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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본의 시대②] 유정훈 메리크리스마스 대표, “인프라, 철학, 콘텐츠에 대한 애정이 중요하다”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8-08-29

유정훈 메리크리스마스 대표는 지난해 충무로에서 가장 핫했던 사람 중 하나다. 그는 LG애드에서 사회 경력을 시작해 오리온 그룹에 합류한 뒤 메가박스, 라이온즈(오 마켓)를 거쳐 2008년 쇼박스 대표로 선임돼 지금까지 10년 동안 쇼박스를 바위처럼 이끌어왔다. 충무로에서 사업 스타일이 선이 굵기로 정평이 난 그가 장기근속하던 회사를 그만둔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그의 거취를 둘러싼 온갖 ‘카더라’ 통신이 영화인들의 ‘카톡’방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건 그만큼 그가 한국 영화산업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방증이다. 그는 숨 돌릴 틈 없이 메리크리스마스라는 독특한 이름의 신생 회사를 차려 업계로 복귀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가 그리는 큰 그림은 무엇일까. 오랜만에 만난 그는 얼굴이 밝아 보였다.

-사업 구상과 조직 세팅은 끝났나.

=사업을 시작할 때 큰 선을 그렸고 그 선에 맞춰 타임테이블을 짜서 인적 구성을 하는 과정인데 현재로선 일정에 맞게 진행되고 있다.

-10년 전 쇼박스 대표로 취임해 회사를 재정비했을 때보다 손이 더 많이 갈 것 같다.

=크든 작든 회사를 경영하는 포인트는 다 똑같다. 일에 대한 긴장감이나 상상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고 큰 어려움이 없다.

-새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니 주변 반응이 어땠나.

=“그 좋은 델 왜 나왔니?”라고 다들 물었다. (웃음) 쇼박스를 나온 건 개인적인 계획과도 관련 있다. 쇼박스를 맡자마자 영화를 골라 배급하는 구조에서 투자·배급사가 기획부터 참여해 제작사의 아이템에 맞는 감독과 배우를 조합하고, 마케팅까지 내다보는 방식으로 체질을 개선해 구조를 바꾸었다. 그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콘텐츠 인력이 드라마 아니면 영화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웹툰, 웹드라마, ott(인터넷 망을 이용해 제공하는 영상 콘텐츠) 등 새로운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언제까지 콘텐츠 시장이 TV드라마와 영화로만 갈 수 있을까, 영화와 드라마가 각각 가지고 있는 장점을 섞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이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면 지금 콘텐츠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그것이 메리크리스마스의 밑그림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드라마가 성공했으니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원 소스 멀티 유즈’가 아니라 아이템 개발 단계에서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염두에 두고 기획하는 거다. 아이템 하나가 사업적으로 오래갈 수 있고, 다양한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메리크리스마스는 좋은 아이템을 찾아 그 아이템에 맞는 컨셉을 정해 기획·개발한 뒤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적용하는 회사라고 보면 되겠다. 대기업이 가진 자본보다는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는 그릇과 각각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플레이어들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이걸 시도할 수 있다면 쇼박스를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회사를 설립했을 때쯤 중국 화이브러더스가 관심을 보여 함께하게 됐다.

-이것이 기존의 투자·배급사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부분으로 보인다.

=현재는 회사를 만들고 나서 숫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준비 과정에 있다. 새로운 아이템(IP)을 확보해 드라마로 시작해 영화로 넘어갈지, 웹툰을 시작해 게임을 거친 뒤 영화로 만들지, 아니면 아예 3부작으로 계획해 앞 부분은 드라마로 가고, 클라이맥스만 영화로 보여줄지 등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한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새로운 IP를 얼마나 확보하는가가 관건인데.

=시장에 존재하는 IP들이 많다. 웹툰이나 웹드라마쪽 파트너들과 제휴 관계를 맺고 웹툰이나 웹드라마 기획 단계에서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게임쪽에도 얘기 나누고 있는 곳이 있고. 현재는 초기 아이템들을 찾고 있는 단계며 콘텐츠도 5개 쪽과 논의하고 있다. 여러 밑그림이 만들어지면 곧바로 기획·개발에 들어갈 거고, 그때 가서야 재미있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에서 ‘메리크리스마스가 재미있는 영화를 내놓는 다더라’ 같은 그 재미가 아니라 ‘쟤네들 희한한 거 하네’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직원들이 당신의 사업 방향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다.

