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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성스러운> 소설가 김보영 - 가장 훌륭한 SF 작품은 진정한 반역을 꿈꿀 수 있는 여자들에게서 나온다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19-04-22

김보영 작가와의 인터뷰는 4월 16일에 있었다. 단편소설 중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에 대한 말을 꺼냈을 때의 일이다. 프러포즈를 위한 글을 청탁받은 팬을 위해 쓴 소설인데, 서간체 소설로, 성간비행을 통해 4년 정도면 만나 결혼할 수 있으리라던 두 사람이 어긋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이 소설을 읽고 대성통곡했다고 말하자 김보영 작가는, 정작 글을 청탁한 분들께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2014년에 쓴 소설이었다. 그때는 세월호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창작이 불가능했다.” SF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현실을 보여주는 작업을, 김보영 작가는 2004년 데뷔 이래 꾸준히 해왔다. 소설 <저 이승의 선지자>, 논픽션 <SF는 인류종말에 반대합니다>에 연이어 소설 <천국보다 성스러운>을 발표한 김보영 작가를 만났다.

-<천국보다 성스러운>의 시작은 ‘절대자가 차별주의자라면’이라는 생각이다. 종교는 시간이 지나도 과거의 교리를 고수하고자 하고, 과거를 학습하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차별로 회귀하기를 원한다.

=기획 자체는 책 뒤에도 썼지만 서교예술센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내게 온 의뢰는 ‘하늘에서 절대자가 내려왔는데 절대자가 여혐이라면’이었다. 신은, 신화는 고대에서 시작된다. 문명화되지 못한 고대의 야만적인 철학을 종교가 갖고 있고 종교를 대변하는 신이 갖고 있다. 신은 절대적인 무언가를 상상한 결과물이기도 한데, 그 결과 차별을 절대화화는 모순이 생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감히 어떻게’라는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내 이야기들이 인권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종교라는 건 대체로 과학과 가장 반대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종교적 기적에 대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과학 위에 있는 어떤 존재 혹은 현상을 종교적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김보영 작가는 종교 역시 과학적으로 사유하고자 하는 인상이다. 장편 <저 이승의 선지자>의 탄재의 경우가 그렇다.

=<저 이승의 선지자>가 많이 그렇다. <천국보다 성스러운>에 <저 이승의 선지자>의 철학이 조금 들어가 있고. 과학이 어떤 부분은 설명할 수 없다고 할 때, 과학이 정확성과 합리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야말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망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현상인데, 이 현상은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좀더 논리적으로 해석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종교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종교는 세계의 구성과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기제로 시작하는 부분이 있는데, 작품 속 세계를 만들 때 종교적인 틀을 참고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이 선생이다>에 실린 에세이에도 쓴 내용인데, 고등학생 때 세계관이 완전히 무너지는 사건들이 연이어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학교에 대한 신뢰를 잃고 어른들과 기성세대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신앙에 기대고자 성서를 펼쳤는데 펼친 순간 첫 문장부터 모든 문장이 다르게 해석되더라. 예를 들어 예수가 사람의 아들이라고 쓰여 있다. 내가 교리공부 시간에 배운 바로는 이때 사람은 신이고 예수는 신의 아들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문장에 사람의 아들이라고 썼는데 어떻게 신의 아들이 되나. 평범한 사람이 단지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만을 가지고 눈앞의 텍스트를 완전히 반대로 해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 신앙을 나는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앙이 없어졌기 때문이겠지. 그 과정이 많이 힘들었다. 품고 있던 신앙을 없앤다는 건 내 절대가치를 없애는 것이니까. 모든 것을 신앙이 없는 채로 다시 보게 되더라. 그 과정이 내 철학을 만든 하나의 기반이지 싶다. SF는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최근 한국에 출간되고 창작되는 SF소설을 보면 여성 작가의 여성 주인공 서사가 눈에 많이 띈다. 그런데 20년 전에 SF소설을 읽어야지 했을 때는 완전히 남성을 위한 장르로 보였다.

=SF에는 양면이 있다. SF는 기본적으로 엘리트 문학인 면이 있다. 과학을 다루기 때문에 교육받은 사람들이 하게 되고, 교육은 기득권자들에게 허용되던 것이었고, 과학 교육을 받은 기득권자는 오랫동안 엘리트 교육을 받은 자본력을 갖춘 백인 남성들이었다. 그들이 이 장르를 즐기고 누릴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편 이것이 교육받은 사람들의 문학이라면 그런 이유로 진보적인 면이 있다. 교육의 기회가 확장되면서 소수자들이 이야기 하는, 세상의 편견을 깨는 이야기들이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 여러 생각이 나는데 ,처음 SF를 쓰려고 정크SF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아, 이 동네는 40, 50대 남자들밖에 없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웃음)

-정말 그랬다. 왜 전에는 여성 SF작가가 지금처럼 눈에 띄지 않았을까.

