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넷플릭스①] 집중 점검! 넷플릭스를 둘러싼 영화계의 변화와 감독들의 움직임
임수연 2018-12-12

넷플릭스 영화, 극장을 위협하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인정하자. 올해만큼은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보다 베니스국제영화제(이하 베니스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이하 토론토영화제)의 라인업이 좋았다. 베니스영화제는 알폰소 쿠아론, 코언 형제, 폴 그린그래스의 신작과 브래들리 쿠퍼의 감독 데뷔작, 46년 전 오슨 웰스의 유작을 가져왔고, 토론토영화제는 배리 젠킨스, 스티브 매퀸, 세바스티안 렐리오, 데이비드 매킨지 등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버라이어티>는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들 중 많은 작품이 칸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되기를 바랐지만, 올해는 덜 알려진 감독들을 대신 소개해야만 했다”고 전했다. 전세가 역전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수용 여부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위기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를 둘러싸고 프랑스 극장협회가 “개봉 3년 뒤 스트리밍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현지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공식 성명을 발표한 후 1여년간 넷플릭스와 칸영화제는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결국 칸영화제에서 먼저 극장 상영을 거부하면 경쟁부문에 초청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넷플릭스는 아예 출품을 전면 거부했다. 이로써 올해 칸영화제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오슨 웰스의 <바람의 저편>, 폴 그린그래스의 <7월22일> 등을 포기해야 했고, 공교롭게도 이 작품들이 비평적으로 빼어난 평가를 받으면서 후속 영화제가 대신 수혜를 누렸다. 한편 올해 넷플릭스 영화는 흥행 면에서도 중요한 기록을 세웠다. 기존 영화 스튜디오가 최근 10년간 주목하지 않았던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수요를 파악한 넷플릭스는 올여름 6편의 자체 제작 로맨스물을 내놓았고, 이중 전세계 8천만명이 감상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출연배우들을 스타로 만들었다. <씨네21> 1181호 특집 “‘넷플릭스 See What’s Next: Asia’에서 만난 넷플릭스의 프로그램 제작 방향, 그리고 미디어 플랫폼의 미래 예측”에서 언급했듯, 넷플릭스는 전세계 1억3700만 구독자의 시청 패턴을 분석해 이에 따라 콘텐츠를 개발한다. 세계 시장으로 눈을 넓히면 ‘마이너’한 콘텐츠에도 투자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90년대의 많은 할리우드 스타가 하이틴 로맨스 장르에서 발굴되고 이들이 영화산업을 이끌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넷플릭스는 분명 존재하지만 유독 저평가됐던 시장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브라이트>

넷플릭스 영화가 비평과 흥행 면에서 모두 존재감을 키워가는 사이, 극장은 관객수 감소에 직면했다. 2017년 미국 및 캐나다 관객수는 1992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고, 티켓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북미 매출은 전년보다 2.7% 감소했다. 이같은 결과에는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부진한 성적도 영향을 줬지만, <블룸버그>는 넷플릭스, 아마존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다른 엔터테인먼트 선택권을 제공하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넷플릭스가 극장 영화시장에 위협이 된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와 달리 극장 개봉을 보장하는 아마존 스튜디오가 제작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가 오스카 수상작이 되는 사이, 꽤나 공격적인 오스카 캠페인을 펼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2015)은 후보 지명에 실패했다. 무려 제작비 9천만달러가 투입된 윌 스미스 주연의 SF영화 <브라이트>는 로튼 토마토 지수 26%라는 수치를 기록하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스콧 스투버를 영화 파트 대표로 임명하는 등 지속적으로 사업 기반을 다졌다. 무엇보다 매달 8~14달러를 지불하는 1억3700만 가입자는 공격적인 투자를 가능케 만든다. 지금 넷플릭스는 할리우드의 어떤 스튜디오보다 영화를 많이 만드는 기업이다. 2018년 워너브러더스는 23편, 디즈니는 10편의 영화를 만든 반면 넷플릭스는 무려 82편의 오리지널 영화를 제작했다. 올해 콘텐츠 제작에만 130억달러를 지출한 넷플릭스를 두고 골드만삭스는 “2022년이 되면 연간 225억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이는 현재 미국의 모든 네트워크 및 케이블 회사가 엔터테인먼트에 지출한 금액 총합과 얼마 차이나지 않는 수치다.

