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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김윤석 감독, 배우 김윤석과 영화를 찍었던 나홍진, 장준환, 홍지영 감독과 마주 앉다
진행 이화정 정리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19-04-11

김윤석답다. 웃기고 날카로운

김윤석, 홍지영, 나홍진, 장준환(왼쪽부터)

배우 김윤석과 오랫동안 작업했던 동료 감독들을 어렵게 한자리에 모았다. 그의 연출 데뷔작 <미성년>을 보고 훈수 같은 덕담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하던 그의 모습은 언제나 우리에게 지독하리만치 무서운, 때로는 현실에서 무심히 지나칠 법한 이웃의 캐릭터로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의 연출 데뷔작 <미성년>을 보고 나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의 모습에 대해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지 모른다. 미성년이라는 단어에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 혹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미처 덜 자란 상태란 의미, 그리고 아름다운 어른이란 의미가 모두 담겨있다.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어 한 진짜 미성년의 모습은 어떨까. <추격자>(2008), <황해>(2010)를 함께한 나홍진, <1987>(2017)을 함께한 장준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를 함께한 홍지영 감독, 그렇게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오랫동안 김윤석이란 사람을 지켜본 감독들이 모여 그에 대해, 그리고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잘 몰랐던 배우이자 사람 김윤석의 고민이 담긴 영화 <미성년>을 보고 난 친구들의 대화를 전한다.

-배우 김윤석이 아닌 ‘감독 김윤석’이 함께한 감독들을 소환했다. 김윤석 감독이 이 기획으로 여러분들을 자리하자고 하면서 응하실까 걱정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다들 어떤 기분이 들던가.

=김윤석_ 지금 이분들이 어떤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일동 웃음) 최동훈 감독도 무척 참여하고 싶어했는데, 부산에서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전해왔다.

=장준환_ 화상으로라도 참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고민도 하더라.

-박찬욱 감독이 <곡성> 때 시나리오 모니터 청을 받고 “나홍진이 무서워서 대충 모니터 해주면 혼날까봐 성의껏 리뷰를 해줬다”고 하던 말이 기억난다. 김윤석 감독님도 여러 감독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본 소감은 어땠고 어떤 의견을 들려줬나.

김윤석_ 여기 계신 감독님들은 모두 <미성년>의 초창기 기획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분들이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미성년>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다는 걸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홍지영_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촬영을 끝내고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읽자마자 에릭 종카의 <천사들이 꿈꾸는 세상>(1998)이 떠올랐다는 말을 전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연출할 생각은 안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김윤석_ 처음에는 재능 있는 친구들에게 시나리오를 주고 그들이 연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다.

홍지영_ 그때 내가 조심스럽게 직접 연출해보시라고 권했다. 언론시사회 때 기자들이 ‘배우 김윤석이 연출한 영화 맞냐’는 반응을 보였다는데 같이 작업했던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지극히 본인다운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장준환_ 예상보다 따뜻한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만 보면 굉장히 날카로운 측면이 숨겨져 있는 이야기였는데 그런 면에서 감독 자신을 똑 닮은 영화가 나온 것 같다.

=나홍진_ 나 역시 영화를 보고 전혀 놀라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밤새 통화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나는데, 정확히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에도 자주 서로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이라서. 그리고 같이 촬영하면서 종종 느낀 건데, 나는 김윤석이 눈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해석하는 시각이 나를 놀라게 할 때가 있다. 촬영장에서도 가끔 내가 모시는 감독님 같은 느낌이 나서 나도 모르게 ‘감독님!’ 하고 부르기도 했다. (웃음)

김윤석 감독

김윤석_ 아니 그런 이야기는 뭐하러 하나. (웃음)

장준환_ 현장에서 감독과 배우의 관계를 넘어 동료로 느껴질 때가 많아서 그렇다. 뭔가를 같이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그런 교감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미성년>도 배우들이 이 영화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느껴져서 좋았다.

김윤석의 <미성년>에 놀라지 않은 이유

-시나리오 분석을 많이 해오고, 연극 연출 경험이 많아 워낙 ‘현장의 감독’이라는 말이 솔솔 들렸었는데. (웃음) 그래서 영화계에서 이번 연출작의 결과를 매의 눈으로, 작정하고 지켜보신 분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다.

홍지영_ 같은 말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자면, 나는 연출 마인드를 가진 배우와 작업하는 게 좋다. 현장에서 수만 가지 결정을 하는 감독도 때로 흔들릴 때가 있다. 내 생각을 확인받고 싶을 때 넓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좋은 일이다.

장준환_ 외국의 사례를 비추어보면 배우 역시 기획, 프로듀서, 감독 등 다양한 경로로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배우는 연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영화는 같이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 겸 감독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각 감독들과 작업하면서 캐치한 ‘연출자’의 강점이 있었을 테고, 이번 작품을 만들 때도 그게 반영되지 않았을까. 함께 작업한 감독들의 연출 스타일, 어떤 점이 연출을 할 때 영향을 미쳤나.

