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SKY 캐슬> 배우 김서형, "난 배우로서 매력이 있다"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19-03-07

그 사회의 분위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존재들이 있는데, 특히 배우 김서형은 흥미로운 지표다. 그와 관련한 기사에 심심찮게 보이는 “할리우드에서 태어났으면 더 활약했을 것”이라는 네티즌의 반응은 그럴싸한 추정이다. 과거 한국 미디어가 고분고분하고 소극적인 여성상에 호감을 보일수록, 주도권을 쥐는 쪽이 어울리는 그는 드라마 조연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기점으로 쉽게 굽히지 않는 그의 단단한 이미지가 ‘카리스마 있는 악인’ 역할에 자주 소환되기도 했었다. 최근 KBS2 <연예가중계>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내의 유혹> 이후 나도 이제 주연을 하고 광고를 찍을까 생각했지만 3개월 동안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SKY 캐슬>이 이렇게 분위기를 타고 있지만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그냥 생각을 안 하고 싶다”고 고백한 것 역시 강한 여성을 향한 세간의 편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 안팎에서 할 말은 정확히 하고 자신의 능력을 숨기지 않는 여성이 전보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면,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별을 구분짓지 않는 다양성”의 중요한 일례가 될 것이다. 김서형과의 만남이 <SKY 캐슬>에 대한 소회를 넘어 업계 전반에 대한 다각적인 이야기로 이어진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 <기황후> 등에서 이른바 카리스마 있는 악역으로 구분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영화 <>(2014)에서 단아한 이미지의 여성을, <엄마가 뭐길래>에서 시트콤 연기를 한 적도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SKY 캐슬>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이 전작과 비슷한 선택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는 고객의 자녀를 서울 의대에 보내기 위해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텐데.

=타이틀로 단순하게 쓸 수 있는 표현은 ‘카리스마 있는 센 캐릭터’ 같은 쪽이긴 한데, 이런 수식어가 붙거나 누군가 비슷비슷한 역을 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다. 대신 고민한 건 이런 부분이다. 배우들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다. 나 역시 자신을 무너뜨렸다가 일으켜 세우는 과정의 어려움을 안다. 내가 어떻게 아프고 힘들지 예상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SKY 캐슬>을 고사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면 전작과 캐릭터가 겹친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전작과 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데 제안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가령 단막극에서 그 에너지를 푸는 식으로. 개인적으로는 단편영화를 찍는 것 같아서 오히려 단막극을 선호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선택받지 못할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찾아가며 갈증을 해소하다 보니 나름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굵직한 작품만 본 분들은 내가 카리스마 있는 센 캐릭터만 연기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인터뷰할 때마다 <>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웨딩 세레모니>(2012) 같은 초단편영화도 했고, 김영하 작가의 단편을 영화로 만든 <소설, 영화와 만나다>(2013)의 <번개와 춤을> 에피소드에서도 독특한 캐릭터을 연기했다. 내가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았다면 <SKY 캐슬>의 김주영처럼 어려운 캐릭터가 풍족하게 나오지 못했을 거다.

-그럼에도 김주영은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다. 어떻게 캐릭터와 친해졌나.

=아직 미혼이지만 주변에서 보는 것들, 데뷔 이후 생각해본 적 있으니 김주영 역시 가정이 있었던 엄마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다만 나와 김주영이 가진 열등감은 좀 다르다. 나는 패배감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김주영이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구체적인 과거사는 대본이 나오기 전에는 몰랐다. 나와 다른 맥락을 가진 캐릭터를 상상을 통해 만들어갔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여유로운 점도 있었다. 다 알아도 좋을 때가 있지만, 알지 못하고 연기하는 게 편할 때도 있다.

-의외다. 당연히 뒤의 내용을 알고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딸 케이에게 줄 카레를 만들면서 약을 타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어떤 내용이 나올지 모르니까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늘어질 수가 없는 거지. 대본 나올 때까지는 나가서 차 한잔하며 쉬고 싶어도 불안해서 집 밖을 못 나갔다. 전개를 궁금해하면서 기다린 만큼 에너지도 더 많이 모아 놓을 수 있었다. 계속 상상하는 쪽이 연기를 만들어내기에는 더 좋았던 것 같다. 쫑파티 하는 날 작가님을 만났는데 내가 한번쯤 연락할 줄 알았다더라. 사실 18~19회 때는 감당이 좀 안 됐다. 어느 선까지 터뜨려야 할지 연기의 완급 조절이 힘들었다. 난 끝물에 더 많이 헤맨 거 같다.

