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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설경구 - 단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9-03-12

중식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항상 바지런을 떨어야 하고, 언제나 아픈 아들의 손발이 되는 남자다.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며 고단하게 사는 그에게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아들 부남은 삶의 이유다. 자신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아들이 어느 날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단서를 찾아 나선다. 중식을 연기한 설경구는 <우상>이 “책을 읽자마자 출연을 결심할 만큼 최근 읽은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가슴이 뛴 작품”이라고 말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처음에는 이야기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러프하게 읽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 서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 이야기가 되게 치밀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여운도 오래 남았고. 책장을 덮자마자 곧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다 보니 사고 친 자식을 둔 명회(한석규)보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중식에게 더 마음이 갔다.

=명회가 냉정하고 차가운 인물이라면 중식은 아들을 막 잃고 감정이 확 올라온 상태에서 이야기에 등장한다. 영화 마케팅을 하는 입장에선 중식을 사고로 잃은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는 인물이라고 소개하지만 정작 중식이 처한 상황을 보면 그가 진실을 찾아가는 건지, 아니면 그에게 닥친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는 건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명회나 련화(천우희)와 달리 중식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따라 리액션을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답답한 면도 없지 않다.

-중식에게 우상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부남인가.

=그는 맹목적으로 자신의 핏줄을 지키려고 하지만, 한편으로 중식에게 우상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중식은 되게 수동적인 인물이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 없지만 종국에는 중식이 진리 하나를 깨우친다. 내가 아팠구나, 병이 있었구나 하는. 중식, 명회, 련화 세 인물 중 유일하게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중식이다.

-중식이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단서를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평범한 사람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일의 연속이라 마치 달걀로 바위치기 같다. 그 과정에서 중식이 무척 외로웠을 것 같다.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 셋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다. 사건 해결에 별 도움은 안 되지만 변호사나 형사 같은 조력자가 있는 중식보다 중국에서 밀입국한 탓에 고립된 생활을 해온 련화가 특히 외로웠을 것 같다. 얘기한 대로 중식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권력을 가진 명회를 이길 수는 없다. 이 영화를 계급 문제로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중식과 부남의 머리카락이 모두 노란색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감독님의 아이디어였는데, 중식이 혹여 부남을 잃어버렸을 때 머리카락이 노란색이면 찾기 수월할 거라고 생각해 아들과 함께 탈색했을 것이다. 노란색 머리카락은 중식의 진한 부성애를 상징한다. 또 중식이라는 이름은 조식, 중식, 석식 할 때 그 중식이다. 아침을 챙겨 먹을 여유는 없고, 점심을 배만 채우듯 허겁지겁 먹는 삶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남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아들이 유부남이 되었으면 하는 중식의 바람을 담아 나온 것이다. 이름으로 둘의 관계와 삶이 설명되지 않나.

-처음으로 한석규와 작업한다는 사실이 촬영 전부터 화제가 됐다.

=(한)석규 선배와 이제야 인연이 닿았다. 한 작품을 함께한다는 건 보통 인연이 아니다. 아쉬운 건 이 영화가 선배와 붙어서 관계가 발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해자의 부모와 피해자의 부모로 만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관계다. 어쨌거나 한석규라는 존재가 이 작품에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하다.

-현장에서 이수진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쉽게 해결되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어 무척 피곤했다. 감독님이 같은 장면이라도 똑같이 찍길 원하지 않았다.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며 찍었는데 촬영을 거듭해도 어떤 감정이 맞는지 잘 알 수 없는 장면이 많아 어려웠다.

-촬영 전 이수진 감독이 넉달 동안 집에 가지 말라고 했다던데 진짜 집에 안 갔나. (웃음)

=한석규 선배나 (천)우희와 함께 붙는 장면이 많지 않아 내 분량을 몰아서 찍고 나면 한동안 촬영이 없다. 한번은 한달가량 일이 없으니 내상이 생기더라. (웃음) ‘이런 스케줄에 어떻게 집에 안 가?’ 그러고 집에 가버렸다. (웃음)

-<생일>에서도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 나온다. <우상>과 <생일>(4월 3일 개봉)이 2주 간격으로 맞붙는데.

=내일(3월 6일) 또 여기 <씨네21> 스튜디오에 <생일> 표지 찍으러 와야 하니 미치고 환장하겠다. (웃음) <생일>에서 맡은 아버지 얘기는 내일 자세하게 하기로 하고. 두 영화가 연달아 개봉하니 마치 한 영화 같다. 제목은 ‘우리 우상의 생일’. (웃음) 마침 제목도 나란히 두 글자고. 쌍끌이 흥행을 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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