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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배경인 <모털 엔진>, 미리 보기 키워드 4
김현수 2018-11-29

천년 후의 폐허에서 펼쳐지는 저항의 서사

또 하나의 판타지 세계가 열린다. 작가 필립 리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모털 엔진>은 피터 잭슨 감독이 오래전부터 영화화하길 원했던 작품으로, ‘견인도시’라는 독특한 세계관의 설정이 돋보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멸망 직전의 황폐화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지상을 떠나 움직이는 도시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서로 전투를 벌이는 영화적 설정이 흥미롭다. 제작자로 참여한 피터 잭슨 감독과 그의 오랜 동료였던 크리스천 리버스 감독이 오랜 기간 숙성을 거쳐 만들어낸 영화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비주얼을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이 방대한 가상의 대서사시를 즐기기 위해 숙지해야 할 주요 키워드, 제작진의 간략한 해설을 바탕으로 공개 직전의 영화를 미리 들여다봤다.

사냥꾼의 도시

먼저 <모털 엔진>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인 세계관부터 알아야 한다. 배경은 움직이는 견인도시. 즉 기계장치 위에 건설된 도시가 통째로 움직이며 다른 도시를 약탈하면서 산다. 원작 소설에서는 도시의 약탈 행위를 말 그대로 ‘잡아먹는다’고 표현한다. 도시의 규모에 따라서 대도시들이 작은 소도시를, 그리고 소도시들이 마을을 잡아먹으며 사는 것. 그리고 이를 ‘도시진화론’이라고 명명한 사람이 있다. 바로, 위대한 엔지니어 니콜라스 쿼크다. 그는 런던을 최초의 사냥꾼의 도시로 만들었고 이후 지난 천년 동안 온 세상이 도시진화론 법칙에 따라 유지되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이들 도시의 외형은 지진과 화산 폭발, 북쪽 빙하의 위협 속에서 생존 전략으로 내세웠던 ‘여러 겹으로 쌓아올린 케이크마냥 일곱층의 갑판으로 구성된 거대한 무쇠 덩어리’다. 도시마다 내장갑판에서 사냥한 도시를 해체하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은 책과 골동품도 뒤지고 먹을 것도 훔친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시대 배경은 정확한 가늠이 어려운 천년 후쯤의 지구가 배경이지만, 제작진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후에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고, 2118년 이후 또다시 1600년이 지난 3718년을 정확한 영화의 시간 배경으로 삼았다. <모털 엔진>의 기본적인 비주얼 컨셉을 보여주는 견인도시, 특히 영화의 주요 배경인 런던이 약탈을 일삼게 되는 이 시대는 피터 잭슨에 따르면 “디스토피아 세계가 아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기능을 하는 도시를 상상했고, 서로 다른 세력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사회로 묘사하고자 했다”. 영화에는 런던 외에도 공중도시 에어헤이븐을 비롯해 수륙양용도시, 여러 사냥꾼들의 도시 등이 등장할 예정인데 대략적인 설명만 들으면 시각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움직이는 성이 떠오른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이전에도 <천공의 성 라퓨타>(1986) 같은 일종의 SF 장르의 하위개념 중 하나인 스팀펑크 장르에 해당되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직접적인 제작진의 관련 언급은 없지만 컨셉만으로도 <모털 엔진>을 둘러싼 모든 이미지 역시 스팀펑크 스타일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견인 도시연맹

