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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세리머니
김혜리 2019-01-09

<미스터 스마일>

<미스터 스마일>의 영화관 데이트 신은 마치 스크린의 전설 로버트 레드퍼드시시 스페이섹이 오붓하게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는 정경처럼 보인다. 다른 관객이 포함되지 않은 이 프레임에서 보듯,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포레스트(레드퍼드)와 쥬얼(스페이섹)이 조우하는 장면의 다수를, 한적하고 비현실적으로 연출했다. 두 사람만 두고 휑뎅그렁하게 화면을 비워내고 대화 안에도 넉넉한 여백을 둔 연출은, 관객이 목격하는 대화가 극중 사건인 동시에 두 사람의 스타 페르소나에 관한 코멘트로도 읽히도록 유도한다.

12/16

알폰소 쿠아론 기예르모 델 토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묶여 ‘스리 아미고’로 불린다. 이들은 단순히 국적으로 묶인 삼총사가 아니라 실제로 영화 만드는 과정을 공유하고 조언하며 때로 협업까지 하는 동지다. 그러나 <로마>의 시나리오에 관해 쿠아론은 델 토로와 이냐리투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영화만큼은 즉자적 기억과 직관이 지배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심지어 촬영 도중에 떠오른 본인의 즉흥적 아이디어도 배제했다. 같은 맥락에서 <로마>에는 감독이 의도한 영화사적 레퍼런스도 없다. 결과적으로 <로마>를 가득 채운 것은 흥미롭게도 우리가 이미 쿠아론의 전작에서 본 이미지들의 ‘본체’다. 메아리를 먼저 듣고 근원을 뒤늦게 만나는 형국이다. <이투마마>(2001)에는 테녹(디에고 루나)에게 샌드위치를 가져다주며 친근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있다. 훌리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좌파 운동권 누나의 시위를 돕기로 하고 차를 빌리는데, 누나는 <로마>에 나오는 1971년 코르푸스 크리스티 학살 현장에도 있었을 법한 젊은이다. 같은 영화 속 해변 피크닉 장면은 <로마>의 후반 여행 신과 포개진다. <로마>의 가족이 관람하는 <우주탈출>(1969)은 물론이고, 크리스마스에 우주복을 입고 뛰어노는 소년의 이미지 역시 <그래비티>(2013)의 태동을 보여준다. 해리 포터 팬이라면, 크람푸스의 탈을 벗고 노래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 속 베오울프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시위가 학살로 변한 아수라장을 뚫고 클레오가 아기를 낳으러 가는 대목은 <칠드런 오브 맨>(2006)의 군중 신을 자연히 연상시킨다. 이때 클레오는 피에타 상의 포즈로 주저앉아 도움을 호소하는 두 남녀를 스쳐간다. 나아가 <칠드런 오브 맨>에서 실현된 신생아 구조 내러티브는, 클레오와 아기를 돕지 못한 쿠아론 감독의 상상 속 소원 성취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까지 하게 된다.

<로마>에는 거대하고 중대한- 자신들이 그렇다고 믿는- 가치를 찾아 떠난 남자들과 그 뒤에 남아 아이들을 껴안고 있는 여자들이 있다. 소피아의 남편 안토니오는 가족보다 평생의 사랑을 선택하고 클레오의 애인 페르민은 무술이 상징하는 초월적 파워를 익혀 ‘큰일’을 하겠다고 애인의 임신을 부정하며 도망친다. (추정하건대 페르민은 CIA가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알바레스 정권 호위단 로스 알코네스의 일원이 된다.) 돌아보면 쿠아론은 지금까지 성적 환상, 세계의 구원, 초월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모험을 영화로 아름답게 그렸다. <로마>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하되 작게 줄이거나 가장자리로 밀어둔다. 이는 부정의 제스처와는 다르다. 다만 이번만큼은 정치운동가도 마법사도 창공의 육중한 비행기도 주인공이 아니다. 쿠아론은 모든 진보와 각성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것을 즉각적으로 체험하게 해주었던 노동의 손길을 환기시킨다. 땅바닥에서 시작한 <로마>는 올려다본 하늘의 이미지로 끝난다. 여행을 마친 클레오는 빨랫감을 들고 한발 한발 철제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사라진다. 소박한 승천이다. <로마>의 맺음말이 서구 문명의 폐허를 돌아본 T. S. 엘리엇의 긴 서사시 <황무지>의 마지막 구절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샨티 샨티 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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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점잖은 분이었어요.” “행복해 보였어요.” “뭐랄까, 스타일이 있었어요.”

