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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국제영화제 개막 풍경과 올해의 경향
글·사진 김현수 2019-05-23

우리를 화나게 하고 불편하게 하고 위안을 주는 영화들을 찾아서

칸은 지금 영화라는 불완전한 꿈을 꾸는가. 72회를 맞이하는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가 열리는 크루아제트 거리가 변화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당대 영화예술의 어젠다를 주도하면서 동시에 산업 트렌드에 대응해야 하는 영화제 입장에서, 특히 칸의 최근 고민은 영화라는 예술이 처한 고민과 궤를 같이하는 듯 보인다. 올해 칸의 라인업 경향을 언급하는 여러 매체들이 가장 주목하는 점이 바로 넷플릭스, 페미니즘, 할리우드와 영화제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화제는 뒤이어 살펴볼 올해의 라인업으로 대답을 대신한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티에리 프레모 예술감독은 올해의 라인업을 발표하면서 72회 행사의 위치를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개최가 취소됐던 1회 영화제에 비유했다. 당시 영화제가 전후 시대의 극장 재건에 많은 영향을 끼쳤듯 올해 칸영화제 리스트는 다시금 영화 혹은 극장을 ‘재건’하는 데 힘을 실어주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그런데 “우리는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을 영화들을 상영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프레모 감독의 발언은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여성 인권과 남성 권력, 블록버스터와 예술·독립영화와의 관계를 앞세운 영화시장 전체의 위기를 방증하는 말로 해석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할리우드와의 연대에 대한 의지 보인다

총 21편의 경쟁부문 후보작 중 올해 개막작이기도 한 <데드 돈 다이>의 짐 자무시 감독은 칸이 오랫동안 지지를 보낸 감독이다. 틸다 스윈턴, 빌 머레이, 애덤 드라이버는 물론, 이기 팝, 톰 웨이츠, 르자(RZA) 등 자무시의 영화 친구들이 총출동하는 영화. 뱀파이어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이후 좀비영화로 또다시 칸을 찾은 독특한 이력을 남긴 그의 뒤를 이어 티에리 프레모의 라인업이라고 해도 무방한, 칸이 사랑하는 거장감독들이 대거 귀환을 알렸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드 글로리>,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더 트레이터>, 다르덴 형제의 <영 아메드>, 테렌스 맬릭 감독의 <히든 라이프>, 켄 로치 감독의 <소리 위 미스드 유>가 올해 경쟁부문에서 경합을 벌일 예정이다. 이들의 경쟁부문 진출은 익숙하다 못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며 만약 켄 로치가 올해도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되면 그는 최초로 이상을 3번 수상하는 감독이 된다. 올해 거장의 귀환은 꼭 경쟁부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53년 전에 <남과 여>로 칸국제영화제 사상 최연소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클로드 를루슈 감독이 <남과 여>의 속편 격인 신작 <더 베스트 이어스 오브 어 라이프>를 들고 다시 한번 비경쟁부문으로 칸을 찾았고,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이 비밀리에 일본에서 비전문 배우들과 촬영한 영화 <패밀리 로맨스, LLC>도 특별상영부문에 초청되며 올해 칸이 환대하는 귀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화려한 페스티벌의 외형을 키워나가야 하는 칸의 올해의 변화 혹은 결심이라고 일컬어지는 주목할 만한 특징은 할리우드와의 연대에 대한 의지가 엿보이는 라인업이다. 애초 라인업 발표 당시에는 영화가 완성되지 않아 상영이 어려울 것이라 했다가 깜짝 경쟁부문 초청을 확정지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영화제 후반에 공개될 예정. 47회 때 <펄프 픽션>(1994)이 경쟁부문 마지막 상영 뒤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것처럼 타란티노 혹은 할리우드에 대한 칸의 예우를 보여주는 올해 가장 큰 이벤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경쟁부문 영화는 아니지만 매년 크루아제트 거리에서 제일 화려한 광고판을 내거는 리츠칼튼호텔의 로비를 장식한 영화는 비경쟁부문에 진출한 덱스터 플레처 감독의 <로켓맨>이다. 누군가가 호텔 로비에 내건 장식 정도로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다. 프랑스 매체 <피가로>는 “칸과 할리우드의 화해의 순간이 왔다”는 헤드라인 기사를 전하며 “할리우드 스타들의 참석이 빈약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영화제와 할리우드 스튜디오 관계가 다시 뜨거워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히 <칸의 할리우드>의 저자이자 스위스 기자인 크리스티앙 융겐은 올해 <로켓맨>을 상영하게 된 것이 칸으로서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며 “파라마운트사는 그동안 영화제에 작품을 보내기 가장 꺼려하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중 하나”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반면 기독교계 일간지 <라크루아>는 “칸국제영화제의 영향력, 스타들과 시네필들의 흥분되는 조합이 몇년 전부터 점점 줄고 있다”라는 <버라이어티> 기사를 인용하며 “넷플릭스 영화 금지, 베니스, 토론토 등 비슷한 시기에 벌어지는 영화제를 선호하기 시작한 오스카, 그리고 무엇보다 칸영화제가 선택하는 작가영화와 더이상 영화 마케팅을 위해 칸영화제가 필요 없어진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간의 단절이 늘고 있다”면서 영화제와 할리우드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아무튼 티에리 프레모 예술감독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상영소식을 전하며 소니픽처스에 열렬한 감사를 표할 만큼 할리우드 스튜디오들과의 화합을 적극적으로 바라는 눈치다. 또 최근 지적받은 스타의 부재를 의식한 듯 <람보5: 라스트 블러드>로 돌아오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초청해 티저 영상을 최초로 공개하는 쇼케이스 행사를 가진다. <람보>(1982)의 4K 복원 상영도 함께 공개할 예정. 마침 그의 제작사가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결정한 이원태 감독의 <악인전>이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영화제의 흥행을 위해 칸이 할리우드에 구애를 보내는 와중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건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 그리고 지난해 칸 최고의 이슈 중 하나였던 82인의 여성 영화인 선언 등의 페미니즘 이슈다. 아마도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SF영화 <리틀 조>, 셀린 시아마 감독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시빌>, <35럼>의 배우이자 칸 경쟁부문에 흑인 여성감독으로는 최초로 후보에 오른 마티 디옵 감독의 데뷔작 <아틀란티크>는 이러한 올해 칸 경향의 최전선을 보여줄 여성감독들의 작품일 것이다. 물론 지난해 여성감독 작품 후보 지명 3편에 비해 겨우 1편 늘어난 수준이다. 참고로 올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 16편 중 여성감독 작품은 7편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 일간지 <르파리지앵>은 1946년 이후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총 1727편의 작품 중 82편만이 여성감독의 영화였음을 언급하며 “영화제가 여전히 페미니즘의 깃발을 손수 들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영화제의 공식 선정은 작품의 질만을 볼 뿐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했던 티에리 프레모의 노선이 올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지적한 것이다. 칸이 유독 페미니즘 이슈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따른 논란의 불씨를 지핀 일이 개막 직전 한 차례 있었다. 티에리 프레모 예술감독은 개막 전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과거 폭력 문제와 프랑스 정치 극우파 세력을 지지하는 발언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알랭 들롱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여하기로 한 칸의 결정을 지적한 한 기자의 질문에 “우리가 노벨평화상을 주려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강하게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제 막 영화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 촬영장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던 모습을 포스터 이미지로 채택하며 그녀의 작품 세계를 추모하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제이기에 이를 지켜보는 많은 영화팬들은 기대와 실망이 뒤섞인 분위기다.

