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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④] <서른> <흩어진 밤> <스킨> <교환일기>
김소미 2019-04-24

<서른> Thirty

시모나 코스토바 / 독일 / 2019년 / 115분 / 국제경쟁

불가리아 출신의 여성감독 시모나 코스토바의 데뷔작. 30살 생일을 맞이한 작가 오비를 중심으로 베를린에 사는 6명의 친구의 하루를 펼쳐낸다. <서른>은 그 기획과 감성을 얕보기 전에 능란한 스타일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영화다. 주인공의 하루는 약 9분간의 침실 롱테이크를 통해 둔탁하고 무력한 아침의 감각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연인과 이별하고, 일자리를 찾고, 집세를 아끼려고 룸메이트를 찾는 인물들의 생활을 관찰하는 영화는, 그 속에 깃든 청춘의 허영, 두려움, 비겁함을 짚어낸다. 밤이 되자 가장된 즐거움과 함께 시작된 생일잔치는 날이 밝아올수록 격렬해지는 불안과 피로에 휩싸일 뿐이다. 존재의 위기를 엿보는 클로즈업 숏에서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베를린 도심을 가로지르는 움직임을 담은 트래킹 숏에서 누벨바그 영화를 감지하게 만드는 어떤 ‘기운’으로 생생하다.

<흩어진 밤> Scattered Night

김솔, 이지형 / 한국 / 2019년 / 81분 / 한국경쟁

“똑같지 뭐…. 학교 갔다 집에 오고 밥 먹고….” 한달 만에 집에 돌아온 아빠가 딸에게 안부를 묻는데, 초등학생인 수민의 대답은 노인의 그것과 별다른 구석이 없다. <흩어진 밤>에서 수민의 가족은 밤마다 헤어지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별거를 결심한 부부에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인데, 그중 가장 살벌한 쟁점은 부모과 자녀 두 명이 어떻게 짝을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막내인 수민의 선택을 중심으로 남매의 방황을 좇는 영화는 아이들을 수동적인 피해자로 그리지도, 조숙한 주인공의 성장담으로 성급한 귀결을 꾀하지도 않는다. 한국 독립영화가 그려온 익숙한 세계라는 인상도 들지만, 상처받은 유년 시절을 바라보는 대범한 시선과 수민을 연기한 배우 문승아의 유달리 편안한 연기가 강점이다.

<스킨> Skin

기 나티브 / 미국 / 2018년 / 120분 / 폐막작

극도의 빈곤을 겪는 가출 청소년이나 불행한 젊은이들은 대안 가족을 제공하는 극우파 어른들에 의해 세뇌당하기도 한다. 이들은 머리를 밀고 문신을 새긴 채 극우 인종주의자를 자처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인 <스킨>의 주인공 브라이언(제이미 벨) 역시 사회안전망 바깥에서 네오나치로 길러진 인물. 이스라엘의 기 나티브 감독이 어느 백인 우월주의자의 실화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동명의 단편영화가 출발점이 됐다. 영화는 브라이언이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흑인 운동가의 진실한 도움을 받게 되면서 갱생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특히 그는 얼굴을 가득 메운 문신을 벗겨냄으로써 내면에 새겨진 분노와 혐오로부터 탈피하려 한다. 문신 제거술을 받는 고통스러운 과정과, 피부에 축적되어 온 지난날의 폭력적인 세월이 플래시백을 통해 강렬한 교차를 이루는 이유다. 영화 내내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주인공의 에너지가 화면 위로 넘실거리고 감정적으로 충만한 장면들이 소용돌이친다. <빌리 엘리어트> <제인 에어> <필름스타 인 리버풀>의 제이미 벨이 과소평가된 배우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브라이언의 부활이 곧 제이미 벨의 도약처럼 보이는 영화다.

<교환일기> Exchange Diary

임흥순, 모모세 아야 / 한국, 일본 / 2018년 / 64분 /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여성 노동자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을 만든 임흥순 감독과 일본의 영상 아티스트 모모세 아야가 카메라를 들고 교환일기를 써 내려간다. 2015년 5월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3년간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각자가 찍은 영상 소스를 교환한 감독들이 상대방의 촬영본을 임의로 편집하고 내레이션을 입히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촬영자의 관심, 주관, 우연이 뒤섞인 낯선 필름을 받아든 편집자가 그 위에 자신의 사적인 기억과 이야기를 녹여내는 기묘한 과정이다. A가 본 것과 B가 느낀 것 사이에 생기는 작은 균열로 인해 <교환일기>의 이미지는 쉼 없이 새로운 의미로 재구조화된다. 깊은 잠에 빠진 누군가의 이미지를 마주하며 타국의 감독은 자신의 죽은 할머니를 떠올리고, 개인적인 독백 같았던 감독들의 목소리는 어느덧 세월호 참사와 동일본대지진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한다. 이처럼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두명의 화자, 두개의 내러티브가 상호작용을 낼수록 의미를 찾기 어려워 보였던 보잘것없는 풍경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연계 특별상영 프로그램으로 공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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