김윤석_ 오랜 기간 현장에서 함께하며 노하우가 차곡차곡 축적된 터라 알게 모르게 계속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든 포착하고 습득하고 기억하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그중 감독들이 ‘어떤 의지’를 보이는 것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감독의 옆에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가끔 불타오르는 의지가 느껴질 때가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은 안되지만 그럴 때는 솔직하게 간이라도 빼주고 싶다. 같은 인간으로서 뭔가를 추구하며 애쓰는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나홍진_ 영화를 보면서 김윤석 감독이 얼마나 집요하게 매달렸을까 상상하게 되더라. 특히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감독이 현장에서 배우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끝까지 가봤겠다, 그런 점에서 현장이 아주 재미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영화가 정교하다는 것은 현장의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연배우뿐 아니라 조연배우까지 모두 정교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그리고 중요한 점은 배우들이 자기들끼리만 노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어떻게 캐릭터를 이해시킬지를 고민하며 논리 정연한 감정을 보여줘 인상 깊었다. 누구의 편도 들기 어려운 정교함을 갖춘 영화다.

홍지영_ 영화를 보자마자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도 그 정교함 때문인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다시 생각해보며 정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홍진_ 그래서 질문하고 싶다. (웃음) <미성년> 촬영 당시 뭔가를 만들어보려 의지를 불태운 순간이 있었나.

김윤석_ 그런 순간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다. 기억나는 장면 중에 미희(김소진)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영주(염정아)가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가 앉는 장면이 있다. 원래는 그 음식점에 마루가 없었는데 영주가 신발을 벗는 장면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으로서 필요한 장면이었다. 황기석 촬영감독에게 콘티를 보여줬더니 말은 안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밥 먹으면서 발 페티시가 있는 거 아니냐고 조용히 묻기도 했다. (웃음) 나는 사람들의 신발을 볼 때 그 사람과 가장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서 어디로 갈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나 사람의 흔적을 발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장준환_ 음, 역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장면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김윤석_ 현장에서 꼭 왼발을 먼저 벗고 올라가달라고 주문하고 두세 번 찍었는데 어느 순간 황기석 촬영감독이 뭔가 왔는지 정말 열심히 찍으시더라. (웃음)

장준환 감독

장준환_ 그 장면과 이어져서 영주가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갔기 때문에 스타킹 올이 나간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거다. 마치 적에게 내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 보이는 순간이랄까. 테이블의 먼지를 쓱 손가락으로 닦아내는 행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런 디테일이 영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다.

나홍진_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영화 전체적으로 통일성 면에서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다. 어떤 장면을 구성할 때 음악이나 후반작업을 포함해 굉장히 여러 요소를 고민하게 되는데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흔들림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신인 때는 현장에서 떠오르지 않는 무언가를 쥐어짜내곤 했는데 <미성년>은 그런 흔적 없이 매끈하다.

-두 가족 사이에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것을 단지 심각하거나 어둡게만 묘사하지 않는다. 때로 코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악인으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그럴 법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나홍진_ 그렇게 만들면 감당이 안 되는 이야기였을 테니까.

장준환_ 조롱하는 건 아니고, 관객이 보기에 중년 남성의 애잔함,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홍지영_ 이 영화가 넓게는 회색지대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른이 아닌 미성년이지만 어른스러운 판단을 하는 아이들이 등장하고, 어른도 아이도 아닌 시기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웃긴 이야기라기보다 퍽퍽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마치 페이스트리처럼 여러 층위의 감정을 쌓아놓은 상태에서 맨 위에는 달걀노른자를 발라 반질반질한 빵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지 않나 싶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뻔한 모습이 아니니까. 신인감독으로서는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김윤석_ 어쩜 말을 할 때도 조사 하나 틀리지 않고 이야기를 하시는지. (웃음) 좋은 말씀 감사하다.

장준환_ 관객이 <미성년>은 굉장히 웃긴 영화라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특히 병원 에스컬레이터에서 시작해 육교 계단으로 이어지는 추격 장면은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웃긴 장면이었다. 감독님이 이렇게 코믹한 감각이 있는지 몰랐다. 감독님의 본격적인 코미디 장르 영화를 한편 더 봤으면 한다.

김윤석_ 여기 계신 감독님들은 내가 평소에 얼마나 실없이 웃기는 사람인지 잘 안다.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모습이 있다.

나홍진 감독

나홍진_ 그 추격 장면 즈음에서 관객이 반응한다는 것은 이 영화가 그때까지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고 있었다는 의미다. 만약 그때까지 영화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결코 그 장면을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솔직히 진짜 웃기기보다는, 그렇게까지 웃기지는 않았잖아. (일동 웃음) 그 지점까지 영화가 잘 쌓아놨기 때문에 빛을 발한 거다.

