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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와이프>, 그녀를 응원만 할 수는 없는 이유

도전보다는 순응하기

차가운 금속 표면을 연상시키는 냉혈한적 인상과 굳은 입매, 본심을 파악하기 어려운 깊고 푸른 눈. 페미니즘적 비주류 영화에 가까운 <더 와이프>를 비롯한 <파라다이스 로드>(1997), <앨버트 놉스>(2011)부터 상업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조차 글렌 클로스는 대개 인간, 좁게는 여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비인간적 인격으로 등장해왔다. <더 와이프>는 글렌 클로스의 배우적 페르소나를 활용한 영화다. 세간에선 아무래도 영화가 그녀의 재능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 중평인 듯하다. 작품에서 그녀는 들끓는 정념을 표정으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대작가의 아내이자 속내가 궁금한 여성 조안 역을 맡았다.

그림자 없는 조명이나 침실과 홀 등의 실내 공간은 마치 고전 스웨덴영화의 차분한 실내극을 연상시킨다. 실버와 민트를 중심으로 한 색조는 노작가와 그의 아내의 백발과 조응하며 부드러운 정조를 만들어낸다. 사실 <더 와이프>는 플롯 구성에 있어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전형적 드라마다. 무대화나 촬영에 공들인 영화라기보다 글렌 클로스나 조너선 프라이스 같은 탁월한 배우들의 재능에 기댄 영화인 셈이다. 과용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부분에 영리하게 활용한 인물 클로즈업 장면들은 글렌 클로스의 연기 역사에 인상적인 순간을 남긴다.

섹스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플롯

“애처롭다고? 그 말의 어원이 연민(pathos)인데 그 말은 에로스(eros)와 연관되지.” 노벨 문학상 수상 여부를 통보할 전화가 걸려올 새벽, 조셉 캐슬먼(조너선 프라이스)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응석을 부리기도 하고 과자를 먹기도 한다. 기어이 그는 긴장감을 풀기 위해 아내에게 성관계를 조르고 아내가 애처롭게 받아주자 남편은 이에 대한 어휘 풀이를 한다.

아내 조안(글렌 클로스)은 자신의 눈을 가리고 남편이 이끄는 전희에 이끌려 환상 속으로 빠져들고자 노력하는데, 얼핏 그녀는 성적 흥분을 ‘연기’하고 있는 듯 보인다. 관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환상과 연기를 동원한 오프닝 장면은 이후 영화를 암시하고 있다. 부부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 아내 조안에게는 공허와 결핍을 보완할 환상, 상대를 안심시킬 연기와 자족적 자기암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조안에게 그 환상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간극을 보여주기 위해 플래시백을 활용한다. 남편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되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순간 조안의 내부에서는 어떠한 균열이 시작된다. 관객은 수상자 선정 전화를 받는 두 부부의 통화를 교차 편집해 보여줄 때 미세하게 변화하는 글렌 클로스의 표정을 통해 이를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작가부부의 1992년 현재와 과거 문예창작 교수와 학생으로 만났던 1958년 과거를 오가며 구성된다. 잔잔하며 금욕적이고 완벽하게 통제된 조화 속에 있는 것 같던 조안은 내적 방황을 끝내 폭발하지 못한 채 고요히 끓다 수면 아래로 진정되는 듯 보인다. 영화는 암시들(단것을 즐겨 먹는 조셉의 나쁜 식습관, 심장과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경유하여 끝내 스톡홀름 호텔방에서 조셉이 사망한 후 조안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끝난다.

메두사가 되기를 거부한 여성이 도달한 환멸

“여성의 대담한 문제를 사람들은 못 견뎌요.” 플래시백으로 제시된 회상 장면 중 작품 낭독회에서 만난 여성 작가가 소설가 지망생인 젊은 조안에게 이렇게 말하며 소설을 쓰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서가에 놓인, 아무도 읽은 적 없는 여성작가의 책 페이지를 넘기며 달라붙은 페이지들이 내는 소리를 들려준다. 1950년대 그리고 이전의 여성 문학가들의 참담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신에 대한 경멸 속에 억류된 채 자신의 능력에 수치심을 가져보지 않은 여성이 누가 있겠는가. 엘렌 식수스는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공격적 선언과도 같던 <메두사의 웃음>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인 조안은 엘렌 식수스가 호명했던 여성적 글쓰기의 주체, 그러니까 이성/로고스/능동성 중심주의의 남성적 문화에 코웃음치는 메두사와 같은 전복적 글쓰기의 여성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여주인공 조안을 명백한 반란과 전복의 주체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균열적이며 자기모순적인 충동들의 조합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과거 플래시백 장면에서 조안은 여성으로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문단의 분위기에 수긍했다. 가부장적이며 자기도취적인 남성 교수 조셉의 인격에 대해 알면서도 불륜으로 시작한 관계를 이후 40년간의 결혼 생활로 이어왔다. 재능이 부족한 남편을 도와 처음에는 합리적인 논평자였다가 차차 그를 대리하는 그림자 저자가 되었다. 남편의 무질서함과 아이다운 일탈을 조율하며, 자신 내면의 굳건한 균형감각과 문장의 재능을 활용해서 안(가정)과 밖(문단)의 평온을 유지한다는 것. 이는 남편과 사회의 강요였던가? 오히려 이는 남편의 이름을 통해 성공하는 것도 일종의 자아실현이라는 기만에 빠졌던 것, 그러니까 도전하기보다 순응하기를 택한 결과였다. 실제 영광의 주인공이어야 할 그녀는 그저 타인들에게 고통받는 작가의 아내일 뿐이며, 자신에게 돌아오는 보상이란 고작 노벨상위원회에서 수상자 배우자에게 제공하는 “쇼핑과 뷰티 트리트먼트”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환멸뿐이다.

<더 와이프>는 세계적 작가 조셉이 어떻게 강박적으로 바람을 피우며 아내와 주변인들을 기만한 도취적 세계 속에서 자신의 괴물 같은 이름을 키워왔는지를 폭로하는 반전 영화이기 이전에, 이 과정을 고요히 내조했던 여성이 궁극적으로 자기 환멸에 도달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과거 플래시백 장면에서 조셉의 (데이트 신청이 아닌) 베이비시터 제안을 수긍했을 때부터 조안은 남성과 여성, 교수와 학생, 작가와 뮤즈라는 위계적 도식을 수긍해버린 것이다. 조안이 영화 속 자신의 직업을 “킹메이커”라 한 것 역시 이러한 수긍에 대한 서글픈 자기호명이다. 영화는 불편하고 억압된 진실의 장막을 설핏 열었을 뿐 위험한 시도는 하지 않는다. 폭로나 고백도, 반성도 보상도 없이 영화는 조안의 새로운 삶을 암시하며 끝난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안은 노트의 새로운 페이지를 펼쳤지만 동시에 위대한 작가의 아내 자리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새출발을 응원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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