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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픽처스] <뷰티풀 뱀파이어> 정은경 감독 - 헬조선에 사는 뱀파이어, 능청스러운 매력의 영화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9-01-25

뱀파이어물이야 어디 한두편이랴. 하지만 정은경 감독의 ‘뱀파이어’는 다르다. 일단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지만 타죽지 않는 뱀파이어. 비결은 UV차단지수 높은 선크림이다. 사람 잡는 흡혈에 나서는 대신 정육점에서 선지를 사서 마시는 ‘이성적’인 뱀파이어기도 하다. 서기 2018년 서울 망원동에서 메이크업 숍을 하며 치솟는 월세 대느라 급급한 500살 란(정연주)과 스무살 소년(송강)의 사랑을 그린 판타지 멜로. <뷰티풀 뱀파이어>는 동명의 웹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 홍보사와 미국 독립영화 배급사를 거쳐 합작 영화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베를린>(2013) 연출부 등 1999년부터 영화계에서 다양한 일을 해온 정은경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예측 불가의 오버 캐릭터, 뱀파이어 란의 매력에 빨려드는, 독특한 판타지 로맨스를 만날 수 있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확실한 장르의 컨벤션이 있다면, 그걸 가뿐히 변형한 ‘변종 뱀파이어물’이다.

=기존 뱀파이어물을 많이 봤다. 워낙 각양각색인데, 공통점은 대부분 오래 살아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는 점이다. 오래 산다고 반드시 부자일까? 오래 산다고 모두 부자가 될 수 없는 시대 아닌가. 그래서 월세 독촉을 받는 가난한 뱀파이어를 만들었다. 뱀파이어가 대부분 남성으로 각인되었다는 점에서 여성으로 바꾸었고, 기존의 것을 비틀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정교하게 새로운 법칙을 만들었다기보다 아이디어를 던지고,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활용했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뱀파이어가 지금 시대에 있다면, 그걸 내가 지금 다루는 이유는 뭘까. 제안을 받은 기획이지만, 연출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확실히 찾고자 노력했다.

-가령 뱀파이어가 성능 좋은 선크림을 발라 자외선을 차단해 낮에도 아무렇지 않게 활동할 수 있다는 설정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다.

=란이 바깥에 돌아다닐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해봤다. 그러다 작가님과 같이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 그냥 선크림 생각이 나더라. 나름 뿌듯했다. (웃음)

-망원동에서 메이크업 숍을 운영하며 월세에 시달리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지금 소상인들의 어려움을 디테일하게 반영한 설정이다. ‘헬조선’에 토착화된 뱀파이어랄까.

=망원동에서 4년째 살고 있는데, 그 짧은 기간에 없어지는 가게가 너무 많았다. 새 가게가 들어오고, 잘되면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겠다고 세입자를 내몬다는 사례를 많이 듣고 봤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모습이 여기서도 보이더라. 내 주변에도 월세, 취업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현실의 고민을 반영하고 싶었다.

-코믹하고 과장된 설정이나 제스처가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특유의 능청스러운 매력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정연주 배우의 활약이 컸다.

=연주씨만의 코믹한 템포가 있다. 평소 말할 때도 그런 독특한 면이 있는데 연기에 반영되는 것 같다. <아이 캔 스피크>(2017)에 공무원으로 출연했을 때도 출연 분량이 적어도 코믹한 매력을 확실히 인지시켰다. 란 역은 그런 템포와 감각이 몸에 밴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캐스팅했는데 아주 잘 어울렸다. 수위 조절은 너무 나갔다 싶으면 그만하는 방식이었다. (웃음) 스탭, 배우들과 촬영 전에는 적당선을 맞추자, 이 정도 톤으로 가자라고 하지만 막상 현장 나가면 달라지는 것들이 속출한다. 그래도 내가 생각한 범위 안에서 과하게 벗어나지 않도록 조율했다.

