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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이한 감독 - 평범한 사람이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드라마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9-02-14

<증인>은 대형 로펌의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소녀 지우(김향기)를 만나 서로 소통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징글징글한 악인 대신 함께 손 맞잡고 싶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일깨우는 영화다. <완득이>(2011), <우아한 거짓말>(2013), <오빠생각>(2016) 등을 만든 이한 감독은 <증인>에서 다시 한번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내가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건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거다.” <증인>은 이한 감독의 그 믿음이 담긴 영화다.

-언론시사 및 일반시사의 반응이 좋다.

=준비할 땐 <증인>이 대중적인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모니터링 시사 때도 평점이 너무 높게 나와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웃음)

-우리 안의 착한 심성을 건드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제5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문지원 작가의 시나리오에서 어떤 가능성과 매력을 보았나.

=공모전 당시 심사위원이었는데 심사하며 본 시나리오 중 제일 좋았다. 사회에 부조리한 면도 많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많지만, 그럼에도 대다수 사람은 좋은 심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게 우리 사회를 유지해온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선에 치우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에 치우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 시대가 이끄는 대로 살아온 한 남자의 성장기를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증인>은 누군가와 통화하며 광화문거리를 걸어가는 순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 공간에서 영화를 시작한 이유가 있나.

=광화문광장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이지 않나. 태극기 집회도 열리고 촛불 집회도 열리고. 소규모 행사부터 대규모 문화행사까지 거의 매일 열린다. 다양한 민의가 모이는 곳이라 생각했고, 소통에 대해 말하는 이 영화에 이보다 어울리는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순호와 지우의 소통 과정이 중심이지만, 순호와 아버지(박근형), 순호와 수인(송윤아), 순호와 희중(이규형), 지우와 엄마(장영남) 등 다양한 관계망을 그린다. 또 그 관계성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 기본적으로 순호와 지우 이외의 주변 인물 묘사가 꼼꼼하다.

=사람이 나이 들수록 변하기 힘들고 큰 결심을 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릴 땐 영화 한편, 책 한권이 삶을 바꿔놓기 쉬운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그러기가 힘들다. 나이 들어 사람이 바뀌려면 결정적으로 고정관념을 깨줄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장르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에겐 캐릭터 하나하나가 무척 소중하다.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영화가 좋고, 캐릭터가 잘 살아야 영화도 산다고 생각한다. 관계를 맺음으로써 벌어지는 일들이 재밌다.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어긋나고 그래서 영원히 등을 돌린다 하더라도 거기서 뭔가를 느끼고 얻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러한 관계를 보여주는 게 다른 영화와 다른 <증인>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증인>에는 화려한 액션도 없고 대단한 특수효과도 없지만, 인물들이 관계를 맺음으로써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영화 속 여러 관계 중 특히 좋아하는 관계가 있다면.

=지우와 순호를 빼고 이야기하자면, 순호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영화처럼 실제 내 아버지도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다. 순호의 아버지처럼 살가운 분은 아니지만 내게 삶의 고비마다 특별한 조언을 해주셨다. ‘내 아버지의 모습을 반영해야지’ 한 건 아니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건 사실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대개 적대적인 경우가 많지 않나. 좋은 아버지의 모습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에서 아버지가 순호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도 처음엔 사람들의 반대가 많았다. 영화가 사건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 샛길로 빠지는 것 아니냐, 전통적인 시나리오 작법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너무 간지럽다 하는 얘기를 들었다. (웃음) 이 정도가 간지럽다니. 그만큼 한국영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다양하게 표현되지 못했구나 싶었다.

-법정 드라마로서 재미도 크고 법정 장면의 분량도 꽤 많다. 법정 장면을 연출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뭔가.

=리얼리티다. 우리나라에선 변호사가 법정에서 의뢰인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로 삼은 영화가 있는데, 알 파치노 주연의 <용감한 변호사: 저스티스>(1979)를 보고 ‘그래, 현실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증인>을 보고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울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법정 장면에서 참고한 영화가 또 있다면.

=모의 법정 장면은 시드니 루멧의 <심판>(1982)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주인공 지우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10대 소녀다. 장애를 가진 인물을 그리는 과정에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을 것 같다.

=편견 어린 시선으로 인물을 대상화하지 않는 건 기본이었고, 무엇보다 진짜처럼 보여야 했다. 과장하거나 영화적으로 이용하는 건 절대적으로 피했다. 촬영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를 많이 만나고 치료해온 천근아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 만남이 내 편견을 깨고 나를 자유롭게 했다. 자폐의 증상도, 자폐의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우를 특정한 실례로 접근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지우의 말이다. “엄마, 나는 증인이 되고 싶어요.”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건가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이런 대사들. 이런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표현할지가 관건이었을 것 같다.

=오승철 조명감독도 내게 계속 물었다. 그 장면을 어떻게 찍을지 너무 궁금하다고. 처음부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대사가 너무 좋았고, 그 장면 하나 때문에 이 영화 하는 거라더라. (웃음) 사실 이런 말은 현실에선 어색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나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하고 물어볼 수 있지 나이가 들면 그런 걸 묻지 않는다. 그런데 지우는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전부터 이 질문을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우라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성과 김향기는 물론이고 염혜란, 이규형, 박근형, 장영남 그리고 깜짝 캐스팅이라 할 수 있는 송윤아까지 캐스팅이 참 좋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증인> 같은 드라마 장르의 영화는 특히 그렇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중요한 이야기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기본 동력이랄 수 있다. 모든 감독이 그럴 테지만 배우 캐스팅에 신경을 많이 쓴다.

-관계와 소통이라는 주제를 다룬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이 주제를 앞으로도 계속 탐구할 생각인가.

=그렇다. 혼자 오래 있어본 사람은 안다. 혼자일 때 얼마나 외로운지. 혼자인 게 편할 수도 있지만, 혼자여서 좋은 것은 지속적이지 않은 것 같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누군가와 소통하면서 자기가 모르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감독으로서 그런 이야기들이 늘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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