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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과분한 동물들
김혜리 2018-12-12

*<베일리 어게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

폴 페이그 감독은 코미디 베이스의 장르 칵테일을 주조하는 재능 외에도 의상으로 인물의 핵심을 표현하는 특기가 있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는 그 눈부신 사례다. 패션 기업 홍보담당인 에밀리는 완벽한 남성용 스리피스 양복에 페도라를 쓰고 슬로모션으로 영화에 입장한다. 킬 힐과 회중시계, 검정 우산은 마무리 터치다. 영화 내내 에밀리는 여성적으로 변형된 바지 정장 대신 통 넉넉한 남성복 앙상블을 대범하게 소화한다. 속옷을 벗듯 가짜 소매와 칼라를 뜯어내는 에밀리의 섹시한 동작을 홀린 듯 바라보는 스테파니(안나 켄드릭)의 패션은 한편 ‘여학생’의 그것이다. 주요 아이템은 꽃 프린트, 방울 장식 니트, 무릎 위 길이 스커트와 귀여운 양말이다. 에밀리의 이미지가 ‘잡을 수 없는 여자’라면 스테파니의 이미지는 ‘흠 잡을 데 없는 여자’다. 그러나 둘 중 누가 ‘사람 잡는 여자’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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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 어게인>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 개는 한 영혼으로 5번의 생을 산다. 다른 종과 성별로 환생하되 번번이 미국에서 개로 태어난다. 영화의 원제는 <개의 목적>(A Dog’s Purpose)인데, 주인공이 처음으로 살아 있는 목적 비슷한 것을 깨달았던 두 번째 생에서 불린 이름이 ‘베일리’다(혼동을 피하기 위해 매번 바뀌는 주인공개의 이름은 베일리로 통일하기로 한다). 골든 리트리버 강아지 ‘나’는 팔려가던 길에 소년 이든에게 구조돼 베일리라는 이름을 얻고 단짝 친구로 뛰어놀며 빛나는 한때를 보내다가 청년으로 성장한 이든이 집을 떠나는 모습을 본다. 물론 개의 수명은 사람의 1/7 남짓이 고작이니 늙은 베일리와 바빠진 이든은 다시는 같이 캐치볼을 즐기지 못한다. 그럴 리 없지만 정말 반려견이 환생한다면 나와 함께 보낸 그에게 몇 번째인지 모를 삶을 의미있는 회차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았다.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돌아보면 환생 모티브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반려동물을 언젠가 앞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아프게 감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다시 태어날 것이며 심지어 다른 강아지의 외양으로 재회할 수 있다는 가정은 대단한 위안이다. 그러나 환생의 전제는, 인간 관객이 이 영화 속 개가 겪는 수난과 죽음의 무게를 일회적이며 언제든 회복 가능한 고통으로 가벼이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개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동명 소설을 각색할 때부터 <베일리 어게인>은 인간 중심 관점으로 변질될 위험이 큰 기획이었다. 개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 행위를 개의 눈으로 묘사하는 소설과 달리 영화는 개의 눈을 거치지 않고 관객 앞에 인간의 말과 행동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베일리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중립적 서술이 아니라 유머를 더하는 보조적 기능에 그친다. 동물영화로서 <베일리 어게인>의 한계는 ‘개의 목적’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 있으며 나아가 인간의 행복은 이성애 커플의 완성에 있다고 암시하는 서사적 설정에도 있다. 이든의 행복과 불행은 고교 시절 여자친구와 결합하느냐 마느냐의 여부에 달렸고 베일리는 시종 둘을 매개하고자 노력한다. 세 번째 생에서 셰퍼드 경찰견으로 태어난 베일리는 아내와 이별한 강력계 형사를 안타까워하며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어진 네 번째 생에서 웰시 코기 베일리의 보호자는 똑똑하고 혼자 지내기를 선호하는 대학생 마야인데, 영화는 이를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베일리와 다른 암컷 개, 그리고 그 보호자와 마야를 겹으로 짝짓는다. 인간 커플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만, 묘하게도 베일리의 2세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개와 반려인의 관계는 조금씩 속성을 달리하는데 <베일리 어게인>은 5번의 기회를 모두 “개는 사람의 외로움을 채우고 가족을 완성시키기는 데에 기여한다”라는 생각을 확인하는 데에 쓴다. 환생의 주체는 베일리인데 영화는 지난번 삶으로부터 배운 바를 통해 성장하는 개를 주목하기보다 매번 바뀌는 인간에게 개가 주는 도움에 집중한다. 원작 소설에는 (현실의 많은 반려인들이 그렇듯) 개의 좋은 동거인이 되기 위해 습관을 바꾸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인간이 등장하지만, 영화 <베일리 어게인>에서 노력은 다분히 일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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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이하 <그린델왈드의 범죄)의 약점을 요약하면 딱히 신비한 동물에 관한 이야기도 그린델왈드의 범죄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라는 데에 있다. 덧붙이자면 해리 포터 유니버스를 사랑하는 나는 기왕이면 5부작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가 후자보다는 전자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오리지널 시리즈가 ‘살아남은 아이’ 해리 포터와 볼드모트의 투쟁을 그린 서사시였던 만큼 새로운 연작은 횡적으로 확장해 대전쟁 바깥의 광활한 마법 세계, 다시 말해 영국 밖의 위저드 사회와 다른 종의 판타스틱한 존재들, 그리고 마법사와 마녀들의 일상 디테일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했다. 기대에 부합했던 <신비한 동물사전> 1편과 달리 <그린델왈드의 범죄>는 벌써부터 전쟁의 조짐으로 어지럽고 분주하다. 동물학자 뉴트(에디 레드메인)를 포함한 1편의 주인공 4인조는 주변으로 밀려나고, 알파 마법사 덤블도어(주드 로)와 그린델왈드(조니 뎁)의 대결로 가는 포석을 쌓느라 영화는 동분서주한다(플롯을 정리하는 주문(呪文)이 아쉬울 지경이다). 이러다가 선악 양쪽의 최고수 마법사가 벌이는 또 한번의 묵시록적 결투- 원작에 이미 연도와 결과도 공표돼 있는- 로 수렴되는 뻔한 여정에 나머지 3편의 영화를 쏟아넣지 않을까 섣부른 근심이 든다. 영국 평론가 마크 커모드는 지나치게 빨리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영화들에 ‘마이클 볼튼 신드롬’이라는 우스개 별명을 붙여준 바 있는데 <신비한 동물사전> 5부작도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1편에서 1920년대 뉴욕의 마법 세계를 매력적으로 구현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줬던 프로덕션 디자인도 2편에서 벌써 이야기가 호그와트로 돌아와버림으로써 본편과의 차별성이 너무 일찍 퇴색된 감이 있다.