=사실 SF는 여자가 시작했다. 그 여자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와 최초의 아나키스트의 아이였다. 교육이 금지돼 독학했고. 19살에 소설을 썼는데,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자체가 완벽한 소수자를 상징하는 이야기다. 여성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것에 대한 그리고 여성을 배제한 창조에 대한 두려움과 소외자의 고독감을 그려내면서 사회 전체를 비판했다. 이것이 어쩌면 SF의 시작점이자 정신이 아닐까. 작가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작품이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남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남성들이 장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결국 가장 훌륭한 작품은 여자들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진정한 반역을 상상할 수 있는 건 여자들뿐이기 때문에.

-SF소설이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인터스텔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이해가 안 가면 두번, 세번 보고 책도 찾아보면서, SF소설은 어떤 경우에는 아예 읽어보지도 않는 걸까 싶다.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고민일 것 같다.

=최근에 나온 내 책 중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를 보면 SF는 어렵다는 편견을 깰 수 있다. (웃음) 실생활과 밀접해 있고, 독자들이 좋아하는 많은 작품이 실은 SF다. <아톰> 같은 거 얼마나 재미있나. <카우보이 비밥>도 그렇고. 히트를 하면 SF라는 타이틀이 안 붙는 것 같다. 살짝 뺀다. <멋진 신세계> <1984>도 SF라고 안 부른다. 다 빼고 안 팔리는 것들만 SF라고 부르니까. (웃음) <땅 밑에>라는 단편이 있는데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 우리가 땅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하늘이었던 거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 대부분이 이해를 못했다. ‘이게 뭔가’를 생각해봤는데, 과감히 사고의 역전을 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는 사고의 역전을 좀더 천천히 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성공적인 듯하다.

-슬픈 얘기다. 반전을 이해 못한다는 건.

=나는 중학교 수준의 과학만 쓴다. 왜 어렵다고 할까.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 서두에 페미니즘을 다 어렵다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 나중에 깨달았다고 하더라.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이 되지 않는다고.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 세계를 역전시켜서 보여주는 것 자체가 SF의 기법이고 페미니즘의 기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국열차>(2013) 기술자문으로 크레딧이 올라 있다.

=첫책 <누군가를 만났어>(2007, 배명훈, 박애진 공저) 출간 며칠 뒤 봉준호 감독이 연락해서 시나리오 초안을 써보라고 했다. 1년을 붙들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니 거의 안 들어갔더라. 할리우드 관행상 일정 이상 지분을 써야 시나리오작가로 들어간다고 한다. 내 이름을 시나리오작가로 넣을 수는 없고, 가장 콰쾅 하고 나올 수 있는 게 기술자문이더라고 들었다.

-초안과 영화의 차이는 뭔가.

=나는 기차가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국열차의 모든 문제는 이 기차가 달리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기차를 멈추고 난방을 하면서 땅을 파고…. 땅속은 따뜻하다. 지열이 있다. 왜 기차에서 살고 있냐고. (웃음) 이게 하나의 은유다. 이 사회가 계속 앞으로만 달리고 있고 꼬리칸에서 앞칸으로 가야 하는 데 매달리니까 문제가 생겨난다. 바퀴벌레를 먹는 설정과 맨 마지막의 대사 같은 몇 가지만 최종까지 남았다.

-SF계에 가장 시급한 것은 뭔가.

=일단 정부의 지원과 큰 출판사의 지원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문학상, 비평, 홍보, 좋은 작품이 필요하다. 조금씩 깨지고 있다고 생각은 한다. 느리긴 하지만.

<천국보다 성스러운>

김보영 지음 / 변영근 그래픽 / 알마 펴냄

<천국보다 성스러운>은 지난해 서교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전시 <같이, 가치>에 선보인 5편의 엽편소설과 변영근의 그림을 한데 엮은 책이다.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습니다. 그 신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라는 구절이 반복되는데, 이 작업은 ‘신이 여성 혐오를 한다면’이라는 생각과 페미니즘과 SF를 함께 다루고자 시도한 결과물이다. 영희는 은퇴한 아버지와 산다. 아버지는 신세한탄과 TV 채널 돌리기로 소일하는데, 아직도 혼자 밥을 차려먹을 줄 모른다. 이 이야기와 신이 강림한 고대의 장면, 그리고 신이 강림한 서울 광경 등이 엽편마다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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