 변명하지 않고 그를 위로하지도 않는다. 처벌받지 않은 범죄라도 범죄인 사실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죄책감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한 인생’을 망친 죄는 ‘한 인생’으로 다 갚아지지 않는다.

<사장을 죽이고 싶나>

원샨 지음 / 아작 펴냄

홍콩 작가로 2015 타이베이국제도서전 대상을 수상하며 타이완 추리소설계(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추리소설계)에 존재감을 알린 <13.67>의 찬호케이 덕에 대만에서 활동하는 추리소설 작가들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원샨의 <사장을 죽이고 싶나>를 읽은 이유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홍콩 출신으로 캐나다에 거주하며 대만추리소설협회 해외회원으로 활동 중인 원샨은 다양한 관심분야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소설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주인공 위바이통은 어려서 9·11 테러로 부모를 잃은 뒤 런던에서 연극배우를 하고 있다. 어느 날 한 남성이 그를 찾아와, 자신은 그의 부모님과 생사를 바꾼 생존자라며, 위바이통에게 금융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추리소설 독자라면 이미 이 단계에서 수상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첫 출근. 아직 개장 전인 초고층 빌딩 맨 꼭대기에 갔더니 사장의 시체가 있다. 일본의 본격 미스터리를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장르를 변주하는 재미를 쏠쏠히 느낄 수 있으리라. 제목을 통해 직장생활의 애환을 기대한다면, 그보다는 4차 산업혁명의 위험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하는 쪽이 안전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