소설 속 <모털 엔진>의 세계에서는 “오, 쿼크 맙소사”라는 감탄사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엔지니어 니콜라스 쿼크의 이론이 세계 기반의 핵심이라는 뜻. 물론 그렇기에 반대 세력도 존재한다. 견인도시 시대가 열리기 전인 이른바 암흑기에 유랑 제국들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화산으로 들끓는 지상 위에서 도시들이 치열하게 싸웠고 도태된 세력들은 아웃컨트리라 불리는 견인도시 바깥의 맨땅에 자리잡고 살기 시작한다. 지구 곳곳에 방어벽으로 견인도시 진입을 막아놓은 반견인 도시연맹이 있고 과거의 기준에 따르면 아시아 대륙과 인도차이나 반도 근처에 그런 곳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60분 전쟁’이라고 하는 문명 최후의 전쟁도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의 견인도시들은 대부분 이때 파묻혀버린 올드-테크 유물을 찾아내 그것을 바탕으로 기술 발전을 이루는 중이다. ‘샨 구오’는 반견인 도시연맹의 대표 도시로, 아마도 다른 도시의 약탈을 위해 움직이는 런던에 대항하는 장소로 중요하게 등장할 듯하다. 주인공 헤스터 쇼(헤라 힐마)는 런던 바깥을 근거지로 삼고 지내다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런던의 고고학자 테데우스 발렌타인(휴고 위빙)을 암살하려 한다. 테데우스는 고물 수집상이었다가 런던에서 유명한 고고학자로 이름을 알리게 된 인물로, 헤스터와 우연히 엮이게 되는 또 다른 주인공 톰 내츠워디(로버트 시핸)와도 관계가 있는 인물이다. 헤스터와 톰은 테데우스의 음모에 휘말려 런던 바깥으로 떨어진다. 헤스터를 연기한 헤라 힐마는 그녀를 “가장 현대적인 캐릭터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얼굴에 큰 상처를 지닌 채로 등장하는데 이는 “잔인하게 살해된 엄마의 복수를 꿈꾸는 여성으로서 이 상처가 복수를 향한 촉매제”와 같다고. 그러니까 헤스터는 “목적을 가진 분노의 여인이자, 사랑하는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모든 것에 대항하는 여성”이다. 그녀와 함께 등장할 반견인 도시연맹의 리더 안나 팽(지혜)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녀는 악명 높은 레지스탕스 전투기 제니 하니버를 직접 만들어 모는 조종사로 나오며, <모털 엔진>의 세계에서는 드물게 멋지고 정의로운 기술자다. 안나를 연기한 한국 배우 지혜는 “무자비하고, 무례하고, 겁이 없지만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찬 리더”라고 안나를 묘사한다. 아마도 영화는 헤스터와 그를 돕는 톰, 그리고 안나를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최상층 갑판 & 위대한 사냥터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게 될 곳들에 대해서도 소개가 필요하다. 견인도시에 사는 인류는 역사학자 길드, 상인 길드, 내비게이터 길드, 엔지니어 길드 등 네개 집단을 이뤄 산다. 도시를 이루는 일종의 직업군인데 엔지니어 길드가 가장 위세를 떨치며 산다. 모두 7층의 갑판으로 이뤄진 견인도시 런던의 꼭대기에는 최상층 갑판이 존재하는데 이곳에는 각 길드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길드홀 타워, 엔지니어룸, 세인트 폴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런던의 시스템을 별다른 의심 없이 따르고 살던 톰의 신분은 3등 견습생으로 평범한 노동자 계층이다. 영화는 헤스터가 톰과 힘을 합쳐 최상류층인 테데우스와 런던 시장인 매그너스 크롬(조엘 토벡) 사이에 숨겨진 비밀과 음모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제작자 피터 잭슨 감독은 이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는 이 영화가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라고 말한다. 크리스천 리버스 감독도 “두 사람의 관계는 암살자와 암살을 막으려는 순진한 청년에서 시작하는데 계속해서 서로를 믿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둘은 영혼의 동반자가 된다”고 말했는데 이들이 모험을 펼치게 될 장소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소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최상층 갑판 외에 위대한 사냥터로 묘사되는 곳은 도시들이 약탈을 일삼기 위해 향하는 곳이다. 이를 둘러싸고 런던 외에도 공중도시 에어헤이븐과 사냥꾼의 도시 아크에 인절 등이 등장할 예정. 에어헤이븐은 하늘 위의 스위스이자 카사블랑카 같은 곳으로, 흥미로운 것이 복합현실 기술인 ‘홀로렌즈 홀로그래픽’ 기술이라는 최첨단 프로그램으로 디자인되었다. 크리스천 리버스 감독은 이런 도시를 디자인할 때 “100년 후 핵전쟁이란 재앙 이후에도 망가지지 않고 남아 있을 디자인”을 떠올렸다고 한다. 즉 “유리가 없어지고 석상만 남아 있을 것 같은 공간”이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히 미래이기 때문에 발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잿더미로부터 재건된 문명”이란 컨셉을 강조하려고 한 것. 영화 속 박물관 고대 기술실에 전시된 유리 디스플레이 케이스 안의 컴퓨터, 가상현실 안경, 휴대용 게임기, 이어폰, 손목시계 휴대전화와 같은 고대 기술이 등장하는 장면을 스크린에서 확인하게 되면 시각적인 재미와 충격이 배가될 것이다.

부활한 인간, 스토커

헤스터와 톰이 테데우스와 시장의 음모을 파헤치려 할 때 이를 방해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스토커 슈라이크(스티븐 랭)가 등장한다. 추정하기로는 과거 60분 전쟁 때 만들어진 존재로 보이는데, <모털 엔진>의 세계관에서 인간과 기계가 결합된 존재인 스토커는 기술로 부활한 인간을 일컫는다. 슈라이크라는 캐릭터는 마지막 남은 스토커로 등장할 예정. 오직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미래의 좀비 같은 살인 병기로, 키가 3m에 달하는 거신 병기다. <맨 인 더 다크>(2016)에서의 스티븐 랭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번에도 그의 무시무시한 액션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원작 소설을 읽은 독자 관객이라면 헤스터와 톰을 해치라는 명령을 수행하는 스토커의 존재도 존재지만 테데우스를 비롯한 시장과 같은 최상층 갑판의 세력들이 스토커 같은 존재를 왜 부활시키려 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헤스터와 톰의 모험이 좀더 진행되면서 등장하게 될 메두사라는 의문의 키워드도 영화에서 어떻게 등장할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인류의 해악과도 같은 기계문명의 자산으로, 실험적인 에너지 무기가 아닐까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필립 리브는 “처음에는 바퀴가 달린 도시가 떠올랐는데 그보다는 사람들이 바퀴 달린 도시를 궁금해한다면 그걸 왜 궁금해 할까를 고민했다. 그다음 떠올린 것이 바퀴 달린 도시가 다른 바퀴 달린 도시를 추격하는 것이었다”라고 작품의 기획 아이디어를 설명한 바 있다. 사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핵심 주제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천년이란 세월이 지나도 황폐화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벗어나고자 저항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시키는 대로 살다가 어느 날 인간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 <모털 엔진>은 강력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저항의 서사 속에서 가장 주체적으로 삶을 쟁취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형태만 달라질 뿐 천년이 가도 사회의 억압은 계속되고 사람들의 저항도 계속된다. <모털 엔진>이 보여줄 투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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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PI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