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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어둠속의 항해>
이다혜 사진 백종헌 2019-01-22

<어둠속의 항해> 진 리스 지음 / 최선령 옮김 / 창비 펴냄

고향인 서인도제도에서는 지배계급이었던 애나는 영국에서 하층계급으로 살아간다. 월터와 사랑에 빠진 애나는 서인도제도에서의 나날을 떠올리곤 한다. 월터에게서 버림받은 뒤 현실과 과거는 더욱 뒤섞인다. 남자에게서 버림받는다는 일은 하층계급의 여자에게는 생존이 걸린 재앙이나 다름없다.

“가끔은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 있는 듯하고 영국은 하룻밤 꿈처럼 느껴졌다. 어떤 때는 영국이 실제이고 그곳이 꿈이었는데, 나는 결코 그 둘을 제대로 끼워맞추지 못했다.” 이 문장을 진 리스의 소설 <어둠속의 항해>의 두 번째 페이지에서 읽었다. 진 리스가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즉 로체스터씨의 아내였던 버사 메이슨의 전사(前史)를 상상한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상상한 버사 메이슨은 <어둠속의 항해>의 주인공과도 닮아 보이고 작가 자신과도 무척 닮아 보인다. 실제로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어둠속의 항해>는, 소설 속 이야기가 끝난 후 짧은 시간 동안 초고가 완성되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의 경험- 16살에 영국으로 건너와 학교에서는 따돌림당하고, 아버지 사후 경제적 지원이 끊겨 코러스걸, 마네킹, 누드모델 등의 일을 하며 떠돌다 부유하고 나이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버림받고, 불법 낙태수술을 받다 죽을 고비를 넘긴- 을 글로 옮겨내고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기로에 선 책. 진 리스를 읽는 딜레마도 있다. 이 책 뒤표지에는 포드 매덕스 포드의 추천사가 인용됐는데, 포드는 리스의 남편이 네덜란드로 추방된 상황에서 만난 연인이었고, 포드는 리스의 소설을 교정해 게재되도록 돕고, 책의 서문을 썼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그만큼 어렵던 시절이었고, 리스의 재능은 리스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일은 막기 어렵다.

유령들

그 무렵은 모든 지나간 아름다운 날의 유령들이 보이는 그런 때였다. 술을 약간 마시고, 유리잔 뒤로 그간 존재한 적이 있는 모든 아름다운 날의 유령들을 본다. (“그래, 그건 나쁘지 않은데, 그런 거 들어본 적….”)(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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