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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만난 영화인들⑨] <준하의 행성> 홍형숙 감독 - 공존의 실천이라는 과제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19-05-15

<경계도시2>(2009), <Jam Docu 강정>(2011) 이후 약 8년만에 신작을 발표한 홍형숙 감독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20주년을 기념하는 ‘뉴트로 전주’ 섹션에서 <준하의 행성>을 선보였다. 이번 영화에선 도심형 대안학교라 불리는 성미산 학교의 소우주로 진입했다. 교실을 가득 메운 여러 행성 중에서 특별히 초점을 맞춘 대상은 자폐 범주성 장애를 가진 학생 준하다. 홍형숙 감독은 “비단 장애만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독인 나와 준하의 관계 맺음, 공존에 관한 기록”이라 전했다.

-자폐 범주성 장애가 있는 준하가 마을 학생들과 한데 어울려 자연스럽게 생활한다. 성미산학교의 통합교육이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통합교육이란 연령, 성별, 장애-비장애 등 경계를 최대한 한데 녹이는 것이다. 하지만 <준하의 행성>은 장애나 학교 같은 큰 의제보다는 준하라는 개인 그 자체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우리 사회는 당위적 명제로서 공존을 너무 손쉽게 이야기하지 않나. 제각기 다른 이들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굉장히 복잡한 질문이고, 이번 영화에서는 준하를 그 질문을 촉발하는 존재로 바라봤다.

-아이들과 같이 등교해 같이 하교하는 생활을 1년 이상 지속했다. 어떤 방식으로 촬영했나.

=카메라가 방해요소가 되면 곤란하겠다 싶어 후반부를 제외하고 딱 한대의 카메라만 썼다. 교실에 있는 칠판, 책상처럼 카메라가 자연스러운 존재로 보였으면 했다. 내 정체성도 친근한 동네 아줌마 ‘호호’(마을에서 통용되는 홍형숙 감독의 별명)였다. 1년 반 정도의 촬영 기간 중 10개월 가까이는 혼자서 찍었다.

-1인 촬영 시스템에서 물리적으로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었겠다.

=준하가 교실 밖으로 돌연 이탈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일일이 다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준하가 사라진 빈 공간, 그곳에 남은 다른 사람의 얼굴도 좋았다. 화면 안에 준하가 없다고 해도, 그곳이 늘 준하가 머무는 공간이라면 보는 사람이 무언가 새롭게 감각하게 되지 않을까.

-준하는 카메라가 익숙지 않았을 텐데 서로의 리듬을 조율하는 기간도 꽤 필요했을 것 같다.

=선생님들이 준하와 규칙을 세워서 특정 상황이 되면 ‘준하야 멈춰’, ‘준하야 기다려’라고 신호를 준다. 그런데 어느 날은 준하가 카메라를 향해 ‘호호 기다려’, ‘호호 멈춰’라고 하더라. (웃음) 그 사건을 계기로 준하가 요구하면 내가 최대 열을 셀 때까지만 버티다가 자리를 피해주는 걸로 합의를 봤다. 대상과의 관계 맺기는 늘 그런 식이다. 어떤 때는 순조롭고 어떤 때는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거나 갈등이 증폭될 때도 있는데 준하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부터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 중인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지켜본 소감은.

=2001년 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특별전 부문에서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1995)를 상영한 게 첫 인연이다. 그로부터 10년 뒤 나의 프로듀서 입문작인 강석필 감독의 <춤추는 숲>(2012)이 전주프로젝트마켓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어서 2013년에 야외 상영을 하기도 했다. 관록을 쌓아가면서 한편으로는 계속 참신한 도약을 해나가는 영화제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다. 자기 비전이 확실하니까 고맙고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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