김윤석_ 한마디로 웃긴데 슬픈, ‘웃퍼야’ 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다. 현장에서 단역배우들이 만들어낸 순간 중에도 이런 웃픈 장면이 있다. 윤아(박세진)가 편의점에서 한 커플에게 콘돔을 던져주는 장면도 있다. 누군가는 왜 저렇게까지 묘사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윤아에게는 요즘 말로 ‘노콘’이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웃픈 장면을 꼭 넣고 싶었다. 시사회 때 관객이 이 장면에서 제일 많이 웃더라. 배우가 어떤 자유로운 연기를 보여줄 때의 빛나는 순간이었다.

-극중 병원에서 염혜란, 정이랑 두 배우가 모녀 사이로 출연하는 장면도 코믹하다.

김윤석_ 염혜란 배우를 캐스팅한 후 우선 외형적으로 가장 닮은 배우를 찾아 나섰다. 정이랑 배우가 출연했던 <SNL 코리아>도 다 찾아봤는데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눈에 보일지는 모르겠는데 두 인물의 가르마 위치까지도 똑같이 설정했다.

홍지영_ 응원차 촬영장에 잠깐 갔었는데 감독이 얼마나 배우를 믿고 맡겼을지 눈에 선하게 보였다. 감독의 안목에서부터 배우들이 현장에서 연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졌을 거다.

장준환_ 배우와 감독이 만들어가는 시간을 옆에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런 이야기를 해도 공감하기 쉽지 않을 거다. 나라면 베테랑 배우부터 나이 어린 배우들까지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심적으로 상당히 부담됐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지 않은 김혜준, 박세진 배우의 연기가 굉장히 중요했을 텐데 디렉팅을 어떻게 하셨을까 너무 궁금했다.

나홍진_ 감독마다 배우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방법이 다 다르다. 누구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김윤석 선배는 배우이기 때문에 감독에게 디렉션을 받았을 때 그것을 체화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도 있었을 거다. 아니면 그래서 더욱 배우들을 대할 때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다.

김윤석_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우선 두 어린 배우의 실제 나이가 주리와 윤아를 연기하는 데 무리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너희가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마라,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면 애쓰는 모습을 들키지 마라”라고 조언해줬다.

나홍진_ 이런 말은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말이다. 감독들은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장준환_ 설사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이 말을 하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다르게 전해질 수도 있다. 우리가 했으면 다르게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김윤석_ 배우는 자기에게 집중해야 한다, 시선을 당겨야 한다는 말을 잘 이해해줬다. 너희가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순간, 누군가는 너희의 흠을 먼저 보려고 들지 모른다고 했는데, 그 말이 연기에 대한 부담을 많이 덜어준 것 같다.

홍지영 감독

홍지영_ 감독들의 언어로 풀어보자면 뭘 하려고 하지 마라, 내려놔라 정도의 말이었을 것 같다. 김윤석 감독의 말이 배우에게 더 와닿는 말이다.

김윤석_ 배우 입장에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현장에서 감독에게 연기에 대한 디렉션을 듣는 순간, 감독의 눈을 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나는 역할에 몰입해 있기 때문에 김윤석이란 사람의 입장에서 그 말을 들으면 감정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시선을 못 마주치는 것인데 감독이 보기엔 ‘아, 저 배우가 지금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하고 오해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오해다. (웃음)

장준환_ 배우들에게 그런 마음이 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김윤석_ 나홍진 감독이 나처럼 말했다면 배우들이 다 울었겠지. (일동 웃음)

-배우들 이야기를 더 나눠보자. 염정아 배우의 클로즈업 숏에서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표정을 봤는데, <미성년>의 여러 미덕 중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포착해낸 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기파 배우라는 익숙한 수식어 뒤에 가려졌던 염정아 배우와 김소진 배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나홍진_ <미성년>의 영주는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1987>에서 김윤석 선배를 봤을 때보다 더 강렬했던 것 같다. 깜짝 놀랐고 감독으로서 저런 배우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낸 점이 부러웠다.

홍지영_ 영화를 본 모두가 이야기할 텐데 미희 역을 맡은 김소진 배우의 존재감. 다른 인물은 대부분 다음 행동이 예상되는데 미희는 그 자장을 벗어나는 캐릭터였다. 어쩌면 극중 가장 미성년인 인물인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결코 성장할 것 같지 않은 캐릭터였다.

