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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픽처스] <뷰티풀 데이즈> 윤재호 감독 - 살아남은 여성, 신파 없이 그리다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19-01-18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배우 이나영이 6년 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뷰티풀 데이즈>는 윤재호 감독이 탈북 여성의 목숨을 건 이주를 따라간 다큐멘터리 <마담B>(2016)와 한쌍을 이룬다. 그는 단편 <약속>(2010),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단편 부문에 초청된 <히치하이커>(2016), 장편다큐멘터리 <마담B> 등을 통해 시스템에서 소외된 약자들을 꾸준히 스크린에 옮겨온 감독이다. <뷰티풀 데이즈>가 요란하지 않고 진실한 까닭은 탈북민에 대한 감독의 오랜 관심이 집약된 덕분이기도 하다. 여기에 배우 이나영의 독보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영화적인 언어”를 고심한 연출의 장악력 또한 더욱 강해졌다. 윤재호 감독은 가족 관계의 비련을 통해 탈북 여성과 청년 세대를 바라보면서 “서로 물리고 물려 있는 느낌”을 진득한 이미지 속에 담아냈다.

-<뷰티풀 데이즈>라는 은유적인 제목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 꿋꿋이 삶을 긍정하거나 혹은 반어법처럼 들린다.

=제목은 편집하면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엄마>라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면서 작은 소품에서부터 캐릭터 표현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메타포를 신경 쓰게 됐다. 어느덧 제목도 은유적으로 가면 좋겠다 싶었다. ‘뷰티풀 데이즈’는 많이 열려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엔딩과도 닮았다. 종종 관객이 다시 영화가 시작될 것 같은 엔딩이라고도 얘기하더라.

-이나영 배우가 연기한 이름 없는 여성-엄마 캐릭터에 최대한 감상을 배제하려 한 느낌이다. 오랜 풍파를 겪고 굉장히 단단해진 얼굴을 보여준다.

=탈북민이 살아온 궤적을 살피다보니 자신의 감정을 쉽게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배우에게도 덤덤한 태도를 많이 요구했다. 억지로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진 않았다.

-탈북 여성의 경험을 서술하면서 장르적인 연출은 일부러 피하려 했나. 이를테면 밀입국 과정을 장르적으로 스릴 있게 구성하는 식의. 대신 개인의 감정과 가족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마담B>와 한쌍을 이룬다고 했을 때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서로 가지기 힘든 것들을 품고 있길 바랐다. 극영화이기에 더더욱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커다란 이야기를 위해 세밀한 상황에 집중하는 방식이 내가 늘 추구해온 방향성인 것 같다. 한편 어떤 아이러니를 체감하기도 했다. <마담B>에 담긴 것은 오롯한 현실 그 자체인데도 종종 너무 극적인 것 아니냐는 관객의 반응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극영화는 완전히 반대다. 현실에 가까울수록 개연성이 없다거나 너무 극적이라고 거부감을 느낀다.

-모자 관계를 중심으로 삼았다. 아들 젠첸(장동윤)의 입장에서 엄마의 삶을 바라본 이유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중요하다고 봤다. 우선 극중 대학생인 젠첸의 나이대가 인간이 자기 가족사를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첫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또 취재 당시에 탈북 과정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젠첸의 나이대인 친구들이 많았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나이였다. 그들을 하나의 가이드로 바라보고 싶었다. 엄마가 가리키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분단의 아픈 과거라면 아이들로서는 우선 그 과거를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는 고정돼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지금 세대들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의 조건이 바뀔 수 있다고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다.

-붉은 곱슬머리에 가죽 코트를 입은 이나영 배우가 풍기는 쓸쓸한 무드가 인상적이었다. 캐릭터의 외양을 스타일리시하게 잡았는데.

=탈북민이라면 꼭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탈북 여성은 꼭 전형적인 ‘아줌마’일 거라고 상상하는 경향도 있다. 무언가 모자라고 부족한 이미지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꾸고 싶었다. 붉은색을 주조로 매력적이고 강하고, 한편으론 냉정해 보이는 인물을 떠올렸다. 일부러 연령대도 조금 더 낮췄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긴 나이 스펙트럼을 다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찾았다.

-네온사인의 불빛을 비롯해 부분적으로 몽롱하고 초현실적인 조명을 극대화했다.

=인물 특유의 무드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사실주의를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상 언어만의 미학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때때로 인물들의 여정이 꿈처럼 아득하게 보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된장국이 정서적으로 중요한 소재다. 엄마의 음식을 대표하는 상징성 외에 또 다른 의미도 있을까.

=엄마의 소소한 음식이라는 느낌으로만 봐줘도 좋다. 최초 시나리오에서 된장국이라는 컨셉을 쓸 때는 보다 함축적인 생각들이 있었다. 집집마다 된장국이라 부르는 것들의 종류가 무수하지 않나.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섞어넣어도 된장만 풀면 된장찌개가 되니까. 수많은 인종, 가족, 공동체에 대해 질문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겠다고 봤다. 사실 나도 젠첸처럼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를 참 싫어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프랑스 생활을 하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14년 만에 다시 먹어봤더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없더라. 레시피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돌아온 나이고, 내가 바뀌자 내가 바라보는 세상도 바뀌었다.

● Review_ <뷰티풀 데이즈>의 이름 없는 엄마(이나영)는 탈북민이자 여성으로서의 이중고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이다. 중국에 잠시 정착했다가 타의에 의해 도망치듯 한국으로 넘어온 여성에게 어느 날 아들이라 자처하는 청년이 나타난다. 곧 죽음을 앞둔 아버지(오광록)에게 엄마의 사진을 받아들고 무작정 한국행을 결심한 조선족 대학생 젠첸(장동윤)이다. 영화는 첨예한 정치적 메시지나 탈북 여성이 처한 현실의 폭력에 주목하기보다는 모자를 중심으로 개인의 감정과 기억을 들여다본다. 사회적 비극이 만든 복잡한 가족사와 다중의 정체성, 그로부터 파생된 비련의 관계가 중심을 이룬다. 생존을 위해 이별을 택한 사람들. 그들이 다시 재회하고, 서로의 진실을 탐색해나가는 과정을 <뷰티풀 데이즈>는 신파적 연출 없이도 아름답게 포착한다. 선뜻 비밀을 내보이지 않는, 배우 이나영의 동요하지 않는 얼굴이 차곡차곡 쌓여 담담한 일기처럼 읽히는 영화다.

● 추천평_ 김소미 누구의 무엇도 아닌, 지금 여기 살아남은 여성 ★★★ / 이화정 ‘엄마’ 뒤에 가려진 탈북 여성의 비극 ★★★ / 황진미 여성 착취의 구조 속에서 '엄마와 창녀'의 이분법은 같잖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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