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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제작기] 영어자막 번역 달시 파켓, “관객에게 최대한 편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다”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9-06-12

달시 파켓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 영어자막 검수를 시작으로, <옥자>(2017)를 제외한 봉준호의 모든 영화에 참여했다. 공동번역도 다수였고, <설국열차>(2013)의 경우 한국어 시나리오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맡았다. 이외에도 박찬욱의 <아가씨>, 나홍진의 <곡성>, 윤종빈의 <공작> 등 최소 150편 이상의 한국영화 영어자막 번역과 감수에 달시 파켓의 손길이 닿았다. 1997년 한국에 들어와 영어 강사로 일하다 한국영화에 빠져들었고, <스크린 인터내셔널> <버라이어티>의 기자로 일하다 영어자막 번역과 연기까지 경험했으며, 지금은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이자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기생충>의 좋은 영어자막 번역은 한국영화와 한국 문화, 한국 사회에 대한 달시 파켓의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에 영어자막이 큰 몫을 했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어땠나.

=번역이란 게 집중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힘든 일인데, 이렇게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갈수록 인터뷰 요청도 많이 오고 기사에 내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 과대평가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웃음)

-자막 작업을 하느라 <기생충>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볼 수 있었는데 그때도 예사롭지 않은 영화가 탄생했다는 예감이 들었나.

=영화가 너무 좋아서 사람들한테 얘기하고 싶었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힘들었다. (웃음) 혼자서 좋아하고 신나하면서 번역했다. <기생충>은 딱 보면 봉준호 영화인데, 봉준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또 다르다. 이전 영화들과 비슷하지 않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무슨 한국영화를 제일 좋아하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하는 대답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에 참여하면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기생충> 번역 작업의 난이도는 어땠나.

=다른 영화보다 더 어렵거나 하진 않았다. 봉준호의 영화는 대사가 재밌어서 번역할 때도 재밌다. 잘 쓴 대사가 번역하기도 쉽다. 오히려 사투리가 많거나 잘 못 쓴 대사는 한국 사람이 들으면 재밌지만 대사의 내용 자체만 번역하면 시시한 경우도 많다.

-<기생충>의 특별한 언어적 리듬, 한국어의 맛을 영어로 살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단어 하나하나의 번역보다 전체적인 리듬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편이다. 담백한 대사는 담백하게, 그 타이밍을 자막에서도 그대로 살리려 한다. 연기와도 어느 정도 맞아야 한다. 그래서 번역할 땐 대사를 정말 여러 번 듣고, 같은 느낌, 같은 리듬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문장의 길이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말이 짧으면 번역도 짧게 하고, 길면 길게 하고.

-서울대 문서위조학과는 ‘옥스퍼드대’, 반지하실은 ‘세미 베이스먼트’, 대만 카스테라는 ‘타이완 케이크숍’, 산수경석은 ‘랜드스케이프 스톤’으로 번역했다. 무엇보다 기발한 건 ‘짜파구리’였는데, 라면과 우동을 합친 ‘Ramdong’(Ramen+Udong)으로 표현했다.

=짜파구리는 단어 자체의 번역도 중요했다. 다행히 짜파구리가 뭔지 설명하는 내용이 영화에 나온다. 처음 전화 통화에서 ‘짜파구리’라는 단어가 나오고, 그다음에 ‘짜파구리가 뭐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게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라 특별한 단어라는 걸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고, 카메라가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보여줄 때, 영문자막으로는 라면과 우동이라 표기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바로 이 뜻을 이해했을 것 같다.

-‘Ramdong’은 완전히 창작한 단어인가.

=아마도. 구글에 검색해봤는데 안 나오더라. (웃음)

-건축가 남궁현자 같은 이름의 경우도 재미 포인트를 살리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미스터 남궁’으로만 표현했다. ‘남궁’은 <설국열차>에서 송강호 배우의 이름(남궁민수)으로도 등장한 적 있고. 처음엔 이름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서 남궁에다가 프랑스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남궁 앙투안’ 같은. (웃음)

-연교(조여정)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데, 그 느낌을 어떻게 살리려고 했는지.

=외국 관객이 연교의 말만 들어선 한국어인지 한국어와 비슷한 영어를 쓰는지 모를 것 같았다. 그래서 대사에 나오는 영어는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캐릭터로 치면 어떤 캐릭터의 대사를 번역하기가 가장 힘들던가.

=아무래도 송강호 캐릭터. 진지함과 유머러스함을 오가는 연기를 하다 보니 그 뉘앙스를 살리는 번역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땐 대사에만 의존하기보다, 배우의 표정이나 연기를 많이 참고했다. 단어 하나, 음절 하나의 차이로도 좀더 유머러스해질 수 있고 좀더 진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운이 좋게도 송강호 배우가 출연한 영화의 번역을 많이 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택시운전사> <밀정> <마약왕>도 했으니까. 송강호 배우와 더불어 조진웅 배우의 출연작 번역도 많이 했는데 조진웅 배우의 경우 대사를 빨리 말하고 중간에 말을 쉬지 않는 특징이 있다. (웃음)

-지금까지 자막 작업한 영화가 몇편 정도 되나.

=일일이 세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예전엔 영어자막 감수도 많이 했고, 친구와 공동작업도 많이 했다. 그러다 중간에 팔에 문제가 생겨 5년 정도 타이핑을 할 수 없어서 작업을 못했다. 최근 5년 동안은 1년에 10편 정도 작업했던 것 같다. 예전엔 100편 정도? 감수했던 영화까지 합치면 더 많을 수도 있고.

-<기생충> 외에 영어자막 번역이 어려워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영화 러닝타임도 긴 데다 대사도 많았다. 그런데 대사에 담긴 정보도 많고 정치적인 얘기도 있어서, 관객 입장에선 정보도 많고 긴 자막을 읽느라 피곤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편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게다가 <공작>의 대사엔 북한말과 우리말이 섞여 있다.

=<기생충>에도 북한말이 나오지만, 그건 영어로 100% 표현하기 힘들다. 사투리는 번역하면서도 항상 고민되는 지점이다. 영어에서 사투리는 보통 억양이나 연기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문자로 전달하면 어색한 지점이 많다.

-잘된 번역, 잘못된 번역은 어떤 거라 생각하나.

=보면서 화가 나는 건 게으른 번역이다. 원래 대사엔 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는데 그중 반만 번역하는 경우가 있다. 정보를 최대한 담으면서도 문장을 짧게 만드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다.

-번역뿐 아니라 평론과 연기와 영화제(들꽃영화상) 운영,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강의까지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연기는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세트에 가서 촬영하는 게 재밌다. 부산아시아영화학교에서 각국에서 온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재밌고 보람 있다. 영화제는 보람은 있지만 부담이 크고, 글을 쓰는 일은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엔 예전만큼 글을 쓰지 못하지만, 다른 건 포기할 수 있어도 글 쓰는 건 계속 하고 싶다.

-영화와 관련해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시나리오를 쓰거나 프로듀싱에 관심이 있다. 창의적인 일들이 재밌다.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김지운 등 여러 감독의 작품에 영어자막 번역으로 참여했는데, 앞으로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이창동 감독님 영화는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와 <버닝>을 참 좋아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 (웃음)

● 내가 꼽은 이 장면!_ 아버지와 아들

“송강호가 ‘아들아 나는 니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장면에서의 표정이 참 좋았다. 송강호의 연기도 연기지만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이 영화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지점들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 장면을 꼽고 싶고, 사실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박 사장네 아들 다송이 8살 생일 때 밤에 몰래 생일 케이크를 먹는 장면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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