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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시나리오작가③] 배세영 작가 - 관객이 누구 하나와는 공감할 수 있도록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9-03-20

<완벽한 타인> <극한직업> 배세영 작가

배세영 작가는 최근 들어 자신을 찾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수원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인터뷰하러 서울로 나온 김에 미팅도 잡았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 비수기 시장을 견인했던 <완벽한 타인>과 1600만명을 동원해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극한직업>이 연달아 흥행한 덕분에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그다. <극한직업>이 극장에 걸린 동안 <각본인> <빅딜> <깊은 밤을 날아서> 등 세편의 각본을 썼다니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었다.

충무로에서 그는 죽어가는 캐릭터와 밋밋한 대사를 살려내는 명의로 소문이 자자하다. <극한직업>을 제작한 김성환 어바웃필름 대표가 문충일 작가가 쓴 초고의 각색을 배 작가에게 요청한 것도 그래서다. 고 반장(류승룡)과 영호(이동휘) 두 형사가 사건을 주도적으로 끌어가고, 마 형사(진선규), 장 형사(이하늬) 같은 주변인물이 둘을 방해하거나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초고가, 마약반 형사 다섯명이 끈끈한 팀플레이를 선보이며 마약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지금의 영화로 바뀐 건 배 작가의 심폐소생술 덕이다. “이들의 위장 수사를 케이퍼무비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웃음) 악역이든 작은 역할이든 갑자기 나타나서 말 한마디 툭 던지고 사라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은 캐릭터라도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극한직업>은 지질한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소동을 벌이다가 나중에 그들의 숨겨진 능력이 <어벤져스>처럼 퍼져나갈 때 관객에게 통쾌감을 주고 싶었다”는 게 배 작가의 설명이다.

영화 개봉 전에 이미 유행어가 된 명대사,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경찰서장(김의성)에게 깨지는 상황에서 고 반장이 갑자기 걸려온 배달 전화를 받고 말하는 영업 멘트다. “심각한 상황에서 진지한 대사들이 오갈 때 누군가가 그 분위기를 풀어주지 않으면 오글거려서 못참는 성격이다. 고 반장이 ‘지금 치킨이나 튀길 때야’라고 화를 내다가도 정작 배달전화가 오면 영업 멘트를 꺼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좋아한다.”

캐릭터를 개성 있게, 대사를 맛깔나게 살리는 그의 글쓰기 재능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찌감치 감지됐다. 그는 담임 교사의 관심을 받고 싶어 ‘엄마가 집을 나갔다’거나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 같은 내용의 거짓말을 지어내 일기장에 썼다. 일기 내용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연기(?)까지 했다. 가령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깔끔한 옷차림을 일부러 흩뜨리거나 자신을 걱정하는 선생님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창밖을 쓸쓸히 쳐다봤다. “맹랑한 아이였다. (웃음)” 소설 같은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란 담임 교사는 그를 혼내기는커녕 “이 정도로 사람을 속일 수 있는 글이면 작가를 해야 한다”라며 4학년 때 그를 문예반에 넣어주었다. 문예반 활동이 작가 배세영의 출발인 셈이다. 문예반에서 처음 썼던 시가 교육부가 그해 발간하는 시집에 실렸고, 이후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인간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글을 썼던 동기들과 달리 그는 대사가 많은 재미있는 소설을 썼다. 학교 사람들로부터 “칠락팔락하고 깊이가 없는 글”이라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벽에 수그리고 앉아 발톱만 깎는 글은 못 쓰겠더라. 오히려 발톱을 깎다가 벽에서 갑자기 요정이 튀어나와 그를 따라 신비로운 세계로 여행 가는 이야기를 썼”다. 당시 그가 재미있는 글을 즐겨 쓴 건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지낸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부모님이 학교 성적이 좋은 나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모 집으로 보냈다. 이모가 잘 챙겨주었지만 부모님이 그리웠고, 집이 그리울 때마다 글을 썼다.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썼고, 그 글을 친구들에게 보여준 뒤 그들이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고 만족해했다.” 될성부른 시나리오작가는 떡잎부터 남달랐다.

