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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회자정리
김혜리 2019-02-20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하 <더 페이버릿>)의 역사적 배경은 스페인 왕위계승을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전쟁은 ‘소문’으로만 존재한다. 카메라는 러닝타임 대부분을 앤 여왕의 궁정 실내에 머무른다. 광각렌즈, 어안렌즈를 서슴없이 쓰는 카메라는, 인물을 내리누르고 있는 천장을 프레임에 담는다. 전작 <킬링 디어>(2017)에서도 구사했던 낮은 앵글이 한층 노골적으로 강조된다. 게다가 <더 페이버릿>의 천장은 디자인이 화려하고 층고가 높아 위압적이다. 흔히 낮은 앵글 숏은 <시민 케인>이 보여주었듯 인물에 위엄을 더해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더 페이버릿>의 그것은 배우를 불안하고 기괴하게 잡는다. 어디로 가든 프레임 위쪽에 드리워져 있는 천장은, 이전투구를 벌이는 권력자들을 왜소하고 무상하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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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멜라 린든 트래버스의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에는 다음과 같은 묘사가 있다. “그러자 메리 포핀스가 마이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이클은 알았다. 누가 감히 메리 포핀스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떼를 쓸 수 있단 말인가? 메리 포핀스한테는 무서우면서도 신나는, 이상하고 특별한 뭔가가 있었다.” 어린 내게 메리 포핀스의 매혹은, 많은 동화가 분명히 긋는 선악의 경계를 시시하게 지워버리는 수수께끼 같은 어른이라는 점이었다. 유모 메리 포핀스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틀림없이 제공하지만 거울 보기를 제일 좋아하는 나르시시스트이기도 하다. 메리는 걸핏하면 콧방귀를 뀌며 남의 말을 일축하고, 영원히 떠나지 말라는 마이클의 사랑스러운 부탁을 “한번만 더 물으면 경찰을 부를 거야”라고 쌀쌀맞게 윽박지른다. 마이클처럼 나도, 메리 포핀스가 무섭고도 좋았다. 트래버스에 의하면, 상냥함과 선함은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적당한 때가 오기 전에는 말하지 않고 넣어두는 편이 나은 진실도 있고, 언제까지나 함께하는 것만이 관계의 최선이 아니었다. 서론이 긴 까닭은, 많은 사람에게 인생 영화이며 나 역시 많은 곡을 따라 부를 수 있는 뮤지컬 <메리 포핀스>(1964)가 남긴 유일한 위화감이 메리 포핀스의 캐스팅이기 때문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줄리 앤드루스의 4옥타브 소프라노는 천사가 부럽지 않지만, 나는 아무래도 머릿속에 그려온 퉁명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메리 포핀스의 상에, 마리아 수녀(<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친절한 얼굴을 포갤 수 없었던 것이다. 거꾸로, 54년 만에 나온 속편 <메리 포핀스 리턴즈>가 주는 제일 큰 만족은 에밀리 블런트의 캐스팅이다. 까다롭고 허영스럽고 쌀쌀맞은 표정의 그가 풀 먹인 앞치마를 매고 아이들을 재촉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메리 포핀스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배우가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에밀리 블런트는 메리 포핀스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줄리 앤드루스의 연기를 복습하지 않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으며, 줄리 앤드루스는 관객의 주의가 에밀리 블런트에게 집중되도록 카메오 출연을 고사했다고 전해진다. (짐작하건대 제작진이 줄리 앤드루스를 섭외했다면 안젤라 랜스베리가 연기한 풍선 장수 역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 우여곡절이 어찌 됐건 잘된 결과다. 연속된 이야기로 설정된 2편에서 다름 아닌 원조 메리 포핀스가 다른 캐릭터로 등장한다면 ‘메리 포핀스 유니버스’에 금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에밀리 블런트는 공치사를 절대 하지 않는 오리지널 캐릭터의 면모를 정확히 표현한다. 아이들에게 환상적인 모험을 선사한 다음이면 메리 포핀스는 어김없이 시치미를 뗀다. 감탄과 감사를 연발하는 아이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서 씻으러 가!”라는 통박을 면치 못한다. 이는 현실의 여성처럼 입체적인 동시에 돌보는 이로서는 이상형에 가까운 메리 포핀스의 특성을 드러낸다. 감사를 질색하는 그는 완벽한 보살핌과 행복을 주면서도, 아무 보답도 심지어 애정도 바라지 않는 존재다. 