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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걸캅스>와 <배심원들>, 많이 보세요
주성철 2019-05-24

<폴리스 스토리>(1985)가 성룡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해서 가장 다른 점이 뭘까. 도심에서 펼쳐지는 현대 액션물? 홍금보, 원표와 함께했던 ‘가화삼보’로부터의 독립선언? 아니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성룡이 사람들 많은 데서 싸운다는 것이다. 사실 그전까지 세트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배우나 스탭들이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하여 클라이맥스 액션 신을 찍는 것은 홍콩 액션영화의 오랜 전통이기도 했다. 저 멀리 이소룡을 봐도 <맹룡과강>(1972)의 콜로세움, <용쟁호투>(1973)의 거울방, <사망유희>(1978)의 사망탑을 비롯해 성룡의 과거 수많은 사극 무술영화들은 물론 <쾌찬차>(1984)의 고성 등 굳이 부언하지 않아도 사실상 거의 세상 모든 액션영화들이 그랬다. 사고나 부상 등 현장의 안전문제가 가장 중요하기에 예민하고 조심스런 촬영이기도 할뿐더러 배우나 무술감독 입장에서는 대역을 비롯해 액션 연출의 노하우와 비밀이 노출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성룡은 당시 홍금보 감독의 <용적심>(1985)에 겹치기 출연 중이었기에 다음날 아침까지 촬영을 끝내야 했다.

하지만 <폴리스 스토리>는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홍콩 사람들에게 경찰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기에, 보수파 성룡에게 ‘시민들이 보는 데서 싸운다’는 설정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이 번잡한 쇼핑몰에서 싸우고, <베테랑>(2014)에서 황정민이 인파로 가득한 명동 한복판에서 싸우며, <걸캅스>에서 라미란도 분주한 도심 공항터미널 안에서 싸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오히려 평론가들로부터 공권력의 파시즘이라는 의혹을 받았던 <폴리스 스토리>처럼, <걸캅스>도 사실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경찰의 과폭력 혐의를 유머로 소화하며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는 걸 지적하는 게 맞을 것이다. 경찰이 자신의 화를 억누르지 못해 수시로 방아쇠를 당기려 하고, 범죄에 이용된 장비를 가해자에게 그대로 장난스레 써보려 하며, 그런 장면들을 CCTV에서 삭제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물론 그 또한 생소했던 여성 경찰의 거친 입담과 육체를 빌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쾌감으로 상쇄되는 것이 사실이다. 후반부에 민원실장(염혜란)을 포함해 교통정보센터에 소속된 여성 경찰들이 모두 힘을 합쳐 범인을 쫓는 모습에 이르러서는 그런 일말의 혐의마저 싹 잊게 만드는 쾌감을 준다.

그런 이유로 <걸캅스>는 <폴리스 스토리>와 비교되는 게 딱히 이상할 게 없다. 일단 박미영 형사(라미란)의 헤어스타일도 ‘성룡 머리’이지 않나. 심지어 ‘한국판 <캡틴 마블>’이라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무엇보다 관객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얼핏 무관해 보이는 대상을 끌어와 필요 이상의 비교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자 영화보기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걸캅스>를 즐기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들이 꽤 있었나보다. 임수연 기자가 잘 정리한 이번호 14~15쪽 포커스 기사(<걸캅스>에 무슨 일이?)에서 볼 수 있듯, <걸캅스>를 <폴리스 스토리>와 비교하여 곤욕을 치른 김성훈 기자까지 더해,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싶어 안달난 일부 남성들의 욕망은 무얼까를 생각하게 된다. 한참 <걸캅스>에 대해 쓰다보니, 글 제목에 언급한 <배심원들>을 언급하지 못하고 넘어갈 뻔했다.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에 빗대 ‘권남우씨 법정에 가다’ 정도가 될 것 같은 <배심원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양심의 문제, 그리고 낙관주의적 결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프랭크 카프라적인 이상주의를 떠올리게 했다. 그 또한 이전 법정영화들이 주지 못한 쾌감을 줬다. 그렇게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가려져 있던 반가운 한국영화를 두편이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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