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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트라이앵글
김혜리 2019-02-27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사코>

오사카의 대학생 아사코(가라타 에리카)는 <자아와 타자들>이라는 사진전에서 마주친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바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처럼 사라지고 2년 후 도쿄에서 생활하던 아사코는 바쿠와 똑같은 외모, 판이한 성격을 가진 회사원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발견한다. <아사코>에서 바쿠와의 연애를 그린 초반은 순정만화 같은 컷으로 이뤄져 있다. 둘은 만나자마자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입을 맞추고,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시트를 뒤집어쓴 채 키스한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그리는 연애의 정경은 너무도 환상적인 나머지 상투성을 넘어 기묘한 불안을 자아낸다. 세월이 흘러 돌연 과거가 살아 돌아왔을 때 아사코는 근본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것은 두개의 사랑인가, 하나의 사랑인가? 과거의 아사코와 현재의 아사코는 같은 사람인가?

02/06

2019 시상식 시즌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하 <더 페이버릿>)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작품상과 감독상뿐 아니라 연기상 부문에서 각광받고 있다. 올리비아 콜먼, 에마 스톤, 레이첼 바이스가 다음주에 열리는 오스카상을 포함해 여러 시상식에서 주·조연 연기상 후보로 지명받았고, 트리오에게 가렸지만 토리당 수장 할리 역의 니콜라스 홀트도 많은 평자가 특별 언급했다. 지금까지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 속 배우들은 마리오네트처럼 보이곤 했다. <송곳니>(2009),<알프스>(2011), 그리고 도가 낮아지긴 했으나 영어로 찍은 영화 <더 랍스터>(2015), <킬링 디어>(2017)의 인물들은 인간이라기보다 인공지능 로봇 같은 무감동한 말투를 구사하곤 한다. 나아가 란티모스는 대사보다 몸- 스포츠나 춤, 수화의 규율에 억지로 맞추는 어색한 육체- 을 통해 이야기와 캐릭터를 캐리커처화하길 즐겼다. 자신이 연극계 출신임에도 배우의 역할 해석을 그다지 바라지 않는 연출자로 보였다. 그러나 <더 페이버릿>은 충격적일 만큼 배우들에게 큰 권한을 준다. 야심이 일차적 동력인 인물 말보로 공작부인 사라 처칠(레이첼 바이스)과 애비게일 힐(에마 스톤)에게서도 정념을 발견할 수 있고, 앤 여왕(올리비아 콜먼)은 <송곳니> 이후 란티모스 영화에서 처음 보는, 연민을 부르는 인물이다.

물론 <더 페이버릿>은 온전히 ‘란티모스 장르’의 톤과 매너 안에 있다. 인간과 그들이 이룬 사회에 희망적 요소는 별로 없고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댄스 신이 있고 시대착오적 대사가 있고 희한하게 동물을 활용한다. (이번에는 오리와 토끼가 수고했고 오소리가 의문의 1패를 당했다.) 한명의 디자이너가 꾸준히 만드는 란티모스 영화의 포스터는 은연중에 그의 작품을 일종의 연작으로 브랜딩한다. 동시에 <더 페이버릿>은 예상보다 훨씬 사실적인 코스튬 드라마다. 시대와 배경을 불문하고 기존 란티모스 영화는 SF로 느껴졌다. 가혹한 내적 법칙이 다스리는 폐쇄된 세계를 설정하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수난을 다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페이버릿>은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실제 군주와 두 총신의 관계에 초현실적 설정을 보태지 않았다. 모든 전작의 각본을 쓴 감독 본인과 에프티미스 필리푸가 작가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기인할 터다. 대신 란티모스는 조금씩 핀트가 어긋난 디테일로 현실감을 교란하며 역사를 리믹스한다. 야당 당수가 유치한 사내아이처럼 하녀를 밀어 넘어뜨릴 때, 귀족이 가발만 걸친 나체로 희희낙락하며 (슬로모션으로) 무화과 세례를 받을 때, 구애의 의식이 격투기로 변할 때 관객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번에도 란티모스 월드에 들어왔음을 확인한다. 덧붙이자면 <더 페이버릿>은 란티모스 영화로는 드물게 정상적인 섹스를 묘사한 작품이기도 하다. <송곳니>에는 독재적 가부장이 강제한 근친상간이 나오고 <킬링 디어>에서는 전신마취 흉내가 전희로 동원되고, 생사여탈권을 쥔 남편의 환심을 사려는 섹스가 등장한다. <더 랍스터>나 <킬링 디어> 등에서 섹스는 남성호르몬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요법처럼 그려진다. <더 페이버릿>에도 애비게일이 결혼 첫날밤을 멀티태스킹으로 ‘때우는’ 장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삼각관계의 세 주인공은 성인끼리 동의 아래 쾌감을 얻는 성행위를 나눈다. 1702년 잉글랜드 궁정에서는 모든 것이, 아주 조금 더 자연스럽다.