배 작가가 시나리오작가로 발을 들이게 된 건 장진 감독의 영화 <기막힌 사내들>(1998)을 보면서다. “100번 넘게 봤다. 나중에 비디오테이프를 샀다. 대사를 줄줄 외울 만큼 좋아서 미칠 것 같더라. (웃음)” 그는 당시 썼던 시나리오를 들고 장진 감독을 찾아갔다. 장진 감독이 그에게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일해라”라고 제안하면서 그는 장진 감독의 소속 작가로 7년을 함께 일했다. 그때 기획해서 쓴 작품 중 하나가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다. 텔레토비라는 아동 교육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활용해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한 코너였다. 이 코너는 우연한 계기로 기획됐다. “당시 정당들이 당 대표를 뽑던 시기였다. 남동생이 TV를 보다가 당마다 각기 다른 색을 보고 ‘뭐야, 텔레토비야?’라고 말했는데 즉각작으로 ‘이거다’ 싶었다.” 매일 정치 이슈를 따라잡아야 하고, 텔레토비 캐릭터 4명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했던 <여의도 텔레토비>는 배 작가에게 좋은 훈련이 됐다. “매일 정치 뉴스를 빼놓지 않고 봤고, 방송 직전까지 더 좋은 대사가 없는지 찾았으며, 좋은 대사가 떠오르면 새벽까지 PD와 통화하며 대본에 넣으려고 했다.”

역도부 소녀 6명의 성장기를 그린 <킹콩을 들다>, 바람난 네 남녀의 읽히고설킨 관계를 다룬 <바람 바람 바람>, 40대 중년 부부 세쌍의 민낯과 위선을 그려낸 <완벽한 타인>, 마약반 형사 다섯명의 위장 수사를 다룬 <극한직업> 등 배세영 작가가 쓴 영화는 상당수가 여러 인물들이 한꺼번에 나와 서사를 전개시키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은 사건은 거의 다 나온 것 같다.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마다 대처 방식이 다르지 않나. 새로운 이야기는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제작자들이 내게 각본을 맡기는 것도 그걸 기대하기 때문 아닌가 싶다”는 게 배 작가의 얘기다. 그는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는 비결을 꺼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완벽한 타인>은 관객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때 집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 관객을 지루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게 관건이었다. 관객을 이야기 내내 집중시키기 위해 모든 캐릭터를 분명하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됐다.”

육아를 하고 있는 ‘워킹맘’ 배세영 작가는 부지런하다. 천명관 작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감독 곽경택)를 각색하고, JTBC 드라마 대본도 쓴다. <극한직업>의 어마어마한 흥행이 시나리오작가로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코미디영화가 다시 많은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내 반갑다. <완벽한 타인>과 <극한직업>이 연달아 흥행한 덕에 많은 사람들이 시나리오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것 같다. 고료만 받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작가로서 영화 흥행에 기여한 만큼 보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 같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시나리오_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 어린 마츠코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노래를 부르는데 이에 무척 공감됐다. 나 또한 부모님과 떨어져 살 때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큰 소리로 동요 <고향땅>을 불렀다. 노래를 부른 뒤 앉아서 시를 썼다. 그때 느꼈던 그리움이 글을 쓰게 한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이 허할 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고 한번 운 뒤 글을 쓴다. 또 시나리오작가로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1997)다.”

● 시나리오 작업할 때 습관이나 챙기는 물건_ “쓰기 전에 시나리오 첫장부터 읽어서 내려간다. 가령 18신까지 썼으면 19신부터 쓰는 게 아니라 1신부터 다시 읽으며 19신까지 간다. 시나리오 뒷부분을 쓸 때도 첫장부터 읽으면서 고치고 또 고친다. 퇴고를 동시에 하는 셈이다. 그때 대사는 소리 내 읽는데 입에 잘 붙을 때까지 고친다.”

● 필모그래피 2019 <극한직업> 각색 2018 <완벽한 타인> 각본 2018 <원더풀 고스트> 각색 2017 <바람 바람 바람> 각본 2014 <우리는 형제입니다> 각본 2012 <미쓰GO> 각색 2012 <미나문방구> 각본 2011 <적과의 동침> 각본 2010 <된장> 각색 2009 <킹콩을 들다> 각본 2007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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