연쇄 탈옥범이자 은행 강도인 포레스트 터커에 대한 목격자들의 진술이다. <미스터 스마일>의 모델은 감옥에서 19번 탈출하고 심한 해에는 연간 60회 절도를 저지른 미국의 실존 인물이다. 2003년 <뉴요커>의 기획 기사로 널리 알려진 포레스트는 총기로 위협하되 발포는 하지 않는 연쇄 은행 강도범이었다. “폭력은 아마추어의 징후다”라는 경구도 남겼다고 한다.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나아가 로버트 레드퍼드가 총을 직접 손에 쥔 숏을 이리저리 비켜간다. 대신 손가락으로 총모양을 흉내내어 쏘는 모습을 더없이 멋진 숏으로 강조한다. 요컨대 포레스트 터커는 총을 소품으로 쓰는 절도 퍼포먼스의 대가다. 단, 진짜 돈도 훔친다. <미스터 스마일>은 극중 첫 강도를 마친 포레스트가 자동차로 도주하던 중에 고장난 트럭을 손보는 여자를 돕기 위해 갓길에 서는 장면으로 영화 초반 주인공 캐릭터를 정립한다. 우리는 포레스트의 친절이 진짜 매너에서 나온 것인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한 위장술인지 판단할 수 없다. 아마 구분이 무의미할 것이다. 트럭 주인인 쥬얼은 홀로 농장을 돌보는 원숙하고 자유로운 여성인데, 포레스트는 이때부터 집착하지 않는 간헐적 구애를 이어간다. 무슨 지구를 도는 달인 양 이따금 온전한 얼굴을 보여주며.

포레스트 터커는 설령 법을 위반하더라도 입지전적 성공을 거둔 남성을 동경하는 미국 특유의 문화에 들어맞는 영웅으로 보인다. 반면 신중하고 우아한 그의 행동양식은 물리적 폭력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미국적 남성성과 동떨어져 있다. 포레스트와 딱 들어맞는 것은 다름 아닌 로버트 레드퍼드의 스크린 페르소나다. 우선 실제 포레스트는 레드퍼드와 닮은 푸른 눈의 백인 미남에 옷차림도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한다. 대중적 작품만 돌아봐도 <내일을 향해 쏴라>(1969), <스팅>(1973), <위대한 개츠비>(1974)에서 남자주인공으로서 레드퍼드의 카리스마는 쓸쓸함과 일말의 장난기를 두르고 있다. 나중에야 알았다지만, 로워리 감독은 <미스터 스마일>이 레드퍼드의 은퇴작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염두에 둔 것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범죄영화이면서도 오후 3시의 찻물처럼 느긋하게 끓는 <미스터 스마일>은, 필모그래피가 퇴적된 레드퍼드의 얼굴에, 소매와 옷깃을 가다듬는 손짓을 가까운 숏으로 오래 응시한다. 어떤 관객이라도 기억하는 70년대 영화 속 레드퍼드의 얼굴 하나는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로워리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던 중 찍은 <피터와 드래곤>(2016)에 레드퍼드를 캐스팅함으로써 일찌감치 리허설도 치렀다. 예를 들어 <미스터 스마일>의 자동차 추격전은 <피터와 드래곤>의 추격 신에서 유난히 즐거워하는 레드퍼드의 표정을 포착한 감독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미스터 스마일>의 관객은 내내 영화 안팎을 들락거리며 기인 포레스트 터커와 포레스트를 연기하는 레드퍼드, 스타 로버트 레드퍼드의 삼면경을 보게 된다. 포위망을 벗어날 가망이 없는 경우에도 반드시 마지막 도주를 감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포레스트의 성향은 범죄자로서 그의 특수한 정체성과도 어울린다. 적어도 <뉴요커> 기사와 <미스터 스마일>에 따르면 포레스트 터커는 돈이 필요하건 필요치 않건 간에 아티스트나 사제의 태도로 탈옥과 절도를 평생 계속한 인물이다. <미스터 스마일>은 평생 그가 감행한 탈옥을 몽타주로 보여주는데, 자유도 자유지만 어딘가 비슷한 작품은 두번 하기 싫어하는 공연 예술가의 고집이 보인다. 인생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낼지언정 스타일리시한 한우물만 파는 포레스트는 예술가들이 동일시하기 용이한 인물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보고 나서 틀어놓은 <바비칸 시네마> 팟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로워리는 포레스트에 공감한 대목을 “미래가 흐릿해도 버티는 끈기와 대책 없는 열정, 한 분야 외에 달리 취직할 재주는 전무한 처지”라고 웃으며 답하고 있다.

<범블비>

좋아요

헤일리 스테인펠드

2018년 12월의 할리우드 최고 스타는 단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스파이더 그웬과 <범블비>의 찰리로 연타석 홈런을 날린 헤일리 스테인펠드다. 목소리로만 연기해야 하므로, 혹은 파트너가 CG 거대 로봇이기에 공히 상상력을 요하는 두 영화에서도 특유의 또렷하고 생동감 넘치는 연기는 시들지 않는다. 뮤지션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스테인펠드의 스튜디오 레코딩 및 공연 경험이 모르긴 해도 연기에 도움이 됐을 법하다. 찰리가 범블비의 실체를 차고에서 처음 발견하는 시퀀스와 해변에서 벌이는 변신 훈련 장면, 스킨십의 순간들은 하도 감정이 그럴싸해 맞은편에서 있는 것이 실은 테니스공 내지 마스킹 테이프, 머리뿐인 모형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 능동성은 기본이고 유행을 선도하거나 거기 반항하는 데에 에너지를 허비하는 대신 자기 스타일에 집중하는 스테인펠드의 그웬과 찰리는 장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여성주인공의 기본형이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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