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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 배우들을 주연으로 진정성을 더한 영화들

<가버나움>

2018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 현재 평단과 관객 모두의 호평을 받고 있는 <가버나움>. 부모를 고소한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그가 겪는 고통을 따라가며 레바논 빈민가의 현실을 가감 없이 꼬집었다.

놀라운 것은, 자인 알 라피아는 단 한 번도 연기를 해보지 않는 소년이라는 것. 실제 시리아 난민인 그는 길거리에서 배달 일을 하던 중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가버나움>에 출연하게 됐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그에 대해 “너무 영리하고 잠재력이 큰 아이. 그를 본 순간부터 자인 역을 맡을 운명”이라고 전했다. 또한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라힐 역) 등의 배우들도 연기 경험이 전무후무한 비전문 배우다.

그렇다면, <가버나움>처럼 비전문 배우들을 주연으로 호평받은 영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오히려 계산되지 않은 투박한 연기로 진정성을 더한 이들. 그들이 활약한 작품들을 모아봤다. 수많은 영화들 중 일곱 편만 선정했으며, 순서는 무관하다.

<로마>

얄리차 아파리시오 (클레오 역)

<로마>

최근 비전문 배우를 주연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는 2018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있다.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줬던 보모의 삶을 그려냈다. 그는 이렇듯 남다른 의미의 영화에서 보모 클레오 역으로 비전문 배우였던 얄리차 아파리시오를 캐스팅했다. 그녀는 연기는 물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얄리차 아파리시오는 묵묵히 고난을 감내하는 모습부터 감정이 폭발하는 부분까지, 다채롭고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단 한 번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백지상태이기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기억과 감정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처음 보는 낯선 배우는 관객들에게 배역 그 자체로 다가왔을 것이다. 놀라운 연기력을 자랑한 얄리차 파리시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그녀에 대해 “지금껏 작업한 배우 중 최고”라는 찬사를 하기도 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브리아 비나이트(핼리 역), 브루클린 프린스(무니 역)

<플로리다 프로젝트>

전작인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 <탠저린> 등에서도 비전문 배우들을 통해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던 션 베이커 감독. 그는 2018년 개봉한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이를 유지했다. 그 주인공은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와 핼리 역의 브리아 비나이트. 브루클린 프린스는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으며, 브리아 비나이트는 션 베이커 감독이 우연히 SNS를 통해 그녀를 본 후 직접 연락을 건네 합류하게 됐다.

두 배우는 집이 없이 모텔에서 생활하는 빈곤층 가정의 모녀를 연기했다. 꾸밈없는 천진난만함을 보여준 브루클린 프린스. 부서질 듯 불안정한 상태로 딸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 브리아 비나이트. 두 사람은 조금의 어색함 없이 쉽지 않은 역할을 소화했다.

션 베이커 감독은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세계적인 배우 윌렘 대포를 캐스팅한 이유도 밝혔다. 늘 사회 이면의 문제들을 다루었던 그는 “이렇게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윌렘 대포 같은 ‘스타’의 힘을 빌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가 왜 영화를 만들고, 어떻게 배우들과 호흡하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해피 아워>

타나카 사치에(아카리 역), 하즈키 키쿠치(사쿠라코 역), 마이코 미하라(푸미 역), 키와무라 리라(준 역)

<해피 아워>

최근 카라타 에리카 주연의 <아사코>로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로 오르며 일본을 이끌어갈 차세대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2015년, 무려 다섯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해피 아워>에서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네 친구가 스스로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네 주연 배우를 모두 비전문 배우로 섭외했다. 그는 “그들은 모두 ‘살아있는 괴로움’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영화 속 네 인물들은 이혼, 외도 등 제각각의 이유로 인생의 회의를 느낀다. 그들은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였나’,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런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낼 수 있는 이들을 찾고, 이에 맞춰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의 각본 역시 네 배우들에 맞춰서 완성된 것. 그 결과 <해피 아워>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네 주연배우가 공동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이례적인 쾌거를 달성했다.

<아무도 모른다>

야기라 유야(아키라 역)

<아무도 모른다>

비전문 배우를 주연으로 큰 호평을 받은 또 다른 일본 영화도 있다.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작 <아무도 모른다>다. 엄마에게 버려진 채 홀로 살아갔던 네 아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그중 첫째 아키라를 연기한 야기라 유야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발굴한 비전문 배우. 그는 12살의 나이에 오디션을 통해 <아무도 모른다>의 주연을 꿰찼다.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는 아키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 특히 초점을 잃은 듯 흐릿해 보이면서도, 무언가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듯한 묘한 눈빛은 몰입감과 탄식을 동시에 자아냈다. 야기라 유야는 특별한 대본도 없이, 그때그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지시하는 데로 연기를 했다고 한다. 즉흥적으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비범함이다.