현실의 부모들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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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도 54년 만에 나온 속편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장고 끝에 든 소극적인 수다. 원작 위에 트레이싱 페이퍼를 놓고 조심스럽게 선을 덧그린 것 같은 각본이다. 인물들은 여전히 런던 벚나무 거리 17번지에 살고 있고 아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았고 옆집 이웃조차 그대로다. 1930년대 불황기가 배경인 이번 영화에서 마이클(벤 위쇼)은 1년 전 여읜 아내를 애도하는 삼남매의 아버지다. 어린 남매들은 집안에 떠도는 슬픔과 곤궁에 짓눌려 조숙하다. 화가의 꿈을 접고 아버지가 다닌 은행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마이클에게 집을 압류하겠다는 경고장이 날아들고 가족의 안위는 사라진 주식 증서를 찾느냐 여부에 걸리게 된다. 꿈을 잃은 어른과 보살피는 손길이 필요한 집에 전지전능한 해결사 메리 포핀스가 동풍을 타고 날아든다. 이렇다 할 서브플롯과 캐릭터의 변화 여정이 없는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주식 증서만 발견되면 언제든 막을 내려도 괜찮은 이야기다. 뮤지컬 세트피스들이 나열식으로 연결되는 구성은 1964년작도 마찬가지지만, 첫 영화에는 완고한 은행가 뱅크스씨의 변모라는 숨은 줄거리가 있었다. 작가 트래버스가 애초에 메리 포핀스를 창조한 동기가 아버지가 남긴 상처라는 사실은 에마 톰슨 주연의 <세이빙 MR. 뱅크스>(2013)가 상세히 설명한 바 있다. 반면 속편의 아버지 마이클은 영화가 시작될 때도 화가가 되고픈 회사원이고 끝날 때도 비슷한 사람이다. 사라진 주식 증서의 미스터리는 영화에 긴장을 더해야 마땅하지만, 실제로는 마지막 장에서 뜬금없이 은퇴한 은행장(딕 반 다이크)이 기계신처럼 나타나서 상황을 정리해버린다. 1편에서 그래도 뮤지컬영화에서 치밀한 서사를 구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으므로, 노래와 춤의 판타지 시퀀스들이 독창적이라면 이것은 결정적 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롭 마셜 감독이 참여한 시나리오는 성공한 1편의 목차를 거의 그대로 변주하는 데에 만족한다. 깨진 도자기 속으로 들어가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어울리는 로열 덜튼 뮤직홀 시퀀스는, 같은 기법으로 연출된 1편의 유원지 모험의 다른 버전이다. 2편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괴짜 사촌은, 웃음을 못 참아 공중에 떠오르는 1편의 위그 아저씨와 비슷한 곤경에 처해 있다. 오리지널 영화에서 연이 하늘로 날아오른다면 2편에는 풍선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결정적으로, 베테랑 마크 샤이먼이 작곡을 맡고 린마누엘 미란다가 퍼포먼스의 중심을 잡았지만 2편의 노래 중에는 셔먼 형제가 작곡한 1편의 <A Spoonful of Sugar> <Chim-Chim-Cheree>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만큼 귀에 달라붙는 선율을 가진 곡이 없다. (2편을 첫 메리 포핀스 영화로 접하고 수십번 반복 감상하는 어린이 관객의 의견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Trip a Little Light Fantastic>의 기술적으로 화려한 군무는 롭 마셜이 <시카고>(2002)를 만든 연출자임을 상기시키지만 짧은 호흡의 촬영과 편집이 오히려 배우들의 기량에 감탄할 겨를을 빼앗는다.

<드래곤 길들이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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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의 춤

1편부터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자문을 받은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의 백미는, CG 애니메이션 특유의 자유로운 시점을 백분 활용한 비행 장면이었다. <드래곤 길들이기3>에도 오로라를 병풍 삼아 드래곤들이 창공을 나는 스펙터클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3편의 하이라이트는 땅에 발 디딘 두 마리 용이 직접 접촉 없이 조심스럽게 끌고 가는 팬터마임이다. 히컵과 투슬리스는 영화의 중심 커플이지만, 투슬리스는 인간 세계에서 본성을 완전히 구현할 수 없다. 히컵을 사랑하는 투슬리스를 용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존재는, 희게 빛나는 나이트 퓨리 종의 드래곤 라이트 퓨리다. 서툰 투슬리스는 라이트 퓨리 주위를 맴돌며 온몸으로 관심과 호의의 시그널을 보낸다. 손짓을 대신하는 날개와 꼬리, 기분을 감추지 못하는 쫑긋한 귀, 활짝 열린 커다란 눈과 입을 모두 동원해 두 드래곤은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10년 전 1편에서 소년 히컵과 어린 투슬리스가 최초로 교감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감회에 젖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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