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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스웨덴영화제①] 잉마르 베리만 감독에 대하여
김소미 2018-11-22

환등기를 사랑한 소년, 스웨덴의 전설로 남다

<외침과 속삭임>

잉마르 베리만은 스웨덴의 영화감독이자 연극연출가, TV드라마의 대가로서 신의 구원과 인간의 불가해한 내면 세계를 집요히 탐구하고 응시한 작가다. 미국, 스웨덴 언론을 중심으로 잉마르 베리만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들이 속속 등장할 때, 그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전설적인’이라는 말로 형용됐다. 얼마쯤 식상하기까지 한 이 수사가 무색할 정도로, 베리만의 족적은 실로 전설적인 유니버스로 남았다. 당대로서는 베리만의 영화가 <가디언>의 표현대로 “충격적일 정도로 현대적”이었을 것이고, 그가 긴 일생을 통해 남긴 62편의 영화와 170여편 이상의 연극은 마틴 스코시즈, 우디 앨런, 리처드 링클레이터, 웨스 앤더슨 등 후배 영화인들의 전범이 되어주었다. 사실 우리는 아직 실존의 고통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베리만의 양식적인 드라마와 비견될 새로운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사에서 베리만의 거대한 존재감은, 때로는 과대평가의 논쟁을 낳기도 했다. 베리만 사후, 미국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과 로저 에버트의 설전이 상징적인 예다. “프랑스 누벨바그에 비해 잉마르 베리만은 새로운 영화적인 어법을 실천한 작가가 아니다”라는 로젠봄의 비판에, 에버트는 “형식이 내러티브나 감정적인 내용, 연기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모두가 그에 동의할 수는 없다”라고 응수했다.

<가을 소나타>

<화니와 알렉산더>

191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잉마르 베리만은 어린 시절 환등기(magic lantern)에 푹 빠져 지냈다.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에서 목각 인형들로 무대를 만들어 꾸미고, 연극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1937년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에 입학해 아마추어 작가로 활동하면서, 잉마르 베리만은 입센과 스트린드베리, 체호프에게 영감을 얻어 극본 작업을 시작했다. 1946년에 고교 생활의 억압을 그린 첫 영화 시나리오 <고통>이 알프 조베르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것이 그의 첫 영화계 입문이었다. 같은 해 장편영화 <위기>로 데뷔한 베리만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산딸기>,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제7의 봉인>(1957) 등을 통해 영화가 형이상학적 사유를 펼칠 수 있는 매체임을 증명하고, 유럽 예술영화의 새로운 지형도를 펼쳐냈다. <제7의 봉인>에서 막스 폰 시도가 연기한 인물은 죽음의 사자와 체스를 두고 하루를 얻어낸 뒤 침울한 인간 세상의 실체를 바라보는데, 인간의 존재론적 좌절을 강렬히 보여주는 베리만 영화의 상징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일관된 테마를 평생에 걸쳐 집요하게 파헤친 그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페르소나>다. 말을 잃은 배우 엘리자벳(리브 울만)과 그를 돌보는 간호사 알마(비비 앤더슨)의 심리 드라마인 <페르소나>는 타자를 통한 자기 응시와 해체를 실험적인 영상으로 응축해 보여준다. 서로 닮은꼴을 한 두 여인의 얼굴을 하나로 겹치는 이미지는 영혼에 깊고 날카로운 자국을 남기는 예술가 잉마르 베리만의 서명처럼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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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한스웨덴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