-<SKY 캐슬>은 10대 청소년의 연애 감정을 국가기밀 전하듯 다루는 드라마다. 그런 대사 톤이 몹시 생소하면서 극에 확 몰입되게 하더라.

=김주영도 엄마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졌으니 다른 엄마들과 비슷한 말투로 해볼까도 생각해봤는데, 최대한 심각해져야 내가 이 엄마들을 이끄는 인물로 보일 수 있겠더라. 어쨌든 고액을 받는 여자라 내가 나타났을 때 엄마들이 긴장하게 만들어야 했다. 현실에 있는 입시 코디네이터지만 비현실적인 모습이 있어야 특색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엄마와 만나는 게 아니라 주로 한서진(염정아) 하고만 마주치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갔다. 혼자 대사를 연습해보니 원래 대사가 사극 톤이 아닌데도 사극 톤처럼 됐다. 나 혼자 심각하게 연기해도 되는 걸까 고민했고, 사실 처음에는 나도 현장에서 좀 웃었다. (웃음) 근데 1~2회 방송을 보고 난 뒤 알겠더라. ‘200% 해주고 있으니 날 믿고 가달라’는 감독님 말을 신뢰해도 되겠다고. 그래서 더 밀고 나갔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검은 터틀넥을 입은 스타일링이 화제가 됐다.

=원래 두 가지 시안이 있었다. 지금의 결과물 말고 엄마들처럼 화려하게 꾸미는 것도 생각해봤다. 감독님이 그래도 다른 엄마들과 비교가 됐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금처럼 가게 됐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사 톤을 생각할 때, 올백에 검은 옷을 입고 연기를 아주 딱딱하게 하니까 얼굴만 동동 뜬 것처럼 보여서 표정이 더 잘 보이더라. 심각한 대사를 계속하는데 머리카락 한올 흐트러졌다고 신경 쓰는 것보다야 올백으로 묶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비슷한 시청률과 화제성을 거둔 작품으로 스타가 된 남자배우들과 비교할 때 중년 여자배우를 그만큼 스타로 만들어주는 사회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단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아내의 유혹>과 <꽃보다 남자> 이후 배우들의 행보를 비교해보자.

=남자배우에 비해 여자배우의 파급력이 적지 않느냐는 얘긴데. 하…. (한참 한숨) 그거는 뭐 그렇다. 그런데 이건 배우와 나눌 이야기는 아니다. 배우들도 직시하고 있지만 우리 입으로 나아져야 한다고 말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배우가 아니라 제작자, 감독, 투자자들에게 던질 질문이고, 그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그래도 콘텐츠 제작 시장이 좀더 나아질 거라고, 그렇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신인 발굴, 남성 중심의 콘텐츠 탈피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경우가 많지 않더라.

=그러니 배우는 더 할 말이 없지. 대중은 미국·영국·유럽 드라마도 보면서 계속 눈이 높아지고 있고, 콘텐츠는 뒤꽁무니를 따라가고 있다. 예전에는 콘텐츠가 선도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된 거다. 그렇게 대중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콘텐츠 시장이 쫓아가는데, 옛날처럼 먼저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하지 않나. 70, 80년대에는 유지인·정윤희·장미희 등 여배우 트로이카가 있었고, 아마 그때는 남자배우 트로이카는 왜 없느냐는 말이 나왔을 거다. 사실 남자냐 여자냐,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를 뭐 그렇게 자꾸 구분짓고 따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14년 전 <씨네21>과 인터뷰에서도 퀴어영화 얘기를 하고 남녀를 구분짓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 치마를 입어야 하는 역할이 나오면 여자가 한다. 그런데 남자는 치마를 입으라면 입나? 여자는 바지도 입는다. 치마, 바지를 다 소화한다. 그럼 여자의 영역이 더 넓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여자들끼리 모여 여성 중심 영화를 하자고 얘기할 게 아니라 다양성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소신 발언을 한다고 여성 중심 작품에 대한 질문이 많이 들어오는데 그 자체도 구분짓는 거다. 내가 여자니까 반드시 여성 중심의 영화를 해야 하나? 난 내가 안 해본 역할을 하고 싶다. 게다가 난 예전부터 사회적으로 직위와 명예가 있는 역할들을 많이 했다. <SKY 캐슬>이 여성 중심의 드라마라면 <아내의 유혹>도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치면 난 여자 이야기를, 심지어 남자들이 할 법한 역할들을 남자들 안에서도 쭉 해온 거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여성 중심 이야기를 못하다가 <SKY 캐슬>로 처음 경험한 건 아니다. 또 전세계적으로 여성 중심 콘텐츠를 만드는 게 붐인 건 알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에서도 여성 영화인들이 성 평등을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비슷한 것을 복제한다는 생각도 든다. <악녀>(2017)가 나오고, 그 이후에 여자가 무찌르고 다니는 비슷한 액션영화가 나오더라. 그 안에서도 다양해져야 하고, 전체 콘텐츠가 다양해져야 한다. 난 퀴어든 스릴러 멜로든 액션이든 다양한 기회를 얻고 싶다.

