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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스톤> 구두문두르 아르나르 구드문드손 감독, “그 시절엔 모든 것이 가능했다”
김소미 2019-05-02

©Art Bicnick

-한국 관객 대부분에게 아직은 미지의 감독일 당신을 소개하게 돼 기쁘다. 처음에는 배우로 아이슬란드영화계에 뛰어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데뷔작의 메가폰을 잡기까지 어떤 궤적을 거쳐왔는지 소개해주기 바란다.

=짧은 시간 아마추어 배우로 생활한 뒤에 느낀 것이 나는 다른 사람의 연기를 디렉팅하는 일이 더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개념미술과 시나리오 쓰는 법을 공부했다. 극단을 직접 만들어 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면서 실질적인 디렉팅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다. 첫 현장 경험은 친구인 루나 루나손 감독(<볼케이노: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2011), <참새>(2015))의 촬영장에서 했다. 아이슬란드의 영화 커뮤니티는 전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라 좋아하는 영화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연락해서 커피 한잔하면서 어떻게 해야 영화계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는지 팁을 얻을 수 있다.

-<하트스톤>이 장편 데뷔작이다. 첫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아이슬란드의 작은 어촌에서 보낸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영화를 만들었다.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이야기 소재를 찾던 중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어릴 적 내 친구가 나오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우리 두 사람은 추억이 깊이 새겨진 마을을 둘러보다가 그 친구가 살던 집에 도착했다. 친구가 날 보며 환하게 미소 짓더니 지도 한장을 건네줬다. 꿈에서 깨어난 뒤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로 그곳에서 내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트스톤> 이전에 <웨일 밸리>(2013)와 <아르툰>(2014) 등 여러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대체로 모두 유년기의 자유와 고립을 그린다는 점에서 분위기가 비슷하다.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집필한 작품은 <하트스톤>이다. 장편 시나리오 작성을 끝낸 뒤에야 인지도 낮고 경험도 없는 감독의 장편영화에 투자하려는 사람은 없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그래서 날 증명하기 위해 단편 작품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껏 만든 작품은 모두 나이 어린 인물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소년들의 세계를 바탕으로 성장 서사를 펼쳐내는 데 집중해온 것 같다.

=10대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시기다.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던 때라서 그렇다.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하는 것의 거의 대부분이 처음이다. 첫사랑, 친구 관계, 독립하려는 몸부림 같은 것을 거쳐 점점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사회의 때가 묻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과도기의 이런 변화는 무척 드라마틱해서 외딴곳에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는 특히 그 비밀이 쉽게 숨겨지지 않는다.

-로맨스를 느끼는 친구(<하트스톤>), 비밀을 공유하는 형제(<웨일 밸리>) 등 영화를 통해 남성 듀오의 관계에 주목하고 이를 영화적 재료로 삼는데, 이 부분에 매혹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두 남성 인물의 정신과 신체 관계를 살피고 이를 테마로 다루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가정 나아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라고 본다. 나처럼 가부장적 환경에서 자란 소년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강하게 행동하라고 배운다. 나와 내 친구들은 우리의 감정과 친밀함을 주변 사람들에게 숨기곤 했다.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가면 쓰는 법을 체득한다고 할까. 한편 사랑하는 어머니와 두명의 누나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 드러내는 방식의 대비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왔다.

-<하트스톤> 속 어른들은 사라진 채 존재감이 없거나 왜곡된 형태로 그려진다. 소년들의 눈에 담긴 기성세대는 대체로 무력한 상태다.

=어른은 아이의 양육자이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본인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전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른에게 훨씬 크게 주어지는 사회적 제약을 보여주려고도 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른들이 종종 안쓰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삶은 힘들고 정신은 불안정해 보였다. 반대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이는 어른들은 괴짜라고 비난받거나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성인을 옭아매는 주변의 시선, 사회적 압박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담고 싶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아이슬란드 출신 감독의 정체성이랄까, 정서적 경험을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일 터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말 그대로 경이롭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외부 환경은 인생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삶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트스톤>에서 자연은 슬픔을 잊는 창구다. 나는 우울할 때면 산을 평화와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며 바라본다. 그곳에서 개인의 문제는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우리가 유일하게 아무런 역할을 부여받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고. 영화 속 두 소년 크리스티안과 토르도 그렇게 해방감을 얻는다.

-화면을 채우는 풍성한 색감, 자연광의 활용, 무엇보다 인물과 배경이 조화로우면서도 독창적인 구도를 이룬다. 감각적인 촬영에 각별히 신경 쓴 것으로 보이는데.

=예술 공부를 비주얼 아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내게 시각적인 면은 매우 중요하다. 운 좋게도 스툴라 브랜드스 그로블렌이라는 뛰어난 촬영감독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는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서 카메라만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촬영감독이다. 계속 서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밀어주면서 작업했고 촬영장에서 합도 좋았다(스툴라 브랜드스 그로블렌은 <빅토리아>로 2015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예술공헌상)을 수상했다.-편집자).

-토르 역의 발더 아이나르손, 크리스티안 역의 블라에 힌릭손 모두 <하트스톤>을 통해 전세계에 처음 소개되는 배우들이다. 억눌리고 금기시된 감정들이 서서히 피어오르는 과정을 신인배우가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리허설 과정은 어땠나.

=발더 아이나르손은 천성이 무척 다정하고 순수하다.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풍부한 아이라 극중 토르처럼 화를 내거나 자기주장을 피력하는 연기를 어려워했다. 한번은 내가 발더의 어머니에게 그가 집에서 한번이라도 화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한편 블라에 힌릭손은 연기에 자신없어 했을뿐더러 완벽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블라에에겐 최소한의 가이드만 주고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감을 잡도록 지켜봤다. 두 배우 모두 결국 훌륭하게 해냈다.

-젊은 감독이 바라보기에 현재 아이슬란드와 덴마크의 독립영화계는 어떤 상황인가? 규모는 작지만 작가의 자유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는, 이제는 세계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영화적 토양을 갖춘 나라로 느껴진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가장 긍정적이라고 할 만한 측면은 일반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 진영이 더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아닐까. 영화적 독창성의 수요가 높은 편이라 감독들이 개인적 비전을 따르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인디펜던트 시네마의 정신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정부가 영화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한 영향도 크다. 영화산업의 대다수가 탄탄한 독립영화가 가져오는 문화적, 경제적 가치에 동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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