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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충분하다! 배우 한 명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영화들

독특한 마케팅으로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지난 2월 사전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개봉미정’이라는 이름으로 시사를 개최했던 <더 길티>다. 호기심을 자극한 영화는 관람객들의 호평 아래 제목을 공개, 3월27일 개봉을 확정했다.

그러나 <더 길티>의 진짜 신선함은 그 형식에 있었다. 긴급신고센터에서 근무 중인 아스게르(야곱 세데르그렌)의 납치 사건 해결을 그린 영화는 단 한 장소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게다가 주연 배우도 단 한 명. 마치 연극의 한 종류인 ‘1인극’ 같은 형태다. 날 선 음향으로 빈틈을 메운 것도 크지만 야곱 세데르그렌은 절제된 연기로 불안정한 심리를 표현,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렇다면 <더 길티>처럼 배우 한 명이 극 전체를 끌고 갔던 영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사례를 모아봤다.

<더 길티>

인내와 성찰 <127시간>

<127 시간>

첫 번째는 등산가 아론 랜스턴의 실화를 그린 대니 보일 감독의 <127시간>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낙석 사고로 바위에 팔이 끼여 그랜드 캐니언에 갇히게 된 아론(제임스 프랭코)의 탈출 과정이다. 심지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재미를 가중시켜줄 극적 요소도 거의 추가하지 않았다.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이를 놓치는 주인공’ 등의 전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127시간>은 아론이 느꼈을 심리와 생각들에 초점을 맞췄다.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는 당황, 절망, 분노 등 수많은 감정들이 스쳐간다. 이와 함께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는 부분까지, 대니 보일 감독과 제임스 프랭코는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의 여러 모습들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오히려 다른 캐릭터들이 아론 못지않은 비중으로 등장했다면 집중이 깨졌을 작품이다.

유사한 설정의 영화로는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갇히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캐스트 어웨이>, 화성에 갇히게 된 탐사 대원의 생존기를 담은 <마션> 등이 있다. 국내 영화로는 하정우 주연의 <터널> 정도가 있겠다. 세 영화들은 주인공의 탈출을 돕는 외부 상황 등이 교차되며 다른 주연 배우들도 등장했지만, 확실히 고립된 캐릭터들에 힘을 실어 몰입감을 높였다.

고구마를 먹은 듯 <베리드>

<베리드>

<127시간>이 의도치 않은 재해로 캐릭터를 고립시켰다면, 다른 인물의 의도로 주인공을 고립시킨 영화도 있다.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베리드>다. 재해 대신 사람의 의도가 들어가는 순간, 영화는 스릴러의 색을 갖추게 됐다. 이라크에서 근무하던 트럭 운전수 폴(라이언 레이놀즈)은 테러리스트들의 습격을 받고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그가 눈 뜬 곳은 한 평 남짓한 관. 폴은 살기 위해 전화기로 119, 국방부 등에 다급하게 전화를 건다.

​독특한 점은 <베리드>는 단 한 번의 과거 회상, 교차 편집 없이 오로지 관 속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 자연스레 영화는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갑갑함을 끝까지 유지했다. 실제로 라이언 레이놀즈는 촬영 중 과호흡으로 7번이나 실신하기도 했다. 또한 시각적인 압박을 뛰어넘은 것이 폴의 전화를 받는 인물들의 태도다. 위급한 상황임에도 자기 말만 하는 그들은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유발했다. <베리드>는 이를 통해 정부의 방관과 사회 전반에 퍼진 이기주의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베리드>처럼 범인과의 통화가 오가며 진행되는 1인극 형태의 영화로는 <폰부스>, <더 테러 라이브> 등이 있다. 그중 <폰부스>는 그 무대를 공중전화 부스로 설정, 오히려 탁 트인 공간에서 인물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보여줬다.

엎질러진 물 <로크>

<로크>

톰 하디 주연의 <로크>는 이미 제목부터 주인공의 이름을 내세우며 ‘한 인물에 집중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건설 회사에서 일하는 로크(톰 하디)는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다는 소식에 모든 일을 멈추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 아이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생긴 아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로크는 아내와 직장에 모든 사실을 이야기, 이를 수습하려 고군분투한다.

<로크> 역시 오로지 운전하는 로크의 모습만이 등장, 다른 인물들은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과거 회상, 교차 편집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인물들의 다급한 목소리는 오히려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동시에 로크의 ‘멘탈’이 부서지는 것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전달했다. 덤덤히 말을 이어가다가도, 전화를 끊고 허공에다 욕을 하는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으려는 로크의 내면에 집중, 톰 하디의 섬세한 감정연기가 돋보인 영화다.

선택과 집중 <결투>

<대결>(Duel, 1971)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그의 데뷔작인 <결투>(Duel, 1971)에서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고속도로에서 한 트럭을 추월하게 되는 데이빗(데니스 위버)과, 이로 인해 그에게 미친 듯이 달려드는 트럭의 대결을 그렸다. 얼핏 보면 평탄한 보복운전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투>는 그 속에서도 긴장감 넘치는 기승전결을 보여줬다. 따돌린 것 같았던 트럭이 어느새 데이빗을 기다리고 있는 식.

<결투>를 더욱 독특한 영화로 만들어 준 것은 트럭 운전수의 모습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는 오로지 데이빗의 모습만을 비추며 그가 느끼는 감정들을 충실히 담아냈다. 또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트럭 운전수는 오히려 미스터리함을 더하며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고작 추월 정도로 설명되지 않는, 트럭 운전수의 동기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굳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를 몸소 보여줬다. 그 결과 <결투>는 TV 영화였음에도 미국 외 여러 나라에서 극장용으로 다시 개봉하기도 했다.

1인 다역의 끝판왕 <매니페스토>

<매니페스토> 속 케이트 블란쳇

마지막은 케이트 블란쳇의 1인 13역 연기를 볼 수 있는 옴니버스 영화 <매니페스토>다. 앞서 소개한 작품들은 캐릭터가 극을 이끌었다면, <매니페스토>는 말 그대로 한 명의 배우가 영화 전체를 담당한 사례다. 내용도 독특하다. 흔히 말하는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노숙자, 무용수, 교사 등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다양한 직업군의 인물들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철학적인 그녀의 대사가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케이트 블란쳇이 쌓아올린 연기 내공을 보고 싶은 이라면 반갑게 맞이할 영화다.

또한 <매니페스토>는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에서는 13개의 에피소드가 13개의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되는 형식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영화와 비디오아트 사이에 위치한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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