-인연이 있는 제작진의 작품에 다시 출연하는 데에는 좀 적극적인가.

=친하다고 해서 일 좀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실 제작자들이 여러 배우와 작업해봐야 한다고 본다. 여러 배우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작업을 하다 보면 새로운 배우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지 않나. 한국영화계가 다 남자들 얘기처럼 보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 근본적으로는 이런 문제가 있다. 익숙하고 빨리 돈을 벌게 해주고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려하다 보니 자본 논리에 의해 편한 사람들을 쓴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리는 건 배우가 아니고 감독이 항상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1994년 KBS 공채 탤런트 출신이다. 그런데 필모그래피를 보면 지상파 공채 출신인 것에 비해서는 TV에 덜 나온 것 같다.

=공채 탤런트로 뽑히면 단역부터 시작해서 감독님들이 오라면 오고 연기하라면 연기를 해야 했다. 근데 그런 걸 좀 거부한 편이었다. 속으로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지, 라고 생각하고. (웃음) 그래서 처음 방송국 들어왔을 때 뒤에서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들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물론 그렇게 여러 작품을 경험하며 공부하는 게 맞고, 그렇게 출연한 작품도 있지만 사람을 장난감처럼 대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왜 어른들은 사람을 소모품처럼 막 대하는 걸까 싶었던 거다. 아무리 내가 어려도 처음부터 반말하고, “너 저기 서”, “여기 서”라고 말하고. 사실 그런 행태가 지금도 있다. 나이 드신 보조출연자들 불러서 반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을 하기 조심스럽지만, 그분들을 챙겨드리고 싶고,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영화 정보 프로그램 <접속! 무비월드> MC를 맡은 지 한달 만에 일방적으로 하차 통보를 받았을 때 출연을 거부한 적도 있다. 이렇듯 할 말은 적극적으로 하는 행보를 보였는데, 한국에서는, 특히 방송계에서는 여자가 당당하게 나오면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다. 요즘엔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지만.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당당한 모습에 반응이 아주 좋다.

=약속한 게 있는데 안 지키니까, 당신들 멋대로 할거면 나도 안 간다고 나온 거다. 물론 이런 태도 때문에 손해를 본 적도 있지만, 그게 싫으면 내가 바뀌어야 하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나. 인터뷰에서는 배우로서 질문을 받았을 때 소신껏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평상시 김서형으로 돌아가면 굳이 소신 발언을 열심히 하거나 싸움으로 번질 만큼의 액션을 취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러면 좀 피곤하지. (웃음) 물론 일상생활에서 부당한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는 않지만.

-스스로가 매력 있다고 말하는 애티튜드도 멋져 보인다. 겸손이 미덕이라며,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난 배우로서 매력이 있다. 내 자랑하며 사는 시대인데, 일로 인터뷰할 때는 내 자랑을 해야 팔리는 거 아닐까. 내가 연기를 잘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캐릭터를 만나고 연기를 할 때는 자책도 많이 한다. 모든 배우가 열심히 하고 있고, 나도 그럴 뿐이다. 그런데 김서형은 매력 있는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매력일까?) 예능 프로그램인 <아는 형님>에서 보여드리지 않았나. 그게 내 매력이다.

-<아내의 유혹> O.S.T <용서 못해> 록 버전이나 <>의 엔딩곡 <Late Spring>을 직접 불렀다. <아는 형님>에서는 노래방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혹시 <라라랜드>(2016)나 <맘마미아!>(2008) 같은 뮤지컬영화에 나오고 싶은 생각도 있나.

=너무 땡큐 하지~. (웃음) 그런 영화를 만들고 날 캐스팅한다고 하면 너무 좋지. 나이 들어 <맘마미아!>의 메릴 스트립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하면 배우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거다. 어느 순간 한국에서 그런 영화가 만들어질 때 내가 계속 연기를 하고 있다면, 나에게도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