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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오키나와국제영화제] 오키나와에는 웃음이, 영화에는 평화가 깃든다 ① ~ ②
글·사진 이주현 2019-05-02

(사진 제공: 오키나와국제영화제)

(사진 제공: 오키나와국제영화제)

(사진 제공: 오키나와국제영화제)

(사진 제공: 오키나와국제영화제)

4월 18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제11회 오키나와국제영화제(Okinawa International Movie Festival, 이하 오키나와영화제)에 다녀왔다. 오키나와섬 전체를 ‘웃음과 평화’로 물들이려는 오키나와영화제의 의지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일본 젊은 감독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영화도 만났고, 유일한 한국영화 초청작인 <똥파리>(2008)의 양익준 감독과도 4박5일간 영화제에 깃든 웃음을 나눴다.

04/18

(사진 제공: 오키나와국제영화제)

“오키나와는 제가 가겠습니다!”

봄꽃이 지려 하는데 꽃이 핀 줄도 모른 채 언 마음으로 몇주째 감기를 달고 살았다. 따뜻하고 청정한 곳이 그리웠다. 게다가 오키나와영화제의 주제는 웃음과 평화(Laugh & Peace) 아닌가.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웃음과 평화이니, 오키나와가 나를 부르는 게 아니면 무엇인가. 그래서 외치고 싶었다. “오키나와는 제가 가겠습니다. 저요 저!”

개막일인 4월 18일. 인천에서 2시간을 날아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영화제 메인 행사가 열리는 오키나와 나하시는 공항에서 차로 10분쯤 걸렸다. 프레스 배지를 받아 목에 걸고, 개막식이 열리는 ANA 크라운 플라자 오키나와 하버뷰 호텔로 향했다. 관객을 위한 레드카펫 행사는 폐막일에 열릴 예정이었고, 개막식 행사는 관계자를 초대한 리셉션 형태로 진행됐다. ‘오키나와섬 전체의 축제’라는 부제가 달린 만큼 개막식에선 오키나와 각 시 관계자들이 무대에 나와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인사말을 전했다. 영화제를 주관하는 곳은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요시모토흥업이다. 개막식 인사말에서 오사키 히로시 요시모토흥업 회장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공유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고 짧게 언급했다. ‘아시아’, ‘디지털’, ‘지역 활성화’가 요시모토흥업과 오키나와영화제의 미래에 중요한 키워드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4박5일간 오키나와에서 웃음을 책임져준 양익준 감독도 검게 그을린 얼굴로 개막식을 찾았다.

04/19

사쿠라자카 극장.

슈리 극장.

오전에 사쿠라자카 극장에 들렀다. 나하시 국제거리에서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사쿠라자카 극장은 3층짜리 건물에 3개의 상영관을 품고 있는 아담한 극장이다. 극장 로비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만큼이나 극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다음날 찾은 슈리성 인근에 위치한 슈리 극장은 사쿠라자카 극장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했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는 슈리 극장은 지난해부터 영화제 상영관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슈리 극장을 마주하는 순간 1950년대로 시간이동을 한 듯했는데, 놀랍게도 이 극장이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평상시엔 19금의 에로영화만 튼다. 그러다 보니 극장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난해 처음 슈리 극장을 영화제 상영관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젊은 관객의 반응이 좋았다. 오래된 건물에서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니까.” 나카무라 다다시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그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오키나와영화제”라고 했다. 물론 축제의 공간은 오키나와섬 전체다.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곳곳을 축제의 무대로 활용하는 동선은 확실히 오키나와라는 도시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코믹 도장 티! 패밀리>

오키나와영화제는 영화제뿐 아니라 문화 축제로서 정체성도 강화하고 있다. 영화제 기간 덴부스나하 광장에 설치된 무대에선 요시모토흥업 소속 코미디언들의 코미디 쇼가 이어졌다. 무대에 선 개그 콤비들도, 관객도 알아서 웃음과 평화를 거리에 전파하고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축제를 지향하는 영화제답게 이날 저녁엔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한 논버벌 공연도 준비되어 있었다. <코믹 도장 티! 패밀리>(Comic Dojo Tee! Family)는 올해 3월 오키나와에서 시작한 공연으로, 게임기를 끼고 사는 가라테 가문의 둘째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가라테 실력자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 참여를 유도하며 오감으로 체험할 기회를 주는 것도 이 공연의 특징이었다.

04/20

나카무라 다다시 프로그래머.

올해 오키나와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는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한편이다. 개봉 10주년을 맞아 ‘스페셜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받은 <똥파리>가 4월 20일 사쿠라자카 극장에서 1회 상영됐다. 2010년 3월 일본 도쿄에서 단관개봉으로 시작한 <똥파리>는 평단의 찬사와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상영관을 늘려갔다. 그해 <기네마준보>는 <똥파리>에 올해 최고의 외국영화상과 외국영화 감독상을 수여했다. 그리고 여전히 양익준 감독은 <똥파리>의 감독으로, 배우로 일본에서 사랑받고 있었다.

일본과 아시아의 신작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영화제의 메인 섹션은 ‘스페셜 인비테이션’이다. 일본을 비롯해 러시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영화 14편이 스페셜 인비테이션 섹션에 초청됐다. 나카무라 다다시 프로그래머는 “웃음과 평화라는 주제에 걸맞게 영화를 보고 웃을 수 있거나 위안을 받을 수 있거나 평화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 위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신작 영화로는 이시바시 시즈카, 후루타치 유타로가 주연한 청춘영화 <스트로베리 송>, 지난해 세상을 뜬 기키 기린이 출연하는 <에리카38>,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는 후쿠다 모모코 감독의 <맛있는 가족>, <버닝 붓다맨>을 만든 우지차 감독의 독특한 애니메이션 <바이올런스 보이저> 등이 있다. 이중 나카무라 다다시 프로그래머가 추천작으로 꼽은 <바이올런스 보이저>나 대안가족과 젠더 문제를 흥미롭게 다룬 <맛있는 가족>은 1980~90년생 일본 젊은 감독들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04/21

4일간의 축제가 막을 내리는 폐막일. 변덕스러운 섬 날씨도 잠시 변덕을 멈췄다. 오후 12시부터 나하의 국제거리에선 레드카펫 행사가 열렸다. 가뜩이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국제거리는 스타들을 보려는 사람들로 꽉 찼다. 일본의 인기 배우 고라 겐고를 비롯해, 이타오 이쓰지, 우치다 리오, 유명 코미디언이자 감독인 고리 등이 팬들의 환호에 보답하며 레드카펫을 걸었다. 레드카펫 행사가 열리기 전, 오사키 히로시 회장은 일본 최대의 통신회사 NTT와 손잡고 올해 10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을 론칭하겠다고 밝혔다. 100년 역사를 가진 요시모토흥업이 앞으로 100년을 구상하며 본격적으로 디지털 콘텐츠 경쟁에 뛰어들겠다고 밝힌 것이다. 전날 만난 나카무라 다다시 프로그래머도 “오키나와영화제가 앞으로 100년을 지속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땐 11회를 맞은 영화제에서 100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패기 있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키나와영화제의 내년이, 그리고 10년, 20년 뒤가 궁금하다. 오키나와에 다시 오고 싶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오키나와의 따뜻함과 청정함은 한동안 그립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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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오키나와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