올해 경쟁부문 라인업에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점은 초고속 경쟁부문 입성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칸이 선택한 신인감독들의 약진이다. 최근의 당대 영화예술의 어젠다를 주도하고자 하는 칸의 선택은 지난 몇년간 지속적으로 신인감독 발굴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티에리 프레모가 “현재 중국의 뉴 제너레이션 감독 중 가장 흥분되는 목소리를 보여주는 감독”이라고 소개한 중국의 디아오 이난 감독의 <더 와일드 구즈 레이크>, 미국 독립영화의 최전선에서 활동 중인 아이라 잭스 감독의 <프랭키>, 앞서 언급한 경쟁부문에 진출한 최초의 흑인 여성감독 마티 디옵 감독의 <아틀란티크>, 감각적인 비디오아트와 정치 다큐멘터리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는 라즈리 감독의 <레미제라블>과 오지, 가뭄, 굶주림, 빈민에 관한 영화로 알려진 <바카라우>의 브라질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줄리아노 도넬레스 감독, 엘리아 슐레이만 감독의 <잇 머스트 비 헤븐>그리고 <경찰, 형용사>로 제6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던 루마니아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라 고메라>, 한국 사회의 현실을, 나아가 세계가 처한 현실을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담아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등이 수상 결과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영화들이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심사위원장, ‘공정성’ 강조

또한 올해 황금종려상의 향방을 미리 점쳐볼 가장 중요한 잣대는 경쟁부문 심사위원단의 구성일 것이다. 티에리 프레모 예술감독이 경쟁부문 심사위원단을 발표하면서 시네아스트로서의 예술적 영향력 외엔 다른 어떤 의도도 없음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올해는 4대륙의 7개 국적을 지닌 영화인들로, 4명의 여성과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남성으로 이뤄졌다. 역대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배우 엘르 패닝과 그리스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마이모나 응디아예 배우 겸 감독, 폴란드의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 프랑스의 그래픽노블 작가 엔키 비랄, 이탈리아의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 프랑스의 로뱅 캉피요 감독 등 예년에 비해 연출자 중심으로 꾸린 것이 올해 심사의 경향을 예측해볼 수 있는 특징이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은 5월 14일에 열린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무엇이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감정적으로 지적으로 만드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들을 “판단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독의 이름을 모른 채 보고 싶다. 그들의 명성이 결정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심사의 공정성도 강조했다. “무엇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지, 무엇이 우릴 더 불편하게 하는지, 우리에게 무엇으로 위안을 주는지를 보겠다”는 이냐리투 감독의 말에서 올해의 심사기준도 엿볼 수 있다.

과연 올해 황금종려상을 가져갈 주인공은 누가 될지, 수상 결과 이전에 과연 올해의 라인업이 칸이 바라는 영화제의 미래에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는 좀더 지켜봐야겠다. 지중해를 따라 놓인 크루아제트 거리에 위치한 팔레드페스티벌에서 열리는 제72회 칸영화제는 5월 14일부터 25일까지 11일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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