=사업 방향에 대해서는 이해한다. 하지만 기존에 제작사, 투자·배급사, 극장, 방송국, 펀드 등 이미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특히 제작사의 기획·개발 기능과 투자·배급사의 투자 기능을 접목하고 영화와 TV드라마를 넘나드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일반화되면 TV드라마나 영화 등 각 콘텐츠 시장이 직면하고 있는 수익구조나 성장의 한계성이 개선될 것이며, 특히 영화시장에서는 자본력을 가지고 우수한 인력들을 프로젝트별로 최적화하여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고, 외부의 순수 투자자들을 유치해서 투자 수익률을 개선시키고, 마케팅과 배급을 담당하는 순수 배급마케팅 회사도 출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러한 사업구조 변화의 핵심은 IP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기에 메리크리스마스는 IP 확보를 통해 이러한 시도를 해나갈 계획이다.

-이 고민은 IP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으로도 들린다.

=그렇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아이템 하나가 10년을 못 가나 싶다. 마블은 아이템 하나로 10년 넘게 돈을 벌고 있는데 말이다. 게임, 웹툰, 그래픽노블, 멀티캐릭터가 시장에서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인데 결국 세계관을 어떻게 세팅되는가가 관건이다. 마블 유니버스가 그렇듯이 콘텐츠별로 관객과 소통하면서 서사가 확장되면 아이템 하나로도 10년 이상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영화만 하며 매번 망하고 흥하면서 일희일비하고 그러나.

-이 구상을 쇼박스에서 시도할 생각은 없었나.

=쇼박스에서 몇 가지를 시도했었는데 영화 투자·배급 사업을 하는 회사다보니 관성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관성으로 살다보면 어느 순간 영화를 다시 고르고 있고…. 모두 씻고 다시 시작하는 포인트가 필요했는데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자금만큼이나 콘텐츠에 관심이 많고 능력 있는 투자자와 함께하는 게 좋겠다 싶었는데 화이브러더스는 중국에서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해오고 있고, 많은 인프라를 갖춘 데다가 한국에서 매니지먼트 사업도 하고 있어 그들과 함께라면 사업을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화이브러더스는 쇼박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었는데 그들이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신생 회사에 투자한 이유는 당신과의 오랜 관계 때문인가.

=쇼박스 시절부터 함께 일한 지 4, 5년 된 것 같다. 일하면서 쌓은 신뢰가 서로 높았다. ‘케미’가 잘 맞는다고 할까, 그것도 작용한 것 같다.

-그래서 화이브러더스로부터 얼마를 투자받았나. (웃음)

=100억원부터 시작하고 있다.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다음이 있고.

-화이브러더스에 기대할 수 있는 건 자본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일 텐데.

=화이와 재미있는 시도를 하고 싶다. 화이는 일본 소설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라이언스게이트 같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을 허브로 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업무를 제휴하거나 협업할 수 있는 라인들도 있다. 화이는 자국 시장에서 해야 되거나 하고 싶은 영화 중에서 소재적인 부분에서 시도할 수 없는 아이템들도 가지고 있다. 중국 공안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중국에서 제작될 수 없지만 한국 상황에 맞게 각색한다면 한국에서 제작할 수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화이에서 가져올 만한 아이템이 두개 정도 있다. 이중에서 개발을 고민하고 있는 시나리오도 있어 가능한 한 빨리 한국 감독, 한국과 중국 배우를 조합해 진행해보고 싶다. 한국영화를 잘 만들어서 중국에서 리메이크하는 기존의 공동 제작 모양새보다는 아이템 개발 단계에서 한국과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세우려고 한다. 한한령이 완화된다면 그 시기가 빨리 올 것이다.

-개인적인 질문도 하겠다. 지난해 쇼박스를 나오는 과정에서 충무로에서 당신의 거취를 두고 말이 많았는데.