02/07

비교적 사실적인 대화와 액션을 보완(?)하는 요소는 촬영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비롯한 켄 로치 영화들, 존 매클린의 <슬로우 웨스트>, 무엇보다 앤드리아 아놀드 감독의 시그니처 4:3 비율의 화면(<레드 로드> <피쉬 탱크>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을 구현해온 로비 라이언 촬영감독은 울트라 와이드 6mm 렌즈를 포함한 광각렌즈를 실내와 야외를 가리지 않고 썼고, 때로는 광각의 빠른 패닝까지 과감히 구사했다. 결과적으로 <더 페이버릿>의 화면은 높은 천장과 바닥을 포함한 광활한 궁정 공간과 그것을 채운 왕실과 귀족의 넘쳐나는 소유물을 프레임 안에 ‘우그러뜨려’ 눌러 담는다. 이는 화려한 부를 향한 경탄을 부르는 동시에 사물에 압도적으로 포위된 인간들의 왜소함을 부각한다. <더 페이버릿>의 시대 상황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고 토리당과 휘그당의 의원들은 국민의 빈곤과 전황의 다급함을 놓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전쟁은 극중에서 ‘소문’으로만 존재할 뿐 한번도 이미지로 재현되지 않는다. 정작 독점적 부의 전시장이자 전장(戰場)은 궁정의 실내다. 가장자리가 왜곡되는 짧은 초점의 이미지는 상류층의 소우주를 어항처럼 보이게도 한다. 그들은 수많은 군인과 국민의 생명과 생존을 손에 쥐고 있지만,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제 몸을 담근 물속에서 유영할 뿐이다. 당파를 초월해 오리 경주와 과일 던지기로 무료함을 달래는 귀족들의 시간은 유독 고속 촬영으로 느리게 재현돼, 현실과 유리된 몽롱한 생활 감각을 짓궂게 강조한다.

샌디 포웰의 의상도 고증하되 리믹스하는 영화 전체 스타일을 완성한다. 복식은 18세기 초에서 가져왔지만 색상을 제한하고 현대적 소재를 도입했다. 하늘하늘한 레이스 대신 플라스틱과 가죽,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세 주역의 옷과 장신구는 쉽게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 무장이다. 장면마다 다른 색 옷을 무한히 갈아입고 나오는 여느 사극과 달리, <더 페이버릿>의 여자들은 정해진 몇벌의 옷을 목적에 따라 입고 같은 옷을 다시 입기도 한다. 컬러는 거의 코드화됐다. 붉은색과 푸른색, 흰 가발과 검은 가발이 양당 의원을 구분하고, 권력을 가진 여왕과 두 여자는 블랙과 화이트를 조합한 옷을 입는다. 그리하여 바둑판무늬와 격자무늬 바닥에 선 인물들은 체스의 말을, 궁정은 체스판을 닮아간다. 퀸이 있고, 나이트도 있다. 이야기의 주변부를 서성이는 남성 캐릭터들은 폰인 셈이다. 잃어버린 자식을 상징하는 토끼를 애지중지하고, 신경증을 일으키는 앤 여왕은 급기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당장 저 자의 목을 베어라!”라고 외치는 카드의 여왕을 소환하고 만다. (다음에 계속)

<더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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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발표 전야 존경받는 작가 조셉 캐슬먼(조너선 프라이스)은 어린아이 같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반평생 그의 사생활과 집필 과정을 보살펴온 아내 조안(글렌 클로스)은 남편을 다독인다. 드디어 스톡홀름에서 전화가 걸려오자 조안은 다른 방의 수화기를 들고 동시에 통화 내용을 듣는다(휴대전화가 없는 1990년대다). 수상 통보와 남편의 들뜬 대답을 듣고 있는 조안의 클로즈업은 단 하나의 숏으로 부부가 겪은 세월을 몽타주한다. 단정한 조안의 표정 아래로 흘러가는 기쁨과 안도, 희미한 경멸과 씁쓸함은 과거 회상 신의 설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캐슬먼 부부가 함께한 시간이 어떤 것이었는지 직감하게 만든다. 상을 타러 떠난 스톡홀름 여행에서도 조안은 내내 남편의 코트를 받아 들고 약과 셔츠를 챙기며 주변부에 머무른다. 그러나 관객의 시선은 내내 조셉의 언행이 아니라 그것에 무언의 코멘트를 다는 조안의 리액션에 못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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