애초 3부작 기획이 5부작으로 확장되면서 넓어진 스토리텔링의 공간을 메우느라 <그린델왈드의 범죄>는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여럿이 나눠 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런데도 주요 인물의 감정선을 다듬는 시간에는 인색하다. 예컨대 1편 마지막에서 꽤 장렬하게 산화했던 옵스큐리얼(마법사의 정체성을 억압한 나머지 옵스큐러스라는 극단적 파괴력을 내면에 품은 숙주) 크레덴스(에즈라 밀러)는 2편이 시작하자마자 살아남은 걸로 영화 안팎에 간단히 ‘통보’된다. 누구도 놀라거나 어떻게 그리 됐는지 반문하지 않는다. 모호한 감정을 내비치며 관계를 유보했던 뉴트와 티나(캐서린 워터스턴)는 2편으로 넘어오면 관객이 모르는 새에 오래된 커플이 된 것마냥 질투와 원망의 줄다리기를 벌인다. 대신 골수 팬들을 흥분시킬 다음 속편을 위한 복선과 이스터에그에는 적잖은 분량이 배정됐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문제의 돌을 만든 연금술사 니콜라스 플라멜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고, 그린델왈드가 크리던스에게 선물하는 엘더완드(마법 지팡이)로 덤블도어의 동생 아리아나와 크레덴스가 옵스큐러스에 의해 연결된다는 짐작이 가능해지는 식이다. 영화의 종장은 매우 긴 플래시백으로 리타 레스트레인지(조이 크래비츠) 가문의 비밀을 설명한다. 피날레에서 복잡한 우여곡절을 말로 설명하는 습관은 J. K. 롤링의 오랜 약점이다. 그러나 이미 원작 소설이 다수 관객에게 숙지돼 있었던 <해리 포터> 시리즈와 달리 <신비한 동물사전> 연작은 영화로 처음 이야기를 들려주는 차이가 있어 피로감이 더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관객은 플롯의 경위를 이해하기보다 이미 아는 이야기의 시각적 구현을 즐기려고 극장에 갔지만 원작과 영화에 익숙한 각색 작가 없이 J. K. 롤링이 곧장 시나리오를 쓰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는 기댈 곳이 없다.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부터 무려 6번째 <해리 포터> 영화를 연출했고 나머지 <신비한 동물사전> 연작도 담당한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 2부처럼 훌륭한 에피소드도 만들어낸 적이 있지만, 이제는 제작자이자 각본가까지 겸한 J. K. 롤링과 예술적인 긴장을 다잡아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부드럽고 내성적인 뉴트는 예외적인 성격의 영화 히어로로서 잠재력이 풍부한 캐릭터이고, 신비한 동물들도 막간의 눈요깃거리로만 활용되기에는 아까운 사연덩어리들이니까. 영화 제목을 잊지 말자.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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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는 마블 코믹스 역사 속 여러 평행 세계의 스파이더맨들이 한데 등장한다. 범죄계의 대부 킹핀이 만든 기계가 평행우주의 벽을 무너뜨린 탓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애니메이션답게 원본 코믹스의 양식미를 적극 활용한다. 미국 만화 특유의 말풍선과 스타카토 전개, 풍부한 메타 인용은 기본이다. 종과 젠더, 활동 시대가 서로 다른 애니메이션 거미인간들은 각기 속한 하위 장르와 그림체까지 그대로 끌고 들어와 관객에게 포만감을 준다. 1930년대 공황기에 속한 스파이더맨 누아르(니콜라스 케이지)는 흑백의 모습으로 무게를 잡고, 거미로봇과 DNA로 동기화돼 싸우는 아니메 소녀 페니 파커(키미코 글렌)는 동그란 눈동자를 굴리다가 괴력을 발휘한다. 돼지형 거미인간 스파이더햄(존 멀레이니)은 루니툰 캐릭터처럼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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