<옥자>

넷플릭스를 둘러싼 감독들의 주장

최근의 넷플릭스는 봉준호, 알폰소 쿠아론, 코언 형제 같은 거장을 데려올 수 있다면 돈으로 퀄리티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창작자에게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 넷플릭스 콘텐츠 사업의 특성은 다소 리스크가 있지만, 감독이 자유롭게 창작욕을 발휘한 <옥자> <로마> <카우보이의 노래> 등은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넷플릭스 영화의 이름값을 상승시켰다.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수상이 유력하게 꼽히는 <로마>가 실제 수상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고민할 창작자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넷플릭스는 극장 영화를 지원하는 것을 이상하게 싫어한다. 모든 것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 공개하는 무신경한 정책은 극장 개봉을 위해 결코 옹호될 수 없다”고 비판한 크리스토퍼 놀란, “TV 형식으로 만든 것은 TV영화라고 부르고, 아카데미가 아닌 에미상 후보에 올라야 한다. 짧은 기간 일부 극장에서만 상영된 영화는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거장도 있지만, 마틴 스코시즈는 내년 공개될 <아이리시맨>에서 로버트 드니로의 30년 전 모습을 구현할 막대한 CG 비용을 대줄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인디영화 투자·배급사 시네틱 미디어의 로스 프레머 이사처럼 “넷플릭스는 ‘우리에겐 돈이 있으니까, 상을 받고 신뢰를 얻자’고 한다. 이것은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짓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하기를 바라는 창작자들에게 리스크가 될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

넷플릭스가 영화계에 쏘아올린 작은 공

관건은 넷플릭스가 극장 상영에 어느 정도 문을 열 것인가 여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브랜드 값을 높여줄 ‘수상 실적’을 위해서는 “넷플릭스 사용자들은 지체 없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존 룰을 깨야 할 일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기 위해서는 극장에서 일정 기간 상영되어야 하며, 영화제 관객은 넷플릭스 회원보다 먼저 프리미어 상영으로 작품을 볼 수 있는 데다가, 65mm필름과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극장 제한 상영을 요구한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같은 창작자가 늘어날수록 넷플릭스는 일정 부분 양보를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랜드마크 극장 인수 이슈가 뜨거웠을 때 초기에 넷플릭스가 관심을 보인 것도 이같은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이픽 엔터테인먼트는 대부분의 극장 운영자들이 넷플릭스와의 거래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오픈 날 극장 동시개봉을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만약 넷플릭스가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전설적인 이름들을 자신의 플랫폼에 끌어들이고 싶다면 아예 제대로 된 극장 개봉을 고민해야 하는데, 이는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넷플릭스의 이점을 퇴색시킨다. 기존 스튜디오와의 차별점이 흐릿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총부채 100억달러를 돌파한 넷플릭스의 공격적인 투자가 언제까지 가능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넷플릭스가 결국 영화계 전체에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입장도 존재한다. 올해 토론토영화제 기간에 열린 패널 토크 행사에서 존 피시안 전국극장주협회 대표는 “극장은 넷플릭스에 열려 있다”고 했고, 영화 제작자인 헬렌 에스타브룩은 “넷플릭스는 더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새로운 플랫폼이 영화와, 특히 작은 영화와 관객을 만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블랙팬서>(2018),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 등의 흥행으로 다양성 이슈가 뜨거운 할리우드 분위기를 감안할 때, 저평가된 시장을 발견하고 창작자의 비전을 존중하는 넷플릭스의 기조는 영화산업 전체에 좋은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앞으로 어떤 전략을 펼칠지는 미지수지만, 이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들은 영화계에 중요한 균열을 내기 시작했고, 영화는 더이상 예전과 같은 영화는 아닐 것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