=당시 여러 제안을 받았고, 고민이 많았다. 어떤 제안을 고를까 하는 고민이 아니라 ‘시장이 바뀌나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게 ‘변화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고 감지했다. 투자·배급사를 10년 동안 맡았다는 건 너무 오래 한 거다. 함께 일했던 직원들도 임원이 됐는데 이 정도 했으면 됐지, 계속 거기 있는 것도 그렇더라. 그곳에서 몇년 더 하다 업계에서 퇴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이른 것 같고, 시장이 계속 변화하니 지금 나오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런 마음은 오랫동안 고민 안 한다. (웃음)

-오래 일했던 까닭에 회사를 나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좋은 데를 왜 나왔지. (웃음) 앞서 말한 대로 이 사업의 방향성은 대기업보다 콘텐츠를 아는 사람과 그가 가진 동력, 인프라가 더 적합했다. 대기업보다 콘텐츠와 관련된 사람들만으로 사업을 하자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다. 화이와 함께한 이유도 화이가 가진 자본보다 인프라, 철학, 콘텐츠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후임인 김도수 쇼박스 신임 대표가 쇼박스를 잘 이끌 것 같나.

=좋은 직원들이 그대로 있으니 잘할 거다.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도 잘하실 거고. 늘 하는 얘기지만 경영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사람과 돈 그리고 비전이다. 특히 비전, 그러니까 사업의 방향성을 놓치면 회사가 가라앉게 된다. 10년 전 쇼박스를 처음 맡았을 때 감독과 함께 아이템을 선정해 기획·개발하는 구조를 처음 시도했는데 지금은 전부 그렇게 일하고 있지 않나. 감독이 투자·배급사와 직접 계약해 돈 벌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쇼박스 생활 10년 동안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나?’라는 질문을 받는 것보다 투자·배급사의 체질을 바꾸었다는 소리를 듣는 게 더 좋았다.

-메리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몇몇 회사가 투자·배급업에 뛰어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신규 자본이 들어오려는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신규 자본이 충무로에 들어오는 것보다 이 산업에서 어떻게 특화된 비즈니스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아직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 제작과 배급 부분에서 큰 변화가 생길 거다. 어쨌거나 요새 영화 하는 사람들은 거의 안 만난다. 오히려 웹툰, 웹드라마,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경쟁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게 재미있다.

-다른 업계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을 만나보니 어떤가.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이름을 메리크리스마스로 지은 이유가 뭔가.

=하루 만에 지은 거라, 이런 얘기하면 사람들이 웃는데…. 회사 이름 끝에 죄다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가 붙지 않나. 비슷해 보이는 게 싫었다. 살면서 유일하게 네번 이상 본 영화가 <러브 액츄얼리>(2003)인데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야기 배경이 크리스마스여서다. 크리스마스에는 엄청난 구두쇠도 다른 사람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지 않나. (웃음) 한국도, 중국도, 일본도, 미국도, 유럽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니 세계 공용어라 할 만하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 한마디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데 결국 우리가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감정이 무엇이겠나.

-지금은 메리 크리스마스한가.

=그렇다. (웃음)

<슈츠>

최근 꽂힌 영화?

“꽂힌 영화는 없고 정말 재미있게 읽은 웹툰이 있는데 공개할 수 없다. (웃음) 최근 매우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미국 드라마 <슈츠>다. 시즌7까지 나왔는데 수많은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유기적으로 잘 배치해 아주 감탄을 했다. <왕좌의 게임> 시리즈처럼 말이다. <슈츠>를 보면서 많은 인물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출근해서 처음 하는 일

“쇼박스 시절부터 오전 9시10분에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모닝커피를 마신다. 쇼박스 때부터 최고급 커피 머신을 들여놨다. 전 직원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말이다. 커피 마시는 데 5~10분, 담배 한대 피우는 데 2~3분 걸린다. 이 시간 동안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을 다진다. 내 방은 갇혀 있는 느낌이 싫어서 통창으로 다 보이게 설계했다. 작은 책상 말고 긴 테이블을 좋아해 나무를 특별히 주문해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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