김윤석_ 어제 시사회 뒤풀이 자리에서 감독들이 염정아파와 김소진파로 나뉘더라. (웃음)

장준환_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배우가 어떤 식으로든 소비되는 순간들을 볼 때면 너무 속상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구나. 그럼 너는 왜 그렇게 못 만들었느냐고 할까 봐. (웃음)

김윤석_ 빈말이 아니라 다른 감독들, 배우들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지금 한국영화계의 상황 내지는 특정 장르가 강조되는 현실에서 직업인으로서 그 배역을 맡기 급급하다 보면 배우들의 개성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뭔가를 만들어갈 시간이 부족하니까. 아마 <미성년>이 70억원 이상 들어가는 규모의 영화로 제작됐다면 나 역시 책임을 져야 하니까 포기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그래서 영화 만들기 전에도 중견배우들의 훅이 담겨 있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장준환_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미성년>은 여러모로 끝까지 용감한 영화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궁금하게 만들어야지. 마지막 장면에서 아마 깜짝 놀랄 관객이 있을 거다. 시나리오를 읽고 혹시나 여러 가지 문제로 엔딩을 빼자거나 부드럽게 만들자고 했을까 봐 속으로 내심 걱정했었다.

이화정 기자, 나홍진 감독, 홍지영 감독, 김윤석 감독, 장준환 감독(왼쪽부터).

“<미성년>은 엔딩 장면 때문에 만드는 영화”

-엔딩은 감정의 흐름에서 나올 법한 결말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배우 김윤석이 맡았던 배역과 그 영화들을 연결지어서 생각하는 시선도 있을 만큼 논란의 여지도 있다.

김윤석_ ‘역시 이 사람 이럴 줄 알았어’ 하는 반응을 보이려나. (웃음)

나홍진_ 학부형들이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한 배우 1위가 김윤석이란 말이 있던데.

김윤석_ 나 감독이 지어낸 순위다. 사람들 믿을라. (웃음) 내가 맡은 역할이 워낙 지저분하고 냄새 나고 거친 인물이 많았으니까.

나홍진_ <미성년>은 엔딩 때문에 만드는 영화인데 그걸 빼면 어떡하나. 그 이전까지 영화가 쌓아나간 감정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감당이 되는 거다.

김윤석_ 실제로 엔딩을 빼놓고 편집도 해봤다. 그런데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고집을 부렸다기보다 여러 버전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 최종적으로는 주변 감독들이 해준 조언이 많은 힘이 됐다. 나는 엔딩에서 관객이 불편하길 원했다. 어색하고 이상한 웃음을 짓기를 바랐다. 누가 이 말을 들으면 그런 영화는 영화제 갈 때나 만들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엔딩은 세대에 관한 메타포다. 영화 속 3명의 어른들이 외면한 현실을 아이들은 숭고하게 기억하겠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왈가왈부할 자격 없다는 것을 불편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데뷔감독 김윤석의 다음 영화도 기대하게 만드는 자리다. 앞으로 김윤석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어주길 바라나. 각자 바라는 김윤석 감독의 차기작에 대해 한마디해주면 어떨까.

김윤석_ 다들 돈 안 되는 영화 만들기를 원할 거다.

나홍진_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망설였는데. (웃음) 클로즈업과 롱테이크, 익숙지 않은 몽타주를 쓴 영화라고 해서 <미성년>이 비상업적인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데뷔할 때 김윤석이란 배우와 함께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같다.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배우 김윤석을 영화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도 항상 꼭 연출하라고 말씀드렸던 터라. 나는 이분의 데뷔가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진다.

홍지영_ 내가 김윤석 배우와 작업한다고 했을 때 모두 궁금해했다. “그 사람 어땠어”라는 질문을 아주 많이 받았다. 나는 늘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답했다. <미성년>에는 결코 비껴갈 수 없는 김윤석만의 색깔이 들어 있다. 심지어 본인이 시나리오를 썼고 데뷔작이기도 하고. 김윤석이라는 배우에게 관심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제대로 봐줬으면 좋겠다. 덧붙여서 내가 뭘 좀 하려고 하는데 온 우주가 나서서 방해한다는 생각이 드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와 <미성년>을 보았을 때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장준환_ 이런 색깔을 가진 한국영화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반갑다. 내 예상보다 더 따뜻한 영화다. 오랫동안 배우와 감독으로 교감했지만 끝까지 심지를 잃지 않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준 데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영화가 너무 따뜻하고 웃기고 또 날카롭게 잘 나와서 기분이 좋다.

김윤석_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인 예수정 배우가 영화를 보시고 이런 소감을 남기셨다. 평소 위트가 넘치는 분인데, 내게 거두절미하고 “답다”라고 이야기하시더라. 다른 영화 촬영장을 오가면서 시간 날 때마다 노트북을 열어 끼적이고 또 덮어두기를 반복하며 쓴 작품이다. 한번 이런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어봤으니 또 조금씩 이야기를 중얼거려가며 만지다 보면 다음 영화를 만들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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