첫 연기부터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랑한 야기라 유아는 <아무도 모른다>로 <올드보이>의 최민식 등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2004년 칸영화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칸영화제에서 수많은 영화들을 봤지만 남은 것은 이 소년의 표정뿐이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야기라 유아는 축구 선수와 배우를 고민하던 찰나, 이 상을 계기로 배우의 길을 확실히 정했다고 한다.

<시티 오브 갓>

알렉상드르 로드리게즈(로킷 역), 레안드로 피르미노(제 역) 등

<시티 오브 갓>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시티 오브 갓>. 직역하면 ‘신의 도시’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실제 도시, 파벨라는 역설적으로 범죄와 폭력이 끊이지 않는 ‘신이 버린 도시’다. 브라질 빈민가의 참혹한 현실을 다룬 이 영화는 파울로 린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탄생했다. 실제 파벨라에서 10년 넘게 유년기를 보낸 파올로 린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했다.

반면 감독인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브라질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상업광고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이다. 그는 소설을 처음 접한 뒤 파올로 린스를 찾아가 영화화를 제안했지만, 파벨라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런 그가 영화화를 위해 내건 조건이 “실제 파벨라 출신들을 캐스팅하겠다”였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파벨라를 잘 알았던 카티아 룬드를 공동 감독으로 섭외, 몇몇 주연들을 비롯해 지나치는 조연과 등장하는 수십 명의 아이들까지 파벨라 출신들로 캐스팅했다. 그리고 연습을 위해 파벨라의 일상을 다룬 단편영화 <황금의 문>을 제작, 이후 곧바로 <시티 오브 갓>을 제작했다. 실제 파벨라는 영화 촬영이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도시였기에 근처 다른 도시에서 촬영을 진행했지만, 폭력의 공포를 몸소 경험했던 배우들의 연기는 <시티 오브 갓>을 소름 끼치도록 생동감 넘치는 영화로 만들었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

살바토르 스트리아노(브루투스 역), 지오반니 아르쿠리(시저 역), 코시모 레가(카시우스 역) 등

<시저는 죽어야 한다>

과연 그들은 ‘연기’를 한 것일까. 타비아니 형제 감독의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비전문 배우를 뛰어넘어 전에 없었던 파격적인 시도를 강행한 작품이다. 영화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수감자들이 교화 프로그램으로 연극을 하는 과정을 그렸다. 타비아니 형제 감옥은 이를 위해 실제 교도소에서 촬영을 진행, 배우들 역시 그 안의 수감자들로 캐스팅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아닌, 계획된 동선과 각본이 존재하는 영화다. 한 마디로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스스로를 연기하는 것.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형식이다.

거기에 마치 액자식 구성처럼 ‘연극’을 집어넣었다. 타비아니 형제 감독은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은 흑백으로, 후반부 실제 연극을 이후에는 컬러로 구성했다. 감옥 안에 갇힌 수감자들의 암담한 현실과, 무대 위에서만큼은 생기를 느끼는 배우들의 모습이 확실히 대비됐던 부분이다.

실제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카시우스 역의 코시모 레가. 영화의 마지막, 그는 공연을 마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때 그의 표정과 대사에서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만큼의 생생한 감정이 전해졌다. 그와 함께, 배우들이 어떤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는지에 대한 의문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을 영화다.

<자전거 도둑>

람베르토 마지오라니(안토니오 역), 엔조 스타이올라(브루노 역) 등

<자전거 도둑>

마지막은 앞선 영화들의 선배 격 영화인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1948)이다. 비전문 배우 기용, 세트가 아닌 실존 공간에서의 촬영 등으로 사실주의를 추구한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초석을 다진 작품.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황폐해진 이탈리아 사회 속 궁핍한 소시민들의 삶을 영화로 담았다. <구두닦이>(1946)에서는 가난한 두 소년의 비극적인 일상을 그렸으며, 뒤이어 제작한 <자전거 도둑>에서는 초점을 아들과 아버지로 옮겼다.

<자전거 도둑>의 내용은 단순하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안토니오(람베르도 마지오)가 유일한 생계 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고, 이를 찾기 위해 아들 브루노(엔조 스타이올라)와 길거리를 배회하는 이야기. 영화는 그 과정에서 여러 인간 군상 등을 보여주며 모진 상황 속, 사람들의 상실과 우울을 그려냈다.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준 람베르도 마지오라니는 실제 노동자였으며, 엔조 스타이올라도 거리의 부랑아였다. 또한 주인공 이외 대부분의 조연, 단역들도 실제 인부 등 비전문 배우로 구성했으며 촬영도 주로 길거리에서 이뤄졌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미국의 한 제작자에게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면 투자를 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단칼에 거절,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자전거 도둑>은 연극처럼 과장된 톤과 연기가 주를 이루던 당시 할리우드 영화들과는 정반대되는 분위기로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며 영화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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