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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치킨인류>를 연출한 이욱정 감독, 제작사 배달의 민족의 장인성 이사,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트렌드를 읽는다”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18-11-19

장인성 이사, 이욱정 감독(왼쪽부터).

“영화와 음식만큼 힘들고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인류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요리 학교 르코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배운 탐험가, 이욱정 감독은 말한다. KBS에서 PD로 일하며 다큐멘터리 <누들로드>(2009), <요리인류>(2015) 등 한국 음식 콘텐츠의 도약을 이끈 이욱정 감독이 이번엔 배달앱에 기반한 푸드테크 서비스의 선두주자인 배달의 민족과 만났다. 제4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치킨인류>는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식재료인 닭을 좇아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닭요리와 사람의 문화를 펼쳐내는 이른바 음식 오디세이다. 이 장대하고도 맛있는 여행을 책임진 이욱정 감독과 시종 유쾌한 조력자였던 배달의 민족 장인성 이사에게 만남을 청했다.

-KBS 이욱정 PD와 배달의 민족이 어떻게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나. 작품 기획 단계가 궁금해진다.

=이욱정_ 배달의 민족이 <매거진 B>와 함께 만드는 <매거진 F>를 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기획이다. 기존의 음식 잡지와는 다른 결을 가진, 재미와 깊이를 모두 가진 특별한 콘텐츠였다. 창간 소식을 전해들음과 동시에 <매거진 F>가 매호 다루는 음식 콘텐츠를 종이 매체에만 담지 말고 일종의 원 소스 멀티 유즈 프로젝트로 실현하면 어떨까 하고 의견이 모아졌다. 끈질긴 시간성을 가지는 두 매체, 매거진과 다큐멘터리가 쌍을 이루게 해 더욱 값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이란 회사의 실험정신이 특히 내가 꾸린 ‘요리인류’ 브랜드(이욱정 PD는 <요리인류>를 비롯해 <요리인류: 도시의 맛>(2017) 등 음식 문화에 인류학적 식견을 더한 자신만의 다큐멘터리 브랜드를 구축했다. KBS 내 ‘요리인류’팀을 꾸려 지금도 콘텐츠 제작에 힘쏟고 있다.-편집자)와 좋은 시너지를 낼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장인성_ 배달의 민족이 왜 뜬금없이 음식 매거진이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의아한 반응들을 보고 <매거진 F>를 시작하길 잘했구나 싶더라. 배달의 민족 하면 무조건 야식, 치킨 등을 떠올리는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만든 시도였다.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가 우리의 모토다. 굳이 어딘가로 가지 않고도, 배가 고플 때 좋은 음식으로 언제든 배를 채울 수 있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 더 넓고 건강한 방식으로 음식 문화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배달의 민족의 마음이 깃든 사업이다. 다큐멘터리 <치킨인류>를 만들고, <매거진 F>에서 소금이나 토마토를 이야기한다고 해서(1호 소금, 2호 치즈, 3호 토마토, 4호 치킨, 그리고 현재 준비 중인 5호는 쌀을 다룰 예정이다.-편집자)회사의 매출이 올라가진 않는다. (웃음) 문화에 기여한다는 마인드로 꾸준하고 진정성 있게 가치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여러 국가 중 한국 분량이 아예 빠져 있는 것은 의외였다.

이욱정_ 이전 다큐멘터리에서도 한국 분량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 다분히 의도한 구성이다. 요리인류 프로그램과 한식 전문 프로그램을 분리하려고 한다. 요리인류 기획의 핵심은 음식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특히 이번 극장판 <치킨인류>의 경우,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로컬 프라이드치킨만 소비하지만 인류의 많은 주방에서 닭이 굉장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리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장인성_ 감독님의 인류학적 취재가 특히 빛을 발할 수 있는 구성이다. 치킨이란 음식이 각 나라의 문화별로 사람에게 가지는 의미, 그리고 그 음식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마음과 행복을 얻는지 더 큰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극장판 외에 웹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잘개 쪼개 온라인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이욱정_ 극장판에서 분량상 편집한 부분도 웹에서는 볼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치킨에 대한 내용도 한 에피소드를 차지한다. 나는 오늘날의 인류를 인스턴트 인류라고 불러보고 싶다. 인스턴트 푸드, 인스턴트 러브 모두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인스턴트’하다는 건 인류의 본능 중 하나다. 이제는 그 본래 의미에 가깝게, 시대가 인식하는 인스턴트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기 욕망을 ‘즉각적으로’ 처리하고 싶어 했다. 다만 기술이 뒷받침해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 손편지를 썼고, 배가 고프면 직접 나가서 동물을 사냥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테크놀로지가 해결해준다. 그런 면에서 콘텐츠의 소비 형태도 시대의 흐름과 발맞춰야 한다. 아무리 스토리텔링과 세부 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보 및 지식 위주의 다큐멘터리를 1시간 내내 보는 것은 지루할 수밖에 없는 시대인 거다. 지하철 타고 이동할 때 보는 용도로, 딱 10분짜리 에피소드를 구성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한 에피소드씩 볼 수 있게. 웹다큐 포맷에 워낙 관심이 많은 터라, 배달의 민족과 <치킨인류>에 이어 <반찬인류>까지 준비 중이다. 요리인류팀은 언제나 다큐멘터리의 기발함과 신선함을 고민한다.