-송강은 영화를 본 관객 모두 빠져들 만큼 신선한 마스크로 관심을 받았다.

=‘소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자고 했고 보기에 ‘잘생긴 얼굴’을 찾았다. 배우들의 프로필을 넘기다 보니 단번에 눈에 띄더라. tvN 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MBC 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 등에 나왔는데 아직은 신인이다. 총 11일간 촬영했는데, 그 짧은 기간에도 경험이 더해지니 연기가 하루하루 더 좋아지는게 보이더라.

-웹드라마와 영화 버전이 동시에 진행됐다.

=<남한산성>(2017)을 제작한 싸이런픽쳐스에서 뱀파이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캐릭터로 웹드라마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72분 분량을 만들어 웹드라마는 7분씩 10부로 나누어 ‘옥수수’에 노출하고, 영화는 72분 분량에 쿠키 영상을 붙였다. 똑같이 찍고 같은 분량을 편집했는데, 편집의 호흡 차이로 다른 콘텐츠라는 느낌이 커지더라.

-웹드라마가 가진 자유로움이 영화에도 반영된 것 같다.

=시나리오 쓰면서 나도 그 생각을 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는 심오해야 한다는 강박도 좀 있었고, 왠지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하는 마음에 갇혀 있었다면, 이번엔 점잖은 척하지 않고 쓴 것 같다. 그 기분을 앞으로 다른 작품에도 많이 반영하고 싶다. 앞으로도 한 가지 플랫폼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매체를 경험하고 싶다.

-차기작 계획은.

=오랫동안 킬러로 살아온 여자와 아르바이트를 통해 불법을 저지르는 40대, 20대 여성의 이야기다. <델마와 루이스>(1991), <아가씨>(2016)처럼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다기보다 내가 여성이라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남자 캐릭터는 이미 너무 많이 나왔으니 특별히 내가 더 얹을 만한 것도 없는 것 같고. (웃음) 좀더 내공이 쌓이면 나중에는 <헤이트풀8>(2015) 같은 이야기의 여성 버전을 만들어보고 싶다.

● Review_ 뱀파이어도 서울에 산다면 ‘헬조선’을 피할 수 없다. 서울 망원동에서 메이크업 숍을 운영하는 란(정연주)은 무려 500년을 산 뱀파이어다. 하지만 그토록 오래 살고도 제 집, 제 가게 한채 없어 매일 건물주의 월세 독촉에 시달린다. 골머리를 앓던 중 그녀 앞에 집주인의 아들이 나타난다. 과거 그녀와 사랑했던 남자 진과 향기가 똑같은 20살 미소년(송강)의 등장으로 칙칙했던 그녀의 일상에도 설렘 가득, 로맨스가 시작된다.

<뷰티풀 뱀파이어>는 장르의 컨벤션 따위는 가볍게 비틀어버리는 ‘변종 뱀파이어물’이다. 흡혈하는 대신 단골 정육점에서 선지를 사먹고, 선크림만 바르면 대낮에도 활보할 수 있는 터라 독특한 패션센스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뱀파이어는 과장되고 코믹하지만 그 자체로 설득력과 매력이 충분한 캐릭터다. 란과 소년의 ‘환생’ 컨셉의 로맨스가 바탕인 판타지물이지만, 젠트리피케이션, 자영업자라는 생활의 냄새 가득한 소재, 란이 단골 정육점 주인(이용녀)과 가지는 여성적 연대 같은 판타지물에서 벗어난 공감할 만한 드라마적 요소가 가득하다. 10부작 웹드라마와 영화 버전이 동시에 기획되고 만들어진 작품으로, 영화 버전은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됐다.

● 추천평_ 김소미 생활력 강한 망원동 뱀파이어의 사랑스러움이 최대 무기 ★★☆ / 김현수 도시 빈민 뱀파이어의 탄생을 반기며 ★★★ / 이화정 같은 고충, 같은 감정, 낯설지 않은 친근한 뱀파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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