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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고 말하지 마라
윤가은(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2018-08-22

참 어렵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그 속도를 따라잡기가 점점 숨이 차다. 때로는 변화하는 흐름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못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친숙하고 정든 것들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할 때면 모든 변화가 못마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작 이 나이에, 이런 말을, 이토록 사무치는 마음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결국 그냥 늙어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갑자기 늙어버려 서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늙고 서럽다고 그대로 주저앉아 세상 탓만 할 수는 없으니 어떻든 변해가는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려 애쓰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다시 여러 종류의 다양한 충격과 마주하고 있다. 최근 내가 겪은 가장 큰 쇼크는 최신 유행과 새로운 사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를 풍성하게 키우는 일이 더이상은 내 본능과 감각에 의지해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롭고 젊은 문화와 생각을 알려면 노력해서 배워야 하는 시기가 벌써 온 것이다.

특히 몇달간 작품 준비를 위해 아역배우 오디션을 진행하며 겪은 멘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3년 전에 만난 아이들과 올해 만난 아이들은 완벽하게 다른 시대의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좋아하는 아이돌부터 간식, 장난감, 취미 활동, 장래희망까지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고, 말하는 방식과 생각의 방향도 놀라울 만큼 바뀌었다. 2018년에 만난 아이들은 좋아하는 국내 아이돌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고, 장래희망으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어 부자가 될 것을 꿈꾸지만 불가능할 거라고 못 박았고, 쉬는 시간엔 웹툰을 섭렵하거나 인터넷 쇼핑을 즐기면서도 종일 슬라임을 만지며 멍 때리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오랜 기간 아이들과 작업했으니 분명 아이들과 소통하는 노하우가 있다고, 그래도 아이들의 세계는 잘 알고 있다고 내심 자부심을 가졌던 지난날을 통렬히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나머지 공부를 하는 심경으로, 동네 문방구에서 액체괴물과 인쇄스티커를 사모았고, 유튜브 바다를 헤매며 캐리 언니와 신비아파트, 허팝과 도티의 채널을 구독했고, 아미와 에리와 워너블의 관계를 심도 깊게 파헤치는 며칠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해도 도저히 그 본질적인 매력과 흥미의 지점을 알 수 없는 게 더 많았다. 결국 나는 내가 정말 늙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애초에 30대 어른인 내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일단 우리가 이렇게 다른 세계에서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음을 이해하고, 서로를 잘 모르고 있고 아마 앞으로 더 모를 거라는 것을 인정하는 게 우선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후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매일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다양한 무언가를 시도해보는 것밖에는. 그래도 지금 마마무를 듣는 건 내 순수한 의지고 취향이다. 이런 것도 가끔 있으니 많이 서러워하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