-특히 프라이드치킨을 중심으로 한 배달 문화의 강세가 뚜렷하고, 음식 콘텐츠가 넘쳐난다. 지금 한국의 식문화에 두분은 어떤 해석을 더해줄 수 있을까.

장인성_ 이제는 더이상 미리 전단지를 모으거나 정보를 찾아놓지 않아도, 20~30대 젊은 사람들과 1인 가정이 쉽고 편안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다. 그만큼 인프라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해주던 밥, 그러니까 집밥의 의미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이욱정_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 가족 해체와 1인 가정의 증가, 입시나 취업 경쟁이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시대라는 것도 큰 이유가 된다. 지금의 어린 세대들은 엄마가 시켜준 밥, 엄마랑 같이 어느 식당에 가서 먹은 밥도 소중하게 추억할 것이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트렌드라고 본다. 가사노동으로서의 요리는 줄어드는 대신, 놀이로서의 요리가 조금씩 떠오르고 있다. 일상의 끼니는 배달 음식, 테이크아웃, 인스턴트 식품으로 간편하게 해결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육체와 정신을 움직이면서 요리를 통해 나를 깨달아가는 행위의 쾌감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지. 미디어 테크놀로지, 푸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만들어낸 결과다. 어느 시대보다도 요리를 적게 하면서 요리에 가장 관심이 많은 아이러니한 시대이기도 하다. 아마 주방용품 소비도 가장 높은 시대가 아닐까?

장인성_ 요리하는 남자가 주목받는 것, 음식 방송이 사랑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제4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했다. KBS 방영이 아닌 영화제로 작품을 첫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이욱정_ 텔레비전은 게시판 글이나 댓글을 통해 반응을 접하는 반면, 영화감독들은 관객과 바로 대면하지 않나. 이번에 몸소 체험하고서 영화감독들의 무대인사 일정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실감했다. (웃음) 객석에 앉아서도 자꾸 관객의 반응을 보게 되고, 나중에 무대에 나가서도 부담감이 상당했다. 한편으로는 큰 스크린으로 작품을 확인하는 보람도 있더라. 기껏 고생해서 UHD로 작품을 찍었더니, 방송 플랫폼의 특성상 주로 스마트폰, 노트북으로 다시 찾아보게 되는 형태라 화면이 잘 전달될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음식을 만들자마자 식기 전에 빨리 와서 먹으라고 재촉하게 되는 요리사의 마음과 비슷한 이치다.

-<치킨인류> 여행 중 가장 맛있었던 닭요리는.

이욱정_ 아마 저크치킨이 아닐는지. (웃음) <요리인류: 도시의 맛> 시리즈에서 뉴욕편을 촬영할 때 브루클린에서 저크치킨을 먹은 적이 있다. 식당 공터에서 드럼통을 이용해 만드는 팬 바비큐의 일종인데, 정말이지 황홀하더라. 이후에 치킨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면 저크치킨은 반드시 넣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이번에는 저크치킨의 본고장인 자메이카로 가서 그곳의 노예제 역사까지 함께 살펴본다.

<치킨인류>

제작 배달의 민족 / 감독 이욱정 / 제작연도 2018년 / 상영시간 72분

인도, 미국, 중국, 자메이카, 일본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류의 전천후 음식인 닭을 탐구한다. 그 어느 곳에서도 금기시되지 않는 식재료이면서, 고급 요리와 서민음식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닭요리가 <치킨인류>를 가득 채운다. 여기에 이욱정 감독은 닭이라는 생명체의 태동에서부터 각 지역의 역사·문화적 관계를 짚으며 인류 보편의 미식 감각을 노래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실행력, 그 여정에 깃든 사람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낙관주의가 <치킨인류>를 보는 경험을 배부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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