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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될 놈> 강지은 감독 - 우직한 진심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19-04-11

섬이 답답하다며 친구들과 사고나 치는 철없는 기강(손호준)이지만 어머니 순옥(김해숙)에게는 금쪽같은 내 새끼다. ‘크게 될 거’라며 가출한 후 범죄자가 된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의 이야기인 <크게 될 놈>은 강우석 감독 연출부 출신으로 <도마뱀>(2006)을 만든 강지은 감독의 복귀작이다. “진부하고 올드해 보일지라도 이야기의 진심을 믿었다”고 말하는 강지은 감독을 만났다.

-<도마뱀> 이후 13년 만의 영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도마뱀> 이후엔 강우석 감독님 영화에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강철중: 공공의 적1-1>(2008) 이후엔 고향 부산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웃음) 다시 영화 현장에 참여한 작품이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인데, 그 영화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고산자, 대동여지도> 개봉 때 우연히 만난 박준석 대표에게 <크게 될 놈> 시나리오를 받고 연출을 결정했다.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촬영 끝나고 2년 만에 개봉하게 됐다. 요즘 잠도 잘 안 오고 많이 떨린다. (웃음)

-<크게 될 놈> 연출이나 연기나 ‘우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메시지 하나 보고 달려가는 영화인데, 한편으로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나 역시 했다. 이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힘은 분명히 있으니, 새로운 부분은 연출로 채우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촬영하면서 이건 이야기의 힘만으로 충분하니 연출에 힘을 빼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이야기 전달에 집중하자 싶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전형적이고 올드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 점까지 각오하고 만든 영화다. 엄마의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똥개>의 김창수 작가가 쓴 시나리오다. 어떤 부분에서 이야기의 힘을 느꼈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이건 좋은 영화가 될 수 있겠다 싶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만큼 어머니 역할이 중요했는데, 1순위로 생각한 게 김해숙 배우였다. 욕심 없이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바로 하시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부터 영화가 조금씩 상업영화의 틀을 갖춰가고 판이 커졌다. 전라도가 배경이어서 사투리 연기도 중요했는데, 손호준 배우가 떠올랐다. 호준씨도 바로 하겠다고 해서 캐스팅이 진행됐다.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게 캐스팅운이라고 하는데 감사하게도 그 운이 좋았다.

-김해숙 배우와 감독님이 해석한 어머니 캐릭터가 달랐다고 들었다. 견해 차이를 어떻게 좁혀갔나.

=섬마을에서 혼자 장사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는 억척스럽고 강할 거라는 이미지가 내게 있었다. 그런데 첫 촬영날 선생님이 소녀 같은 연기를 하시는 게 아닌가. 제 생각이랑 다르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저를 설득하셨다. 김해숙 선생님은 섬에서 혼자 애들 키우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드셀 거라는 건 선입견이고, 너무 익숙해 재미없지 않느냐고 하셨다. 전라도 섬에 사는 어머니라고 왜 이렇지 않겠느냐, 모든 어머니가 아들에게 갖는 마음은 같을 것이고, 한국의 자식들이라면 이런 어머니를 보며 자기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좀더 폭넓게 관객의 마음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어머니가 김해숙 선생님 덕분에 완성됐다. 촬영 이틀차에 접견실 장면을 찍었는데, ‘아, 선생님 해석이 맞았구나’ 싶었다.

-살인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아들을 어머니가 세 번째 찾아가서 겨우 만나는 게 접견실 장면이다. 가장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인데 비교적 일찍 촬영했다.

=중요한 장면인데, 너무 일찍 찍어서 힘들었다. (웃음) 사실 교도소 장면을 실제 교도소에서 촬영하고 싶었는데 당시 시국이 복잡했고, 법무부 장관이 공석이어서 섭외할 수 없었다. (웃음) 계획에 없던 세트를 지어야 했는데, 협소한 창고가 여러 각도에서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공간으로 완성됐다. 소품이나 공간이 진짜 교도소처럼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공간에 배우들이 들어가는 순간 빈 공간을 배우들이 꽉 채우더라. 배우들이 참 중요하구나 싶었다.

-사형수 진영 역할의 박원상 배우를 비롯해 김성균, 안세하, 이원종 등의 배우들이 작은 역할임에도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

=박원상 배우는 중요한 역할이라 고민을 많이 했는데,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아들이랑 같이 봤는데 아들이 좋게 본 게 큰 이유라고 하더라. 애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우리 영화가 폭력적이지 않고, 감동도 있는 휴먼 드라마라 잘 맞았던 것 같다. 김성균 배우는 손호준 배우와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같이했는데, ‘성균씨가 어떻겠느냐’고 호준씨가 연결해줬다. 안세하 배우 역시 다른 배우 소개로 같이하게 됐다. 감독으로서는 영화 현장에 오랜만에 온 건데, 이렇게 배우나 스탭들이 서로 연결고리가 돼 만나는 모습을 보고 짜릿하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현장 분위기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처음 제목이 <엄니>였다. 그만큼 어머니 역할이 중요하지만 영화 전체 분량은 아들이 더 많다. 아들 역할이 매우 중요한 영화인데, 손호준 배우가 철없는 아들의 모습에서 시작해 공포에 떨고 오열하는 연기 등 극중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호준씨가 자기 장면만 보는 게 아니라 영화 전체를 보더라. 현장에서 대화를 많이 했고, 후반에는 내가 손 작가라고 부를 만큼 장면에도 많이 참여했다. 독방에서 기강이가 오열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의 대사를 호준씨가 다 썼다. 장면 수정이 필요해서 계속 고민하니까 호준씨가 ‘감독님 술 한잔하시죠’ 하더라. 호준씨가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현장에서 “나오는 대로 해보자” 했는데 호준씨 머릿속에는 그 장면이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감정 신이기 때문에 세번만 가자 했는데 호준씨가 대사를 쓴 그 장면으로 갔다. 어느 때는 주연인 자신보다 조연 캐릭터가 더 앞에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제안하기도 하더라. 사형수의 감정이 변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하는 걸 보고 내공 있는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한글을 몰랐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글을 배우고 편지를 쓴다. 어머니가 쓴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는 많은 관객이 울 것 같다.

=그 장면의 내레이션을 차에서 녹음했다. 우리가 촬영 끝난 지 2년 만에 개봉하는 거라 뒤늦게 후시녹음을 하려니 당시 감정이 안 나오더라. 2년 전에 현장 차 안에서 선생님이 녹음을 했던 파일을 찾았더니 그 감정이 너무 좋았다. 어머니 편지의 글씨는 내 지인의 어머니께서 쓰신 거다. 스탭들도 돌아가며 글씨를 써보고 나도 써봤는데 이제 막 글을 배운 어머니의 글씨 같지가 않더라. 지인의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그분이 써주신 글을 보니 감정이 느껴졌다. 결국 어머니의 감정으로 쓰는 게 가장 좋았던 것 같다.

-<크게 될 놈>은 2년 만에 관객을 만나는 거지만, 감독으로서는 13년 만이다.

=2017년 5월 17일에 크랭크업했는데, 그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외부 상황이 답답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2년이 하늘에서 내려준 시간이었다. 편집도 더 할 수 있었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 감정이 중요한 드라마니까 음향도 과하게 넣지 않았다. 배우의 대사를 관객이 제대로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도마뱀>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당시 결말부 아리(강혜정)의 설정에 대해 말이 많았다. 얼마 전에 왓차에서 보니 ‘너무 일찍 나온 영화’라는 말이 있더라. (웃음) 이번 영화는 관객과 좋은 시기에 만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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